善의 씨앗을 퍼트려 萬物(만물)을 움트게 하라(25)
일타큰스님 법어집 중에서
석가모니불의 화신으로 추앙받았던 조선시대 중기의 고승 진묵대사(震默大師, 1562~1633)는 많은 이적을 남기신 대도인이었다. 스님에게는 누이동생이 하나 있었고, 누이동생이 낳은 외동아들은 찢어지도록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이 조카가 가난을 면하기 위해서는 복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하신 스님은 7월 칠석날 조카 내외를 찾아가 단단히 일러주었다.
“얘들아, 오늘 밤 자정까지 일곱 개의 밥상을 차리도록 하라. 내 특별히 칠성님들을 모셔다가 복을 지을 수 있도록 해 주마.”
진묵스님이 신통력을 지닌 대 도인임을 아는 조카는‘삼촌이 잘 살게 해 주리라’ 확신하고 열심히 손님맞이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여 마당에다 자리를 펴고 일곱 개의 밥상을 차렸다.
밤 12시 정각이 되자 진묵스님이 일곱 분의 손님을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오는데, 하나같이 거룩한 모습의 칠성님은 아니었다. 한 분은 째보요, 한 분은 곰보, 또 다른 분은 절름발이요, 곰배팔이요, 장님이요, 귀머리 들이었다. 거기다가 하나같이 눈가에는 눈곱이 잔뜩 붙어있고 콧물이 줄줄 흐르고 있는 것이었다.
‘삼촌도 참, 어디서 저런 거지 영감들만 데리고 왔노? 쳇, 덕을 보기는 다 틀려버렸네.’
조카 내외는 기분이 크게 상하여 손님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부엌으로 들어가, 솥뚜껑을 쾅쾅 여닫고 바가지를 서로 부딪히고 깨면서 소란을 피웠다. 이에 진묵스님이 권유로 밥상 앞에 앉았던 칠성님들은 하나, 둘 차례로 일어나 떠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마지막 칠성님까지 일어서려 하는데 진묵스님이 다가가 붙잡고 사정을 했다. “철없고 박복한 조카가 아니라, 나를 봐서 한 숟갈이라도 드십시오.”
일곱 번째 칠성은 진묵스님의 체면을 보아 밥 한술을 뜨고 국 한 숟갈을 먹고 반찬 한 젓가락을 집어 드신 다음 떠나갔고, 진묵스님은 조카를 불러 호통을 쳤다.
“에잇, 이 시원치 않은 놈! 어찌 너는 하는 짓마다 그 모양이냐? 내가 너희를 위해 칠성님들을 청하였는데, 손님들 앞에서 그런 패악을 부려 다 그냥 가시도록 만들어? 도무지 복 지을 인연조차 없다니…….”
그리고는 돌아서서 집을 나오다가 한 마디를 더 던졌다.
“그래도 마지막 목성 대군이 세 숟갈을 잡수셨기 때문에 앞으로 3년은 잘 살 수 있을 게다.” 이튿날 조카는 장에 나갔다가 돼지 한 마리를 헐값에 사 왔는데, 이 돼지가 며칠 지나지 않아 새끼를 열두 마리나 낳았고, 몇 달이 지나자, 집안에는 돼지가 가득하게 되었다. 또 돼지들을 팔아 암소를 샀는데, 그 소가 송아지 두 마리를 한꺼번에 낳았다.
이렇게 하여 진묵스님의 조카는 3년 동안 아주 부유하게 살았다. 그런데 만 3년째 되는 날 돼지우리에서 불이 나더니, 불이 소 외양간으로 옮겨 붙고 다시 안채로 옮겨 붙어, 모든 재산이 사라지고 말았다. 3년의 복이 다하자 다시 박복하기 그지없는 거지 신세로 전략한 것이다.
다소는 전설처럼 들릴 수도 있는 이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새겨볼 수 있다.
첫째는 복을 구하는 사람의 태도이다. 복은 특별한 권능자가 내리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도 하나님도 그 어떠한 신도 무조건 복을 줄 수가 없다. 이 복은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이다. 복을 담을 수 있는 마음가짐이 갖추어져 있고, 또 정성을 다하면 저절로 다가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칠성님이 오신다기에 열심히 음식을 준비했던 진묵스님 조카의 마음은 성심(誠心)이 아니라 ‘기대 심리’였고, 상대가 거룩하지 않게 보이자, 기대심리가 와르르 무너지면서 기분마저 상해 칠성들을 쫓는 박복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이러한 짓은 진묵스님 조카만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중에서도 이렇게 처신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찌 눈앞의 이익에 현혹되고 기분 따라 움직이는 자가 큰 복을 담을 수 있으랴.
