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대부분 첫인상을 보고 상대방을 평가한다.
그 사람의 옷차림새나 얼굴 표정, 머리모양이나 태도를 종합하여 나름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추측해 본다.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자유분방한 사람은 옷차림에서 자유스러움을 표현하고 말투나 사용하는 단어에서도 취향이 드러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표현하지 않으면 남들이 잘 모를 수도 있고 겉모습만 보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것을 옳다 그르다 할 수가 없다.
오해의 상황이 생기지 않으려면 상대방의 판단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나 또한 이성의 감각으로 충분히 나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
나는 나를 표현하는 언어나 행동이 아직도 조금 서툰 편이다.
상대방을 위해 행한 행동이 의도치 않는 결과로 나왔을 때 이유를 말해서라도 오해를 사지 않아야 하는데 변명을 좀 귀찮게 여긴다.
변명처럼 들릴까 봐 함구하는 경우도 있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오해가 풀리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도 가지고 있다.
언젠가 직장에서 국장님을 만나기 위해 일하다 말고 국장님 방을 몇 번 왔다 갔다 했다.
서너 번을 왔다 갔다 하다 계속 엇갈리고 금방 오실 것 같아 국장님 방에 앉아 있다 소파 옆 책장에 꽂힌 책을 펼치고 있었다.
얼마 후 들어오신 국장님은 여유 있게 책이나 보고 앉아있다는 반응이었다.
자초지종을 길게 이야기하기 귀찮아 아무 말도 보태지 않고 용무만 보고 나왔다.
또 한 번은 상사가 물품이 놓인 부분이 불편했는지 옮기기에 사용하기 편하도록 조절해 줬다.
그랬더니 기분 나빠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용하기 편하도록 도와주려고 그랬는데 불편하셨군요" 하는 속마음을 표현하지 않았다.
'함께 한 세월이 얼만데 사사건건 모두 이야기해야 아나'하는 마음이 있었다.
표현하지 않으면 누가 속마음을 알 것인가.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했다.
훌륭한 겉모습은 내적인 완벽함을 드러내는 최고의 방편이라 했다.
형식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 해도 보편적인 틀을 완전히 탈피하는 것은 어렵다.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도 존중받아야 하지만 이성적이지 않으면 그 또한 존중받기 어렵다.
내가 이야기하고 표현하는 방식, 나의 외모와 취향은 나의 겉모습이다.
내적 모습은 겉모습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내적 아름다움은 다르다고 말할 수 없다.
나는 그것이 아닌데 오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해도 계속 쌓이면 그 사람이 된다.
훌륭한 겉모습으로 내적 완벽함을 드러내 겉과 속이 다르지 않도록 행하고 드러내는 일상이 되고자 한다.
#책과강연
#백백프로젝트
2025년 5월
겉모습과 속마음의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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