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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토 May 31. 2024

균열이 모질게도 아름답다

내 오십 사발의 물사발에

날이 갈수록 균열이 심하다


쩍쩍 줄금이 난 데를 불안한 듯

가느다란 실핏줄이 종횡무진 짜고 있다


아직 물 한 방울 새지 않는다

물사발의 균열이 모질게도 아름답다


서정춘의 시 <균열> 전문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가까운 근린공원으로 달리기를 하러 갔다. 식후에는 김형석 철학자의 장수비결을 따라 하기 위해 걷거나 달리기를 한다. 걷고 뛰고를 하고 나면 만족스러운 행복감이 밀려온다. 운동을 마무리하고 집을 향해 가는 길에 단체로 저녁 운동을 하고 있는 무리를 만났다. 앞에서 무선마이크로 구령을 붙이면서 리드하시는 체구도 다부진 남자리더가 계셨고 운동을 함께 하는 30여 명의 어르신들이 있었다.


요가운동을 못하는 날, 근린공원으로 걷뛰를 하러 오는 날 가끔 봐왔던 운동모임이다. 집 가던 길을 멈추고 합류하였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운동으로 한 시간 동안 진행하였다. 퇴직 목사님이 7년 차 운동기부를 하고 계셨다. 예배가 있는 수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한 주 5일, 저녁 7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30여분 따라 해 보니 본 것처럼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맨 앞줄에서 엉거주춤 따라 하는 남자 어르신의 나이는 94세라고 한다. 90세를 일기로 작년에 돌아가신 친정엄마를 생각해 보면 대단한 몸놀림이고 의욕이다. 맨 뒷줄에서 열심인 70대로 보이는 어르신은 허리가 굽혀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손이 제법 땅가까이 간다고 리더가 칭찬을 한다. 우리 아파트 주민도 두 분이나 계신다.


공원에서 운동을 따라 하면서 어르신들의 몸이 틀어진 것도 엉거주춤한 것도 동작을 따라 하지 못해 헤매는 모습도 보았다. 균형이 잡히지 않고 힘들면 나무를 붙잡고, 음수대를 붙잡고 운동하는 이분들의 역사가 몸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몸에 쩍쩍 줄금이 나 있다. 


나 또한 줄금으로 이루어져 있다. 줄금으로 물사발이 깨지지 않도록 가느다란 실핏줄이 종횡무진 짜고 있다. 이미 삼십 대 중반에 흰머리가 많아 새치염색을 남들보다 일찍 시작했고 사십 대 중반에 완경을 맞이했다. 오십 대 중반에 고혈압 약을 먹기 시작하고 당뇨 전단계의 증상이 있어 식이요법을 시작했다. 


어느 것 하나 남들보다 늦은 적이 없다. 언제나 선발주자라는 것을 앎으로 운동을 빨리 시작한 것도 있다. 외로움에도 몸부림쳐보고 녹록지 않는 가난에도 시달려보았다. 독박육아를 하면서 삶에 지치기도 하고 늦은 나이에 늦공부도 시작해 보았다. 이혼위기를 넘기기도 하고 투잡을 하면서 아이들 뒷바라지도 해보았다.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살아간다. 천직을 가져 아직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책도 읽는다. 평생에 가장 자신 없었던 새벽기상으로 글도 쓰고 야무진 꿈도 가졌다. 살아온 길이 대로변도 있었지만 오솔길도 있었고 가시덤불도 있었다. 힘들게 등성이도 오르내리는 사이 인생의 줄금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이분들도 줄금을 감싸기 위해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실핏줄로 종횡무진 인생을 짜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오셨겠지. 모두가 열심히 살아온 균열이 모질게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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