매거진 힐링 요가

[100-14] 순응하는 아이, 순응하는 어른

by 클로토

직장에서 MBTI 자가 테스트를 하는데 옆에서 지켜본 직원이 내가 누르려는 걸 막으며 그것이 아니란다.

직원이 생각한 나의 성향이 그게 아니라고 일어준 게 한두 개가 아니다.

검사를 하면 ESTJ도 나왔다 ESTP도 나왔다 했다.

검사 결과가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잘 몰라서, 생각에 따라 나의 평가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하나인데 내가 아는 나와 남이 아는 나의 갭이 크다.

스스로가 자기를 잘 알아야 하는데 살아오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큰 관심 없었던 듯하다.

나를 돌보지 않고 나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쿨한 게 아니라 무관심이다.

나의 세계가 정의되지 못함으로써 나의 정체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디에서부터 시작됐을까.

과거를 떠올려보면 오빠의 사춘기 시절 분풀이 대상이 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말괄량이에 친구 데리고 수업도 빠질 정도로 천방지축이었다.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생 오빠의 분풀이 표적이 되면서 모든 화살이 내게 쏟아졌다.

10대에 막 접어든 나는 부모보다 더 무서운 오빠의 폭행을 몸으로 받아내야 했고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면서 자신감도 떨어졌다.


어릴 때 어찌할 수 없는 좌절을 맛봐서인지 성인이 되어도 나의 존재감을 쉬 드러내지 못했다.

내가 하는 행동에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 못했고 존재 자체만으로 소중하다든지 사랑받아 마땅하다는 생각도 없었다.

순응하는 아이가 커서도 순응에 가까운 성인이 되었다.

딸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든 오빠에게 맞고 대들며 자신의 부당함을 이야기할 때도 시끄러운 상황이 견디기 힘든 어른이었다.


알아차림의 시작은 어른이 되고도 한참 지나서였다.

사람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동기부여를 받고 변화한다.

살면서 아주 사소한 작은 성공 경험들이 쌓이면서 새로운 나를 발견해 나갔다.

억눌렸던 한 부분을 터주니 스스로를 대견한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고 자존감도 올라갔다.

그래도 어느 순간 과거의 미분화된 부분이 남아있어 나의 주눅 든 모습이 보일 때면 안쓰럽기도 하다.


어른다운 어른은 자기를 바르게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순응하는 어른으로 자신이 중심에 없는 인간관계는 내 집을 타인에게 내어 주는 것과 같다.

타인이 내 집에 들어와 아무렇게나 행동해도 아무 말도 못 한다면 그건 주인이기를 포기한 것이다.

자신의 현 위치를 알아차릴 때 변화의 계기가 된다.



#책과강연

#백백프로젝트


2025년 5월

순응하는 아이, 순응하는 어른

클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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