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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루 clou Mar 18. 2016

젓가락질과 아메리카노, 그리고 껌값..

 사랑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흔한 말이 있다.

어떻게 말하면 한없이 무서운 말이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X맨 젓가락질


  한 때, 20여년동안 X맨 젓가락질을 고수해왔던 나를 변화시킨 사람이 있었다. 

함께 저녁을 먹다가 서툰 내 젓가락질을 보고는 못내 안타까웠는지, 가만히 내 먹는 모습을 바라보다 손수 가르쳐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라는대로 따라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난 이후로 밥을 먹을때마다 젓가락질 연습을 했다. 집에서 혼자 라면을 먹을 때도, 그냥 후루룩 먹으면 3분 뚝딱인것을 15분씩 걸려서라도 성실한 제자가 되고자 했다. 그렇게 보름 후에는 정말 거짓말같이 20년의 버릇이 제대로 길들여졌다. 나중에는 주위로부터 젓가락질을 잘한다는 소리도 듣게 되었다..


클루가 주문한 아메리카노

 지인들은 거의 알고 있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커피를 싫어한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사람들은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해서는 졸린 눈을 비비며 모두 커피를 손에 쥐지만, 내가 고르는 것은 늘 맛나는 복숭아홍차와 레몬차이다. 하지만 언젠가 나를 자연스레 커피숖으로 이끄는 사람이 있었다. 그때서야 아메리카노를 알게 되었고, 굳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그 향을 좋아하려 노력했고, 훗날 분위기 좋은 커피숖을 찾아보는 기쁨과 함께 혼자서 아메리카노를 음미하기도 했다..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도 바꾸지 못했던 고약한 20년동안의 버릇도 무색케 했다.
또한 사랑은 쉽게 믿을 수 없겠지만, 진짜 싫은 것을 좋아하게 만드는 신비한 힘도 있다.
 나를 변화시켜서가 아니다. 

그 기억들이 소중한 것은 스스로 변하고자 했던 내가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테이블 위로 껌을 건네는 그 사람에게 내가 물었다. 

" 웬 껌? "

"응, 지하철에서 한 통 샀어요. 할머니가 1000원에 팔던 걸. "
" 그런 걸 왜 사요. 불쌍한척 다 팔아먹는 건데.. "
" 에이, 아무리 그래두 그렇지.. 할머니가 힘든데 불쌍하잖아. 원래 껌값이 500원이니까 그냥 500원어치 불우이웃 도왔다고 생각하면 돼요 ^^. "
 거창한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 것 까진 없겠지만, 난 그 때 사실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 사람의 마음이 예뻤지만 그 정도가 전부였다. 


나는 오늘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오면서 다리를 절뚝거리며 껌을 파는 아저씨를 보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문득 그 사람이 생각났다. 그리고 어느새 아저씨의 손에 천원 한 장을 쥐어주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껌을 받고, 머리숙여 인사하는 아저씨께 더욱 몸을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러자 잠자코 있던 옆자리 청년까지 덩달아 껌을 샀다. 지하철의 차갑던 분위기가 훈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사실 지하철에서 적선을 바라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 자력갱생이 아닌 철저한 악덕 지배구조 하의 그들을 애써 외면해야만 좀 더 부지런하고, 건강한 사회가 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냉정하게 외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연민의 정이 먼저 생기는 것일까. 어쩌면 소수의 사람들은 정말 어려운 사람들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그게 아니더라도 내 돈 천원이면 그 사람들에게는 무엇이 됐든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앞으로도 지하철에서 누군가 껌을 판다면 난 꼭 그 사람이 생각날 것 같다. 나를 조금은 유연한 사람으로, 착한 클루씨로 변화시키고 있는 소중한 그 사람이 생각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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