善의 씨앗을 퍼트려 萬物(만물)을 움트게 하라(50)
일타스님 법어집 중에서
옛날 어느 마을메 가난한 선비가 살고 있었다. 그 선비는 거의 매일같이 마을 뒷산의 절에 올라가서 법문도 듣고 스님과 글도 짓고 이야기도 나누며 소일하였다.
그러다가 공양 때가 되면 밥 한술을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요즈음 같으면 한 끼 식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는 밥 한 그릇만을 얻어도 신세를 많이 졌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으므로 선비는 언제나 스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어느 날 장에 나갔던 선비는 마침 물건을 사러 온 스님을 만났다. 스님을 본 선비는 너무나 반가웠고,‘스님이 내려오셨을 때 한 끼 식사라도 대접해야지, 하면서’ 집으로 모시고 갔다. 그리고는 아내를 따로 불러 말했다.
선비 : “여보, 저분이 내가 항상 폐를 끼쳤던 웃절의 고마우신 스님이오. 혹 대접할 것이 없겠소?”
아내 : “글쎄요? 밀이 한 주먹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선비 : “그것으로라도 어떻게 해보구려.”
비록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이었으나 부인은 정성을 다해 밀국수를 만들었다. 그리고 맛이 좋으라고 새우젓도 조금 넣고 파와 마늘도 썰어서 넣었다.
국수가 완성되자 남편 그릇에는 국물을 많이 넣고 스님 그릇에는 국수를 많이 넣은 다음 상을 차려 들고 갔다.
그러나 스님은 파⋅마늘 냄새가 싫었다. 거기에다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어보니 새우젓 맛까지 나는 것이었다.
스님 : “처사님, 저는 먹지 못하겠습니다.”
선비 : “입에 맞지 않더라도 조금만 드시지요?”
스님 : “어찌 중이 파⋅마늘을 먹을 수 있겠소?”
그리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가버리는 것이었다. 마음이 좋을 까닭이 없는 선비는 혼자 투덜거렸다.
“저분은 평생 중 노릇밖에 못해 먹겠다. 저 옹고집으로 어떻게 중생을 교화할까? 남의 정성도 헤아릴 줄 알고 중생을 위해 동사섭(同事攝:중생의 근기에 따라 몸을 나타내어 고와 복락을 함께 하는 것)도 할 줄 알아야지. 사람이 저렇게 막혀서야…….”
선비는 신심이 뚝 떨어져서 다시는 절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평범하나마 계상(戒相:계율을 실천⋅수행함에 차별이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대변해 주는 이야기이다.
선비 부부의 성의를 생각해서 스님이 파⋅마늘을 한쪽으로 젖혀놓고 국수 건더기만이라도 먹었으면 되었을 것인데, 굳이 숟가락을 놓고 가버리면 누군들 좋아하겠는가?
이것은 계행을 올바로 지키는 것이 아니다. 계상에 의거하여 갖가지 차별상에 맞게 방편으로 따라줄 수도 있는 것이다.
계율을 위한 계율, 그것을 참된 해탈법이 될 수 있게끔 하기 위하여 계법(계율의 법칙)⋅계체(계를 깨닫고 공덕의 힘을 나타냄)⋅계행(계율을 지켜 닦는 행위)과 함께 계상을 설하신 것이다.
불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제법을 마음 깊이 새겨서 계행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그리고 중생 구제를 위해서는 계상의 문을 잘 여닫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계율은 진정한 해탈의 법이 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을 무조건 비방하거나 수용하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사리를 잘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