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들. 모두 다 챙겨야만 할까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건네는 사소한 조언
나는 기념일을 중시하는 편이다. 아니 그보다는 구색을 갖추는 걸 중시하는 편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무심해 보이는 겉모습에 속아 생일, 결혼기념일, 어버이날 등등을 안일하게 생각하고 그냥 넘기게 되면 금세 분위기가 싸늘해지는 집안에서 자랐고 그중에서도 그런 분위기의 중점적인 역할을 했던(본인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엄마의 영향이 크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끼리도 생일 아침에는 미역국을 먹고, 저녁에는 케이크의 촛불을 끄고, 빼빼로 데이에는 빼빼로를 전달하고,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에는 초콜릿과 사탕을 주고받았으며, 어버이날에는 카네이션 화분, 브로치, 캔들 등을 선물했다. 매일 티격태격하는 와중에도 기념일은 꼭 챙기는 모습이 나는 퍽 마음에 들었다.
얼마 전은 그의 생일이었다. 혼자 살고 있어 미역국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할 것 같아 내심 마음에 걸리던 차에 케이크는 꼭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기는 생일에 별 의미를 두지 않으니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어렸을 때부터 철저히 훈련된 나는 그런 모습에 넘어가지 않고 끈질기게 케이크를 하겠다고 졸랐고 그렇다면 oo바(평소에 자주 가는 칵테일바)에 가서 하는 게 어떻겠냐고 그가 물었다. 그 날 저녁 우리는 그의 생일을 축하하며 케이크의 초를 불었다. (생일은 중요하지 않다더니 그는 케이크에 올려져 있던 하나밖에 없는 딸기를 내게는 묻지도 않고 본인이 먹었다. 역시나 케이크를 산 건 잘한 일인 것 같다. 휴)
2달 전 내 생일을 떠올려 보니 그날은 한 달간 지속되었던 엄마와 나의 냉전이 끝난 날이기도 하다. 생일날 미역국과 함께 생일상을 차려주어야 하는 우리 집만의 룰은 그날도 적용되었고 맛있는 아침을 먹은 그날 저녁에 나는 엄마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5월은 가정의 달을 맞아 기념할 날이 참으로 많다. 5월 8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나는 이미 우리 부모님과 할머니께 드릴 카네이션을 예약해 놓았고, 선물을 생각해 두었다. 매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이면 교사였던 엄마를 위해 아빠는 매년 꽃을 사 왔지만 엄마가 퇴직한 올해는 어떻게 하실는지 갑작스레 궁금해진다.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 피곤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별거 아닌 것도 챙기게 되면, 챙김 받게 되면 기분이 좋아진다.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사서 건네는 것, 빼빼로 데이에 빼빼로를 건네는 것,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는 것, 모두 사소하지만 서로를 웃음 짓게 만드는 일이다.
다가오는 어버이날, 용돈을 드리는 것도 좋지만 그 날의 의미를 생각하며 카네이션 한송이 드리는 것을 어떨까! (물론 용돈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