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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명의 이수연 Sep 06. 2024

쳇에게 일어난 일들

아름답고 나쁘고 이상한 쳇 베이커.

 쳇 베이커에 관해 내가 가장 놀랬던 사실은 그의 죽음의 이유가 약물남용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는 추락사했다. 그것도 59 세에. 그의 행보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의 장수다. 마약으로 인해 실제 나이보다 20 살 이상 더 들어 보였던 그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였다. 재즈계의 제임스 딘, 쿨재즈의 왕자, 손짓 한 번으로 어떤 여자도 얻을 수 있었던 마성의 남자. 쳇 베이커가 마약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전 요절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본다. 찰리 파커를 만나기 전이나 제리 멀리건을 만나기 전에 죽었다면.

 54 년 어느 스튜디오에서 마지막으로 ‘my funny valentine’을 녹음한 뒤 그 특유의 미성으로. 모두 수고했어요. 조금 있다 건너편 펍에서 봐요라는 말을 남긴 체 길을 건너다 차에 치었다면 어땠을까. 그가 죽은 뒤 그 전설의 ‘sings’라는 앨범이 나오면 여자들은 나의 밸런타인이 죽었다며 눈물을 그렁였겠지. 미남단명이라더니 결국 잘생긴 애들은 다 일찍 가는구나. 제임스 딘도, 리버 피닉스도, 쳇 베이커도.


 하지만 쳇은 죽지 않고 나날이, 성실하게 추해졌다. 마약상에게 얻어맞아 앞니가 빠진 체 트럼펫을 불 때도 연주비는 언제나 현찰로 받았다. 약을 구하기 용이했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릴 때는 아내도 자존심도 음악도 모두 팔아버렸다. 악동이라기엔 너무 사악했고 악마라기엔 치사했다. (사실은 내가 제일 못됐지. 굳이 54 년이어야 하는 것은 ‘sings’ 앨범은 녹음하고 가시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용서해 주세요.)


 내가 스물두 살 일 때, 쳇의 실체를 제대로 몰라서 행복했다. 언젠가 친한 후배가 “선배 되게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라고 고백을 했는데. 내가 술 먹다가 갑자기 사라져선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고 했다. 술 마시니까 단거 먹고 싶죠? 하면서 사람들에게 하나씩 돌렸다고. 그래서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다고. 그 술자리와 아이스크림 사이에 쳇 베이커가 있다는 걸 후배에게 알려줬다. 그러니까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쳇 베이커가 너무 듣고 싶은데 시디를 안 가지고 온 거였다. 그래서 근처의 레코드 샾에 가서 샘플로 걸려있는 쳇 베이커를 실컷 듣고 기분이 좋아져선 아이스크림을 산거였다. 후배가 가만히 듣더니,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이상한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모든 행복한 사람은 조금 이상해 보이는 법이다. 그러니 그 시기에 나는 정말 행복했나 보다. 사실 진짜 후회되는 순간이 있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제임스 개빈이 쓴 쳇 베이커 전기를 추천하길래 그걸 덥석 읽었는데. 900 쪽 가까운 페이지 중 한 300 페이지 정도가 이 남자가 얼마나 구제불능인지에 대해 쓰여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부제가 ‘악마가 부른 천사의 노래’. 이 책을 읽고, 마치 아버지의 파렴치한 전과 사실을 알게 된 자식처럼 혼돈스러웠다. 계속 사랑은 하는데 존경하지는 못하겠고, 아버지가 웃으면 나도 모르게 따라 웃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아버지, 그런 짓을 벌이시곤 잘도 웃으시네요라고 읊조리는 느낌의 혼돈이다. 모르고 행복할 것을.

처음으로 샀던 쳇 베이커 cd.

그리고 며칠 전, 남편의 생일을 축하하러 간 레스토랑에서 쳇 베이커를 끊임없이 틀어줘 다시 한번 그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두 시간 넘게 끊임없이 쳇의 노래와 연주들이 나오는데 하나같이 아름답고 반짝거렸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것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 남자가 만든 시궁창에서, 더 이상 주사기를 꽂을 수 없을 만큼 퉁퉁 부은 혈관들과 그럼 발가락 사이에 놓으라고 신발을 벗다 넘어진 쳇과, 이미 하이 상태에 있어서 침을 질질 흘리며 낄낄대는 동료들과, 그 광경을 절망스레 지켜보는 연인이 있는 그 시궁창에서 이 아름다운 것들이 왔을까. 아님 마스카라가 번진 눈으로 총구를 만지작거리며 쳇, 이 개자식아. 니가 날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여줄게라고 울부짖는 그 방 옆에서, 이 애틋한 음악들이 왔을까. 모를 일이다. 아름다운 작품을 만든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면 간단하겠지만.


미성년자를 간음했던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는 의심의 여지없이 명작이고, 소아성애를 의심받는 우디 앨런의 영화는 낭만적이다. 심지어 강간교사라는 뒷 이야기가 있는 베르툴루치의 영화는 감독상을 타고, 쳇 베이커의 ‘You can’t go home again.’은 여전히 내 심금을 울린다. 간단하지가 않다. 언제나 미치고 팔짝 뛰는 건 나다.


 그래서 이제  저는, 저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이런 결론을 내보려 합니다. 아름다운 것, 나쁜 것, 이상한 것은 실은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것. 얘들은 하나의 숙주에 공생하고 있고, 때로는 서로를 자양분으로 삼는다는 것. 때로는 서로를 서포트하고, 서로의 멘토가 되기도 한다는 것. (마치 에셔의 그림처럼.)


물론, 나쁜 짓 없이도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분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시죠? 그분. 새벽에 일어나서 글 쓰고 가끔 마라톤 하고 재즈 좀 듣다가 맥주 마시고 잠드시는 무해한 분. 이름이 하루키던가? (이분도 약간 이상하긴 해요.) 그러니, 저는 이제 성호를 긋고 쳇 베이커를 틀겠습니다. 그에게 학대받은 여러 영혼들이여 부디 저를 용서하십시오. 저에게는, 자비를. 당신에게는, 평화가. 있기를.

누가 우리 집사 얘기하네.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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