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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토 May 30. 2024

모든 추억이 낭만이다.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 좀 봐라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김용택의 시 < 콩. 너는 죽었다> 전문




어린 시절 마당 가득 펼쳐진 콩대는 한 여름의 모습이다. 쏟아지는 햇살에 콩대를 뜨겁게 말리면 콩깍지 스스로 입을 벌리고 톡톡 터진다. 미처 입을 벌리지 않으면 여지없이 콩타작을 맞이한다. 아버지가 도리깨로 도리질을 하면 깜짝 놀라 튀어나온 콩알이 데구르르 구르고 여기저기로 튄다. 엄마와 나는 작대기로 남은 콩대를 두드려 마저 숨어있는 녀석들을 찾아낸다. 마당가의 구멍이라는 곳은 쥐구멍까지도 찾아가 콩알을 내 것이라고 뺏어온다.


벼 또한 물기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 덕석 위에 추수한 벼를 펼쳐놓는다. 뜨거운 햇살에 몸을 뜨겁게 달군 벼를 한 번씩 뒤집어주는 것은 우리 아이들의 몫이다. 조그마한 벼낱알을 하나씩 뒤집을 수 없으니 발로 골을 내며 밀고 가 그림을 그려주면 된다. 그때의 뜨거움이란. 맨발등 위에 닿던 뜨거움이 아직도 뜨거운 감각으로 살아있다.


깨를 털 때는 적당한 가지를 골라 살살살 내리쳐야 한다. 강약조절을 못하면 모가지까지 댕그렁 떨어진다. 자그마한 깨한 톨까지 놓칠세라 살살 다루며 멀리 튀어나가지 않도록 잘 두드려야 한다. 그 하나하나를 그러모아 한 됫박 담아주시던 그 손길이 그립다.


고추는 한 번 익기 시작하면 금방 익는다. 고추 두렁을 쪼그리고 않아 발갛게 익은 것들을 골라 따고 하루이틀 지나면 다시 그 자리에 새로운 녀석이 탐스럽게 매달려있다. 실한 녀석들을 한주먹씩 쥐고 있으면 마음이 풍년이다. 금방 바구니에 한가득 차고 굳어진 허리를 펴며 또 한 바구니. 이걸 빨리 말려야 하는데 장마가 온다. 우리가 잠잘 공간도 부족한데 고추가 온방안을 차지하고 누워있다. 아뿔싸! 고추 빨리 마르라고 이 더운 여름에 아버지가 불까지 때셨네. 매운 냄새는 어떡하고. 고추가 빨리 안 마르면 빨간 색깔의 물감이 방바닥을 물들인다. 


가지는 몇 나무만 있어도 된다. 가지 나무가 많으면 다 먹기도 전에 또 열려 무겁고 뚱뚱한 몸을 이기지 못하고 땅에 머리를 박고 매달려 있다. 배고픈 시절에는 밭에서 가지하나를 뚝 따 한입 베어 물고 다녔다. 먹고 나면 입가가 약간 아린다. 배고픔으로 먹었던 가지다. 당근도 가지와 함께 맛있게 먹었던 간식이었다. 가지보다 단단했지만 단맛이 더 우러나왔다.


양파 철에는 햇양파가 그리 달고 맛있었다. 어린 시절 달고 맛있게 먹었던 간식 중의 하나다. 까고 까고 또 까도 나오는 양파를 매운지도 모르고 먹었다. 가지보다 달고 맛있었다. 약간 매웁기도 했지만 단물이 훨씬 많이 나와 입을 풍족하게 했다.


시골집 앞에는 400여 평 되는 밭이 있다. 그곳은 우리의 먹거리들이 철을 달리하며 언제나 풍족하게 열매를 맺어 주었다. 논과 밭을 오가면 논농사와 밭농사를 책임지시던 아버지, 그 농작물들을 그러모아 장에 내다 파셨던 엄마. 작물들을 수확하여 한 푼이라도 돈으로 환산해야 했던 시절.  낭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자그마한 꼬막손으로도 살림을 보태야 했던 그 시절에는. 


그러나

지금은 모든 추억들이 낭만이다. 

허리 아픔도 

뜨거운 맛도 

아린 맛도 낭만이다.

단단한 식감도 

매운맛도 

배고픔도 낭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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