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보이 비밥'과 애증의 각설이.
대학교 2학년 때, 속눈썹이 길고 키가 큰 남자친구가 있었다. 둘 다 좀 휘청거리며 걷는 스타일이었는데, 붙어 다니니까 그 휘청거림이 나름 율동으로 승화되는 느낌이랄까. 성실한 친구였다. 첫차부터 막차까지, 무슨 패키지여행 가이드마냥 날 데리고 돌아다녔다. 다음날이면, 강의실 첫 줄에 앉아 내가 언제 오는지 계속 돌아보고 돌아봐서 친구들이 ‘저 오빠 불쌍하다, 언니는 원래 제시간에 안 오는데. 기말고사 시험시간에도 만화방에서 자고 있던 사람인데 모르고 만나는 거냐’ 탄식했다고 한다. 어찌나 집요하게 공부를 시키는지, 엄마가 몰래 고용한 과외선생인 줄 알았다. 그리고 나는 이 친구의 조련으로 기말고사 빵구 낸 애에서 과탑이 되었는데 다시 생각하니 또 고맙다, 야.
그렇게 연애 초창기 때, 갑자기 이 친구가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있다며 빈 스튜디오로 나를 불렀다. 이 안에서 혼자, 조용히 듣고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의자 뭐 그런 건가 싶어서 얌전히 앉아있는데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주 심플한 영어 가사였는데 대충 이러했다.
내가 너를 엄청 사랑하긴 하는데, 넌 아닌 거 맞지?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 되었어.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지금 이 기억들도, 뭐 언젠가 잊히겠지. 그리고 난 생각보다 강하니까, 가도 돼.
아 잠시만! … 벌써 갔네. 너답네.
https://youtu.be/Mq3S-cTApwY?feature=shared
적당히 허스키하고 담담한 여자보컬이 부르는, 감미로워서 아픈 재즈곡이었다. 그 아이는 이 노래의 제목이 ‘Adieu’라고 했다. 안녕히. 표정은 차분했다. 이게 정말 노래 소개인지, 경고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좋은 노래라고 생각했다. 내가 지각을 너무 많이 해서, 전화 자주 안 해서 시위하는 건가. 나중에라도 좋게 좋게 헤어지자는 건가. 아무튼 그게 뭐든, 이제부터는 이 노래를 너의 테마곡으로 정하겠다고 생각했다(나에게는 친한 사람마다 지정해 놓은 테마곡이 있는데, 그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재생된다). 그랬는데, 여기서 차라리 헤어졌으면 좋았을 텐데. 너는 니가 소개한 노래 속 주인공만큼 쿨하지도, 강하지도 않았지. 너는 각설이었어.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의 그 각설이. 헤어지는 데 1년 가까이 걸렸나. 너는 좀비. 너는 토미에. 관두자.
나중에 이 노래가, 일본에서 대흥행 했던 ‘카우보이 비밥’의 수록곡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의 26부작 애니메이션 시리즈이자, 천재 음악감독 칸노 요코가 OST를 맡은 그 작품. 20세기는 ‘카우보이 비밥’을 남겼다는 어마어마한 평이 쏟아지던 그 작품, 나는 절대 안 볼 그 작품. 각설이의 끝없는 부활로 진이 빠진 나는 그 애와 헤어진 이후에 덩달아 이 시리즈도 잊었다. 그리곤 얼떨결에 대학원을 준비하게 되었다. 원하던 진로는 아니었다. 원래의 야무진 계획은 ‘Kino’라는 잡지사에 기자로 입사해서 일을 좀 하다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현장도 경험하고 그리하여 이론과 경험이 풍부한 영화인이 되는 것이었는데 그 잡지사가 망했다고 했다. 왜요!!! 이렇게 훌륭한 잡지사가, 왜 망해요?(그럼 제 취업은요? 제가 면접 때 보여드리려고 어떤 묘기를 준비했는지 아시냐고요.) 하지만,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가끔은 너무 훌륭해서 망하는 경우도 있는 법. 적당히 훌륭해야 성공하는데. 훌륭하고 타협을 몰랐던 키노의 편집장 정성일을 위해 잠깐 기도하고 내 살길을 도모했다.( 소속 없는 영화과 졸업생은 가족 공동의 짐이기 때문에!!! 그때 유학 준비를 하던 친구가, 한예종이라는 학교를 알려주었다.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인데, 한번 넣어봐. 시나리오 전공으로. 너 글 쓰는 거 좋아하잖아.
