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치유 중입니다

by 클로토

아들은 지금 한국에 없다

선교사로 남미에 나가 있다

큰아이가 해외선교를 시작한 지는 코로나 이전이다

남미는 스페인어가 공용어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남미를 가기 전에 스페인어를 단어 공부 정도하고 떠났다

콜롬비아에 선교 간 지 반년도 되기 전에 코로나가 세계적으로 유행을 하여 급하게 귀국을 서둘러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반년 가까이 콜롬비아에서 선교하고 공부하면서 스페인어를 조금 문장으로 인사하는 정도로 익혀서 입국했다

코로나가 빨리 끝날 줄 알고 기다렸지만 예상외로 코로나 기간은 길었다

아들은 그 기간에 허송세월을 보낸 것은 아닌 듯하다

다시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선교 나갈 생각으로 성경공부와 더불어 스페인어 공부를 지속해 나갔다

서로 줌을 통해 그룹으로 공부하고 콜롬비아 원어민들과 매일대화하면서 언어는 조금씩 더 나아져 갔다

2년여의 긴 준비 기간을 마치고 작년에 다시 콜롬비아로 재 출국하였다

지금은 콜롬비아 선교지가 활성화되고 포화상태가 되어 개척지인 페루 선교지로 가있는 상태다

새로운 곳을 뚫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개척을 하며 의사소통도 원활하게 하는 것을 보면 어릴 때 수줍음 많고 부끄러움과 수치심에 민감했던 아이가 떠오른다

아들이 태어난 날 아빠는 수술실 앞에서 아들 얼굴만 살짝 보고 서울로 떠났다

친정에서 석 달 동안 조리를 가장한 얹힌 삶을 살다가 시골 동네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의식하고 올라와

시어머니가 운영하는 여인숙 쪽방에 얹혀살았다

남편의 빚을 독촉하는 친척들의 성화로 아들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마지못해 직장을 구했다

출산 6개월 후에 취직을 하면서 아들은 친할머니가 주 돌봄 자가 되었다

남편의 사업부도로 엄청난 빚 때문에 직장을 다녀야만 빚도 갚고 생활소 할 수 있었다

밤근무를 일주일에 한 번 할 때마다 밤에 시어머니가 고생을 하였다

시어머니의 노고보다 나의 힘듦이 더 크게 다가왔다

한숨도 자지 못하는 밤근무 후 퇴근한 며느리에게 아이를 맡기는 시어머니가 못내 원망스럽기도 했다

돌이 지나면서 아들을 데리고 분가하였다

이것도 시누이집에 얹혀사는 것으로 남의 집 살이는 장소만 옮겼을 뿐이다

아침 일찍 7시에 출근해야 하는데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어린이집에 특별히 사정하여 맡겼다

그 아침 일찍 아침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아들은 이때부터 부끄러움이 많아졌을까?

부끄러움을 알아가고 창피함과 수치심을 알아갈 나이에 민감한 아이는 이미 자신의 처지를 알았나 보다

유난히 사람들을 피하고 사람만 보면 숨고 말만 걸어도 울어버리는 아이였다

지인들이 집에 오면 구석지로 들어가 사람들이 갈 때까지 나오지 않는 아이를 나는 타고난 성격이라고 치부해 버림으로써 아이의 상처를 애써서 덮어버렸다

나의 부침이 버거워서 엄마로서 넉넉하게 밝게 키우지 못함이 너무나 마음 아팠다

상하방에서 살다가 채 10평이 되지 않는 주공아파트에 이사하게 되었다

직장이 월급을 낮추는 조건을 맞춰줘서 소형 주공아파트에 들아가 살도록 도와주었다

바퀴벌레와 동거하는 삶이었지만 내 집이 있다는 행복감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섯 살 큰아이가 아파서 근무하는 병원에 데려와 수액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보호자가 아이들을 데려와 주사를 맞히는 것과 상반되게 큰 아이는 혼자서 아무 말 없이 수액을 맞았다

겁먹은 눈망울을 한 큰 아이가 아무 말 없이 울지도 않고 보채지도 않고 혼자서 두 시간 동안 수액을 맞았다

하는 일이 너무 바빠 소아과에서 주사 맞는 큰 아이를 들여다보고 챙길 시간이 없었다

바쁜 중에 못내 걱정되어 아이를 보러 갔을 때 수줍음 많이 타는 큰 아이가 아무 표정 없이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로서 얼마나 마음이 미어지는지, 아들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에 아들의 무감각한 표정이 가슴깊이 박혀있다

아들이 초등학교 가서 친구들을 잘 사귈 수 있을까 걱정하였다

걱정과 다르게 곧잘 친구들을 데려오고 같이 뛰어다니는 것을 보며 마음 한편에 쌓였던 응어리가 풀려나가는 듯했다

문제는 중학생 때 터졌다

한참 사춘기를 겪으며 아마도 아버지의 부재가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활발하게 일하는 건장한 아버지를 둔 친구에게 원치 않는 일에 끌려다녔다

속앓이를 한 아들은 엄마에게는 이야기 못한 사실을 사촌형에게 말함으로써 완력으로 해결하였다

결국은 학교 폭력위원회에 회부되고 고개 숙이고 힘없이 앉아있는 아들을 보며 이 모든 상황을 아버지의 부재 탓으로 돌렸다

아들을 둔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더 당황하며 아들을 지키지 못함에 또 한 번 마음을 후벼 팠다

고등학교를 멀리 버스 타고 다니면서도 불평한마디 안 하는 아들이 안쓰러웠다

컴퓨터에 빠져서 몇 시간이고 침묵하고 대화가 없어진 아이는 아버지의 혼냄을 송곳으로 대항하던 아이가 되어있었다

아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이 하고 싶은지 모르는 상태로 떠밀리다시피 대학을 가고 군대를 다녀왔다

군대를 다녀와서도 방황은 지속되었고 자퇴를 하였다

어릴 때 엄마손에 이끌려 교회를 다녔던 아이는 군 제대 후 자기 스스로 교회를 선택하고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어느 날 선교하러 외국에 나가겠다고 말했을 때 당당해진 아들의 행동과 함께 자신감이 보였고 뭐라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힘을 얻은 아들이 대견했다

아들은 가는데만 하루가 걸리는 콜롬비아로 향했고 한 번씩 전해오는 사진 속 아들은 행복해 보였다

지금은 페루에서 선교지를 개척하는 개척자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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