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에 갇힌 리더의 의사결정
※ 이 글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 알려준 리더의 함정' 4부작 중 3편입니다.
"우리 CEO는 새로운 시도를 절대 하지 않습니다."
블라인드에서 본 글이다.
"'예전에 그거 했다가 잘릴 뻔 했어'라는 말만 반복합니다. 그게 10년 전 일인데... 시장 상황도 바뀌었고 우리역량도 달라졌는데, CEO는 여전히 그때 그 자리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댓글에도 비슷한 얘기가 줄을 이었다.
"우리 회사는 5년 전 신사업 망한 후로 아무것도 안 해요 ㅠㅠ"
"팀장이 경력직 채용 거부합니다. 이유를 물어보면 2년 전에 한 번 실패해서 경력은 무조건 싫다네요."
"보안사고 한번 났다고 모든 혁신이 막혔어요"
그 댓글들을 보다가, '개와 늑대의 시간' 장면이 떠올랐다.
두식이 엄마가 눈물을 흘리며 고백하던 장면.
"저는... 예전에 반려견 두 마리를 잃었어요."
방송에서 두식이 엄마의 과거가 공개됐다.
첫 번째 반려견, 삼순이.
"어느 날 집에 왔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삼순이가 빵봉지에 머리를 넣은 채로... 그대로..."
질식사였다.
"제가 빵을 식탁에 놔두고 나간 거예요. 제 잘못이죠."
두 번째 반려견, 삼식이.
"삼순이 잃고 너무 힘들었는데, 남편이 삼식이를 데려왔어요. 정말 건강한 애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산책 후에 갑자기 쓰러졌어요."
급성 심장마비. 원인 불명.
"산책만 안 시켰어도... 집에만 있었으면..." 엄마는 자책했다.
그래서 세 번째 반려견, 두식이.
"이번엔 절대 잃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엄마가 한 선택?
"산책을 거의 안 시켰어요. 일주일에 3-4번, 그것도 짧게만."
"삼식이가 산책 후에 죽었으니까... 두식이는 산책 적게 시키면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강형욱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문제예요." 산책 부족이 두식이를 어떻게 변하게 만들었을까.
에너지를 해소하지 못해서 집 안에서 문제 행동 폭발. 밖의 소리에 노출이 안 되니까 세탁기, 식기세척기 소리만 나도 짖어댐. 스트레스가 쌓여서 색연필, 플라스틱, 나무 조각까지 마구 삼킴.
강형욱이 말했다.
"엄마의 트라우마가, 두식이의 삶을 제한하고 있어요."
지금 '우리 조직도 똑같잖아?'라고 생각하시는 분 계신가요?
블라인드를 좀 더 뒤져봤다. 어떤 분이 쓴 긴 글이 눈에 띄었다.
"우리 회사 3년 전 신사업 했다가 완전히 망했어요. CEO가 직접 진두지휘했는데 무려 50억을 날렸어요.
그 후로 CEO가 달라졌어요.
회의 때 누가 새로운 아이디어 내면
'그거 예전에 해봤는데', '신사업은 위험해', '지금 하는 거나 잘하자'
3년 지났는데 여전히 그때 얘기만 해요.
근데 뭐가 달라졌냐면요
- 시장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 기술도 완전 발전했어요
- 우리 인력도 그때랑 다른데
CEO는 3년 전 그날에 혼자 갇혀 있습니다.
경쟁사들은 신사업으로 성장하는데 우리만 제자리인 것 같구요.
젊은 애들 하나둘씩 나가고 있어요.
'여기는 도전이 없다. 도전이 없으면 성장도 없다'라고 하면서."
댓글 중에 이런 게 있었다.
"리더 트라우마가 회사 전체 발목 잡는 거 실화냐"
실화다.
또 다른 글이다.
"3년 전 우리 회사 정보 유출 사고 있었어요. 외주 업체 직원이 고객 정보 빼돌렸거든요.
그 후로 모든 게 막혔어요.