한 달 동안 초집중해서 대학원 준비를 했다. 원서 접수까지 30일이 채 안 남았었는데 그 기간 안에 장편 시나리오 한편과, 단편 소설, 그리고 5매 분량의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했다. 퀄리티는 모르겠고, 일단 완성을 해서 접수(투척)를 하자라는 마음으로 썼다. 사람들에게 시나리오를 돌렸더니 무슨 내용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뭔가 그럴듯하다고 했다. 힘을 내라고, 오늘 밥은 내가 사겠다고(아니 어깨는 왜 두들기고). 암튼 원서 접수를 끝내자, 서울에 올라와서 연출부 막내를 해 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이 들어왔고 나는 바로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갔다. 운이 좋았다. 나를 소개한 언니가 이 친구는 엑셀 전문가라고 뻥을 쳤는데, 첫날부터 아니라는 걸 들켰다. 연출부 퍼스트 오빠가 대단한 사기꾼이 왔다고 수시로 놀려, 해 질 녘에는 혼자 도산공원을 돌며 복잡한 마음을 달래곤 했던 수많은 저녁들. 그리하여 어느 지하 피시방에서 합격 공지를 확인한 나는 그 일대를 빠른 스텝으로 휘청거리며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너무나 순수하게 기쁜 순간이어서 모르는 사람들한테 막 웃어주며 다녔다(무서우셨죠). 다음 날 영화사에 출근해 합격했다고 말했더니 사람들이 통일됐다는 뉴스만큼이나 쇼킹해했다. 나를 무슨 부산에서 온 사기꾼 정도로 인지하고 있었다는 건데 이거 이거 대학원생의 매운맛을 보여줘야겠구먼.(아직까지 못 보여줌.)
암튼 다음 해 3월에 나는 한예종 영상원 전문사에 들어갔다. 한예종, 특히 영상원, 연극원, 미술원이 있는 석관동은 주변에 놀 것 없고, 먹을 것 없는 걸로 유명한데 학교 터 자체가 예전에 안기부 건물이 있던 곳이라 보안상 그 근처에 고층 건물을 짓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자연스레 재개발도 안 되고.
하루는 비가 와서 택시를 타고 학교 안으로 들어왔는데 기사님이 여기 무슨 엠비시 아카데미 같은 데예요?라고, 물으셨다. 아 뭐 비슷한 거예요. 저기 본관 앞에 세워주세요 그러면 기사님이 본관이 어딨어요?라고, 되물었다. 저기 저 작은 건물이 우리의 본관이라고 아무리 호소를 해도, 기사님은 마냥 안 들리시는 것처럼 답이 없고. 기사님, 저는 뭐 농담하고 그러는 사람 아닙니다. 저쪽에 보이는 컨테이너 박스는 매점이에요. 그러니까 저 별관처럼 보이는 본관 앞에 세워 주십시오! 기사님은 한숨과 함께 미터기를 끄셨다. 약간의 정적. 아니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무슨 말을 하시려고. 그러니까 학생, 공부를 열심히 하지 그랬어. 비는 내리고, 우산은 없고, 기사님은 내 맘도 몰라주고. 안기부도, 정성일도, 기사님도. 다 미워!
*그러니까 이건 신관이 세워지기 전의 이야기입니다.
시청각실과 도서관도 컨테이너라는 것은 비밀로 했다. 바닥에는 부직포 카펫이 깔려있고 왠지 모를 꿉꿉한 냄새가 나면서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바닥의 수평이 안 맞는 것 같은 기이한 촉감의 컨테이너. 각 자리마다 커튼을 치고 들어가서 모니터도 아닌 텔레비전으로 dvd를 보아야 했던. 이것이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한예종의 실체란 말인가. 국립은 원래 좋은 거 아닌가? 가난한 건가?
하지만 역시 선인들의 지혜는 따라갈 수 없는 법. 이토록 개발이 낙후된 곳에, 이곳을 지어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다. 주변에 어차피 놀 곳이 없으니 너는 공부를 하라. 생각하고 고민하고 작업하라. 컨테이너에 들어가 책과 영화를 보라. 밤에 돌아다녀봤자 동네 주민이랑 비둘기밖에 없으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아 진짜 기가 막힌 아이디어였다. 내 자양분의 아주 많은 부분이 그 컨테이너 안에서 적재되었으니 그 컨테이너는 나의 두 번째 자궁이려나(이 표현 왠지 싫다. 왜일까). 특히 아직 보지 못한 영화들이 엄청 많았다. 닥치는 대로 영화를 보다가 ‘카우보이 비밥’을 발견했다. 원래 참을성이 없어서 시리즈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제 나도 좀 컸고, 더 이상 각설이도 안 나타날 것 같아서 시작했다. 26부작의 1부작을. 사실 한 에피소드당 20분 내외라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도 다 볼 수 있었지만 1부를 본 후 깨달았다. 유의요망. 아껴서 볼 것.(2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