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률, 경제발전, 소비촉진 등의 용어에서 느껴지는 ‘성장’에 대한 의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선악의 개념으로 치자면 마치 ‘선’을 위한 상수값처럼 느껴진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은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식의 정당성마저 느껴진다. 그야말로 성장해서 잘 먹고 잘 살자는 ‘좋은 의도’인 것이다. 내수 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소비 촉진에 이바지하고 있는 훌륭한 일일 것이다.
하여 우리는 경제가 어려울수록 더 많이 사고, 더 많이 먹고, 더 많은 곳을 돌아다녀야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미 나도 너도 우리도 모두 그렇게 하고 있는데, 그 놈의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가? 우리의 소비가 부족한 것인가?
아니다. 난 이미 너무나 많이 사고 있다. 지척에 자리한 다이*에서 마음껏 물건을 바구니에 담는다. 만원짜리 한 장으로 식당에서 배불리 먹기는 힘들지만 다이*에서는 한아름의 물건을 살 수 있다. 그렇게 필요한, 필요할지도 모를, 필요했으면 좋겠는 물건들을 산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하다. 분명 가성비 따져가며 산 합리적인 소비였고, 경제성장에도 기여했다는 뿌듯한 기분을 느껴야 하는데, 아파트 옆에 자리한 쓰레기 분리수거장이 눈에 밟힌다. 오늘 산 다이* 물건과 쓰레기수거장에 있는 물건들이 달라보이지 않는다. 어느 것이 필요한 물건이고, 어느 것이 쓰레기인지 헷갈린다.
그리고 현타가 온다. 다음과 같은 사실이 뒷골을 서늘하게 한다.
더 많이 산다면 지구상의 어딘가에서는 내가 버린 쓰레기가 놓일 공간이 필요할 것이다.
더 많이 먹는다면 더 많은 가축들이 희생될 것이다.
더 멀리 간다면 에너지가 연소된 만큼 탄소는 공기 중에 더 흩뿌려질 것이다.
무엇이든 더 많이 한다면 올 해 여름에도 역시 뜻 밖의 장소에서 뜻밖의 날씨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혼자서 온 지구를 걱정하는 와중에도 TV에서는 또 올 해 경제성장률을 걱정하는 뉴스가 나온다. 뉴스에서 걱정하는 데로 자영업자들에게는 이런 따위의 지구적인 고민이 사치스럽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가능한 길게 살아남을 하나뿐인 지구를 위해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다이*간판과 쓰레기장을 함께 보며 고민에 빠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