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레포트지가 터무니없이 많다

by 클로토

"와~ 수업이 끝났다. 방학이다"

하지만 웬 걸. 한학기 동안 수업한 것, 실습지도한 것들 시험 점수 매기는 과제가 남아 있다

서재로 쓰는 방 안 여기저기에 학생들 레포트지가 서랍장 위에도 바닥에도 책상 위에도 넘쳐난다

남편은 발디딜 틈이 없어도 들어와서 어깨를 주물러주고 나간다

"수고해"

직장을 다니며 겸임으로 간호학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올해로 7년차다

매 학기 학생들 수업은 매주 목요일에 한다

방학이라고 딱히 쉬는 것도 아니다

방학에는 실습지도를 해야 한다

쉬는 날이 일요일 빼고 주 중 목요일인데 그 날을 투자하는 것이다

직장 업무를 일요일만 쉬고 계속하라하면 못할텐데 또 다른 종류의 일이라 머릿속에서는 목요일은 쉬는 날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그런지 아주 힘들지는 않다

2학기 수업이 끝난 뒤라 성적처리하는 일이 남았다

특히 실습은 학생들에게 여러가지 미션이 주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점수화하는 항목이 많아 교수들의 업무도 늘어난다

한 학기 동안 지도한 학생 수만큼의 레포트지가 온 방 안에 수북하다

이 증거물들은 3년 동안 의무적으로 보관하게 되어있다

창고에는 학생들의 보고서 박스가 여러 개다

3일 동안 두 과목의 성적처리를 하고 나니 성적 열람 날이다

다행히 쉬는 날이어서 그렇지 근무중에 학생들의 문자 폭탄과 전화를 받으면 일하기가 쉽지 않다

"교수님, 제가 1점이 모자라서 그러는데요 어떻게 1점만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제가요 형편이 어려워 A이상 나와야 하는데 89점 입니다 어떻게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저희 조 발표 제일 잘했다고 교수님께 칭찬받았는데 가산점은 없을까요?"

겨우 학생들의 성적처리와 열람기간이 지나간다

이제 또 남은 건 이 모든 자료들을 전임 교수님들에게 대학의 인증 폼에 맞춰 보내드려야 하는 일만 남았다

천천히 하자 하고 있는데 여성건강 실습을 방학 때 해 달라고 전임 교수님께 연락이 온다

"교수님. 학생들이 교수님을 좋아해요 그래서 실습을 부탁드립니다"

사실이야?

좋아한다니 어차피 한 학기 동안할 것 "그래요 교수님 학생들 명단이랑 보내주세요" 흔쾌히 대답한다

실습일정을 받아보니 1월 초부터 2월 말까지다

그런데 지도학생이 한주만 해도 30명 가까이 된다

생각 이외의 쉴 틈 없는 일정과 학생 수에 깜놀이다

지금 널린 레포트지만 해도 한 방 가득인데 이제는 두 배가 되고 성적처리 기간까지 하얀 레포트 종이와 함께 동거동락해야겠네

나는 레포트 부자되겠네 휴!

23학년 2학기 실습 보고서 정리도 안 되어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새로운 학기의 시작이라니.

방학을 이용하여 책쓰기 모임에 집중하면 되겠다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스불축 책쓰기 모임에서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배려 해 주셨다

그래도 사람 일이란 것이 참 이상하다

일주일이란 시간 여유를 받았는데 과제는 여전히 못하고 있다

몇해 전 대학원 석사 과정을 거쳐 논문까지 발표하는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박사과정은 논문을 제출하지 않고 수료만 하였다

전임교수로 가는 것을 포기하면서다

이름있는 대학이나 정식 4년제 대학 전임교수들은 대부분 시간당 강의료가 괜찮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전문대학들의 전임교수들은 차이가 많다

공부를 하면서 대학교수로 가 볼 생각도 했는데 연봉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65세까지 일할 수 있으니 직장수명은 길어서 좋은데 간호학과 교수님들의 연봉은 신규간호사들 초봉수준이라니.

정말 놀라웠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몇년전에 시간강사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이해가 되었다

시간강사는 전임교수보다 더 적을 것이니까

지금 내가 직장에서 받는 월급에서 2000만원을 더 깎고 들어간다는 말인데 그래서 박사논문 쓰는 것을 과감히 포기했다

석사논문 쓸 때 일년 동안의 피폐했던 생활이 다시 떠올랐다

박사 졸업논문 전에 쓰는 서브논문은 실험논문으로 꽤 퀄리티 있는 논문으로 통과했는데도 말이다

수업을 할 때 눈망울이 반짝반짝하는 학생들을 보면 기본이 좋다

수업을 하면서도 신이 나고 서로 간에 피드백이 되니 자존감이 올라간다

학생들의 반응이 좋으면 수업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내 스스로 자신감이 생긴다

학생들의 평가 또한 내가 수업을 해야할 이유를 만들어준다

학생들의 교수 평가가 대학에서 최고점을 찍은 해도 있었다

"교수님, 학생들 평가 점수 보셨어요? 이 점수 사실이에요? 대박"

전임 교수님 한 분이 전화하면서 전해준다

수업을 잘해서라기보다 학생들에게 편안한 인상이어서 그러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나는 학생들과 함께 나누는 삶도 좋고 실습을 챙기는 시간도 즐겁고 현장에 실습 나왔을 때 반갑게 손잡고 붙드는 그 느낌도 좋다

지금 나에게는 레포트지가 터무니없이 많지만 괜찮다

온 방을 덮을지라도 흐뭇하다

오늘도 학생 지도에 나선다. 지금 똘망똘망 한껏 기대에 부풀어있는 실습학생들을 지도하러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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