또 한 가지, 모든 복에는 정해진 수명이 있다. 복이 다하면 기울기 마련인 것이다. 이를 부처님께서는‘하늘로 쏘아 올린 화살’에 비유하셨다. 하늘로 쏘아 올린 화살이 올라가고 있을 때는 기세도 좋고 보기도 좋지만, 그 힘이 다하면 반드시 떨어지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을 잘 알아서 우리도 올라가고 있을 때 인연을 소중히 하고 복을 닦아야 한다.
요즈음 우리는 부자로 지내던 사람이 일순간에 파산하는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된다. 실로 안타까운 사연도 많지만, 인연법에서 보면 부자로 살 연이 다하여 그렇게 되는 것이다. 재물뿐만이 아니다. 명예도 권력도 수명도 인연이 다하면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된다.
지금, 이 나라에 찾아왔던 IMF 사태도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인과응보이다. 사치⋅낭비⋅거품⋅정직하지 못한 삶……. 참으로 인연법을 잊은 채 살았기 때문에 도래한 결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인연법으로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모든 것은 인연이다. 인연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고, 인연이기 때문에 달라질 수 있다. 인연이기 때문에 또다시 바뀔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주어진 여러 가지 환경, 곧 연(緣) 이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을지라도, 우리의 마음가짐과 자세, 곧 굳건한 인(因)으로 열심히 노력하면(業) 또다시 좋은 결실(果)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좋은 현실 속에서도 교만하지 않고, 나쁜 현실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인연법을 따르는 참다운 사람이다.
어떠한 바람이 휘몰아쳐 올지라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인연에 맡길 뿐, 바람 따라 흔들려서는 안 된다. 괴로움과 즐거움, 얻고 잃는 모든 것을 인연으로 받아들이고 흔들림 없이 살면 크게 향상된다.
흔들림 없이 인연에 순응하며 복을 닦아라. 복을 닦는 자에게만 복이 깃든다. 그럼, 어디에다 복의 씨앗을 심을 것인가? 복전(福田)에다 복을 심으면 된다.
우리 모두는 복전(福田)을 가지고 있다. 밭에다 씨앗을 심으면 온갖 작물이 자라듯, 마음의 밭에 선행의 씨를 심으면 복이 풍성해진다.
세상의 복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글을 잘하는 사람은 문복(文福)이 있다 하고, 돈이 많은 사람은 재복(財福), 장가를 잘 간 사람은 처복(妻福)이 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온갖 종류의 복들이 우리들 주위에 가득히 널려 있다.
자식 복, 관복, 오래 사는 복, 심지어는 이빨이 좋은 치복(齒福)까지 있다. 이 모두가 우리가 갖고 있는 복전에다 바른 생각의 씨를 심고 바른말과 바른 행동으로 복업(福業)을 지은 결실들이다.
그리고 많고 많은 복밭 중 특별히 부처님께서 가꿀 것을 권장한 ‘팔복전(八福田)’이 있다.
① 물이 없는 곳에 샘을 파서 사람들에게 물을 공급하라.
② 물이 깊은 곳에 다리를 놓아 사람들이 쉽게 건너갈 수 있도록 하라.
③ 험한 길을 잘 닦아 사람들이 오가는데 불편이 없도록 하라.
④ 부모에게 효도하고 잘 봉양하라.
⑤ 불⋅법⋅승 삼보를 공경하고 공양하라.
⑥ 병든 이를 잘 돌보고 구휼하라.
⑦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도와주라.
⑧ 법회를 열거나 법보시를 행하여 불법을 널리 펴라.
이 여덟 가지는 모두 큰 복을 짓는 일들이다. 그리고 이들 중 앞의 셋은 공공사업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개인적으로는 ④번에서 ⑧번까지를 실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밖에도 우리가 닦을 수 있는 복은 많다.
마음을 넉넉하게 쓰는 일로부터 남을 살리고자 하는 한 생각, 형편 따라 능력 따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베푸는 것 모두가 복업이 된다. 그리고 복을 짓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복 지음을 너무 내세우지 말고, 약간은 바보스럽게 복을 지으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