클라우드 쓰자 → '해킹 위험'
외부 협업하자 → '정보 유출 위험'
신기술 도입하자 → '보안 검증 안 됨'
그래서 지금 우리 회사:
- 10년 전 온프레미스 서버 그대로
- 외부 협업 제로
- 신기술 도입 제로
개발자들은 '성장 못해'라면서 다 떠나고 있습니다.
근데 임원은 '그래도 안전하잖아'라고 말합니다.
네, 안전하죠. 안전하게 망해가고 있어요."
어느 팀장의 글이다.
"저 2년 전에 경력직을 뽑았는데, 이력서 화려했어요. 대기업 10년에 경험도 많고, 면접도 완벽했고....
근데 3개월 만에 '제 기대와 회사가 너무 달라요' 하면서 퇴사했습니다.
제가 뽑은 친구였는데 충격 받았습니다. 그 후로 경력직 채용 거부했어요.
'경력직은 믿을 수 없어', '차라리 신입 키우자'
2년 지났습니다.
지금 우리 팀에는 경험이 부족한 신입 5명이 있고, 저 혼자 기획도 해야 하고, 모든 결정을 해야 하구요. 팀원들은 모하냐구요? 팀원들은 실행만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번아웃오게 생겼습니다.
어제 인사팀장이 저에게 말하더군요.
'팀장님. 시니어급 경력직 뽑는 게 어때요?'
저의 대답은 '아뇨. 경력직은 안 뽑아요' 였습니다.
'왜요?'
'...예전에 실패했으니까요'
그런데 인사팀장이 그 얘기를 듣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2년 전 그 사람 한 명 때문에 팀장님이 지금 팀 전체를 희생시키고 있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강형욱이 화이트보드에 뭔가 그렸다.
두식이 엄마의 사고 과정이다.
삼순이 → 빵 → 위험
삼식이 → 산책 → 위험
결론: 두식이는 산책 적게 → 안전
하지만....
산책 부족 → 에너지 못 풀어 → 문제 행동 폭발 → 더 위험해짐
"트라우마가 만든 안전장치가, 오히려 더 큰 위험을 만들었어요."
조직도 마찬가지....
리더의 머리 속을 뇌피셜로 그려보자.
5년 전 신사업 → 실패 → 50억 손해
결론: 신사업 = 위험 = 하지 말자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신사업 안 함 → 경쟁사는 성장 → 우리는 정체 → 인재 유출 → 회사 쇠퇴
안전하려다 더 위험해진 셈.
강형욱이 두식이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가 겪은 일, 정말 힘드셨을 거예요."
"하지만 두식이는 삼순이가 아니에요. 삼식이도 아니고요."
"삼순이는 빵봉지로 질식했어요. 두식이는 안 그래요."
"삼식이는 산책 후 급사했지만, 그건 산책 때문이 아니라 심장 문제였을 수 있어요."
"과거랑 지금을 분리해야 해요."
그러면서 강형욱이 알려준 방법.
첫째, 트라우마를 인정하는 거다.
"저는 사실 삼순이랑 삼식이를 잃은 게 아직도 무서워요. 그래서 두식이한테 조심스러워요."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 부정하지 않고, 감추지 않고. 그게 시작이다.
둘째, 과거랑 지금을 나눠서 보는 거다.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과거 사건은 어떤 상황이었나?
지금은 그때랑 뭐가 다른가?
과거 실패의 진짜 원인은 뭐였나?
그 원인이 지금도 있나?
셋째, 감정이 아니라 사실로 말하는 거다.
감정: "예전에 실패했으니까 안 돼"
사실: "그때는 시장 조사가 부족했고, 자금도 모자랐어. 근데 지금은 6개월간 조사 끝났고, 예산도 3배야. 뭐가 다른지 보자고."
넷째, 안전장치를 만드는 거다.
무작정 시도하는 게 아니라,
작게 시작하고, 주간/월간으로 점검하고, 안 되면 멈추는 기준 정하고, 롤백 플랜도 만들고....
리멤버에서 본 글이다.
"우리 CEO도 과거 신사업 트라우마 있었어요.
근데 작년에 달라졌어요.
신임 임원이 신사업을 제안했거든요.
CEO: "예전에 해봤는데 실패했어요."
임원: "왜 실패했나요?"
CEO: "시장 조사 부족, 자금 부족, 전문 인력 부족 등등"
임원: "지금도 그 세 가지가 부족한가요?"
CEO 멈칫....
그 신임 임원이 데이터로 보여주더라구요.
- 시장 조사 6개월 완료
- 자금 전보다 3배 확보
- 전문 인력 업계 최고 스카우트 완료
그리고 제안:
"스몰 스타트로 해보는 건 어떨까요?
5년 전처럼 50억 아니라 5억으로.
6개월 테스트 후 평가해서 안 되면 즉시 중단하는 걸로...."
CEO가 동의했습니다.
결과:
- 6개월 테스트 성공
- 1년 후 정식 사업부 런칭
- 현재 회사 매출 30%
얼마 전 CEO가 전 사원을 대상으로 스피치를 했는데, 중간에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죄송합니다. 5년 동안 제 스스로 트라우마에 갇혀서 여러분들과 우리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 같습니다."
강형욱이 두식이 엄마한테 했던 말.
"삼순이랑 삼식이 잃은 슬픔,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두식이는 다른 개예요. 두식이한테 필요한 게 뭔지 보세요. 과거가 아니라 지금을 봐야 합니다."
리더도 자신한테 물어야 한다.
내가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뭔가? 합리적 분석인가, 과거의 상처인가?
과거 실패랑 지금 제안, 뭐가 다른가? 5년 전과 지금, 뭐가 달라졌나?
내 결정이 팀한테 어떤 영향을 미치나? 안전한가, 아니면 정체되고 있나?
데이터는 뭐라고 말하나? 감정 빼고 숫자만 봤을 때는?
만약 트라우마가 없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판단했을까?
2주 후.
두식이 엄마가 웃으며 보고했다.
"두식이가 산책을 너무 좋아해요. 집에 오면 훨씬 차분해졌어요."
강형욱이 말했다.
"보세요. 엄마가 두려움을 극복하니까, 두식이도 달라졌죠?"
조직도 마찬가지다.
리더가 트라우마를 인정하고, 객관화하면, 조직도 달라진다.
블라인드의 그 댓글이 다시 생각난다.
"리더 트라우마가 팀 전체 미래 막고 있어요"
반대로 말하면,
리더가 트라우마 극복하면, 팀 전체 미래가 열린다.
당신의 '삼순이와 삼식이'는 누구인가?
"예전에 실패했으니까"라고 말하는 그 실패는 언제인가?
그 상처가, 지금 팀의 미래를 막고 있지는 않은가?
이번 주, 위에 있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고 답해보라.
그리고 팀원 한 명한테 물어봐라.
"내가 과거에 너무 갇혀 있는 것 같아? 솔직하게 말해줘."
그 대화가, 두식이한테 산책 경험을 돌려준 것처럼, 팀한테 미래를 돌려줄 수 있다.
마지막 함정.
서열 혼란이다.
강형욱이 단호하게 말했다.
"개 앞에서 아이들을 혼내지 마세요."
엄마가 개 앞에서 아이들 혼내니까, 두식이는 생각했다.
'엄마가 애들을 아래로 본다 = 나도 애들 위다'
그래서 아이들을 통제하려 했다. 입질도 애들한테 특히 거셌다.
더 심각한 건, 엄마가 뿅망치를 아이들한테 쥐어준 거였다. 훈육 주체를 방기한 거다.
조직도 똑같다.
"임원이 팀원들 앞에서 우리 팀장 깠어요. 그 후로 팀장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없어요."
"회의 중에 인턴이 팀장한테 반말했어요. 팀장은 아무 말도 안 했고요. 이게 수평적 문화예요 아니면... X판인거에요?"
4편에서는 서열이 무너진 조직의 신호들을 다룬다.
리더의 권위가 무너지는 순간.
그리고 그걸 어떻게 재정립할 수 있는지.
시리즈 마지막,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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