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다이어트 중이라 해도 일단 먹기 시작하면 깨작거리지 않는 나. 쿰쿰한 족발 냄새를 맡으며 이미 신난 나. 눈을 희번덕거리며 상추에 깻잎 포개고 족발 올리고 쌈장, 고추, 마늘까지 올려서 야무지게 쌈을 싸먹는다. 야들야들한 껍데기가 붙어있는 살점에 새우젓을 올려 바다와 땅의 환상의 조화를 맛본다.
팬케이크는 만드는 재미가 있다. 한 장 한 장 팬케이크를 구울 때면 소꿉놀이하는 기분이 든다.
팬케이크는 만드는 것도 쉽다. 레시피대로만 하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주의해야 할 점은 딱 하나. 기름 범벅이 되지 않도록 팬에 기름을 많이 두르지 않는 것뿐이다.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제법 손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도 팬케이크의 포장지에 있는 이미지처럼 앞뒤로 고른 갈색이 되도록 팬케이크를 굽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구나 1-2분이면 그럭저럭 근사한 모양의 팬케이크를 구울 수 있다.
잘 구워진 팬케이크에 버터 한 조각을 올린 뒤, 메이플 시럽이나 바닐라 시럽 등 취향에 맞는 시럽을 뿌리면 간단한 아침 식사가 된다.
시럽 외에 각자 좋아하는 토핑을 올려도 좋다. 바나나와 팬케이크는 맛의 합이 좋다. 팬케이크를 한 입 크기로 자른 뒤 바나나와 같이 포크로 폭, 찍어서 먹으면 바나나의 자연 그대로의 은근한 달달함과 팬케이크의 은은한 향긋함이 잘 어우러져 시럽을 뿌리지 않아도 입안을 행복하게 한다.
칼로리 걱정을 하지 않는다면 생크림, 초코시럽도 팬케이크와 미각의 환상의 짝꿍이다. 리코타치즈를 곁들여 먹으면 부족한 듯한 단백질과 칼슘 섭취에 대한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아침부터 바나나, 리코타치즈, 생크림, 버터, 바닐라 시럽을 곁들인 팬케이크라니, 칼로리 폭탄이 걱정될 법도 하지만, 아침이라 개의치 않고, 저녁 금식 다이어트 중이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아침, 점심은 골고루 잘 먹는다.
저녁 금식한다.
도보, 산책, 근력 운동 등의 활동을 하며 움직인다.
저녁 금식하고 자는 동안 낮 동안 섭취한 칼로리, 당, 지방이 소모된다.
살 잘 빠지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다이어트를 위해 별다른 거 하는 것 같지 않은데 체중이 줄고 있다.
살이 빠지고 있다.
먹고 싶은 걸 먹고 있기 때문에
다이어트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다.
예민하지 않다.
불안하지 않다.
짜증 나지도 않다.
우울하지 않다.
반드시 성공한다.
잘 될 거라는 믿음과 그렇게 만들 거라는 다짐으로.
◎ 칡꽃도 먹는 거였어?
“어? 이거 칡 같은데!”
마장호수의 산책로를 걷다 호숫가에 핀 자줏빛의 칡꽃을 발견한 케이.
케이에게 반한 이유인 케이의 이런 향긋함은 어디 가지 않고 아직 내 눈앞에 있다.
살다 보면 변하기도 하는데,
사회생활하면 변하기도 하는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나면 잃어버리기도 하는데,
내가 반한 케이는 아직 내 눈앞에 있다.
이십 년 전 그대로.
소년 같은 천진함으로.
내일 걱정은 접어두고 지금 행복한 낭만으로.
우리는 나란히 서서 칡꽃을 구경했다.
“긴가민가하네. 이게 칡꽃이 맞나? 자기도 칡꽃 알지? 이거 칡꽃 맞지?”
내가 알고 있는 걸 상대도 알고 있을 거라는 오해, 내가 모르는 건 상대도 모를 거라는 오해는 흔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칡꽃을 보고 있는데 산책로 저쪽에서 다가오던 중년 부부가 우리 곁에 서더니 물었다.
“뭘 보고 있어요?”
“칡꽃을 보고 있어요.”
케이의 말에 부부의 시선이 칡꽃으로 향했다. 우리는 다 같이 칡꽃을 바라보았다.
“이거 칡꽃 맞지요?”
케이가 물었다.
“맞아요.”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가 말했다. 아내로 보이는 여자는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곁에 서있다.
“칡이 있으면 근처 나무는 다 죽어요. 칡이 워낙 강해서. 저 봐요.”
남자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지름 50센티미터쯤 되는 나무를 칡넝쿨이 포식자처럼 휘감으며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나무를 포위한 넝쿨 마디마다 검붉어 보이는 자줏빛 칡꽃이 곱게 피어 있는 모습이 아름답기도 섬뜩하기도 한 기분이 들었다.
설명을 마친 부부는 몇 걸음 앞서 걷다 별안간 남자가 뒤를 돌아 우리에게 다시 다가왔다.
“칡꽃을 차로 마시면 좋아요.”
남자가 말했다. 어째서인지 남자는 이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남자가 쥐여 준 정보는 유익하면서 참신했다. 나는 그때까지 칡꽃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랜 시간 동안 칡꽃을 식별할 줄 알았던 케이도.
“칡꽃을 먹어요?”
“그래요.”
“자주색 꽃 말씀이시죠?”
“그렇지요. 말려서 차로 마시면 아주 좋아요.”
남자는 칡꽃 차의 존재를 알려주고는 부인과 가던 길을 갔다.
우리는 다시 나란히 걸었다. 오늘 별로 덥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얘기를 하면서. 걷기 좋은 날씨라는 말을 하면서. 여름인데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는 말을 하면서. 매일 얼굴 보고 산지 이십 년이 넘으니 딱히 나눌 말이 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시시콜콜하고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눠도 불편하지 않은 따뜻한 공기를 가르면서.
"저기 좀 봐! 칡꽃이다!"
"칡꽃이 많이 피어있네!"
"칡꽃 먹는 줄 알고 있었어?"
"아니, 나는 몰랐어."
"칡꽃을 먹을 수 있다니 신기하네."
한 번 눈에 익으니 계속 눈에 들어오는 호숫가에 곱게 핀 칡꽃이 이십 년 만에 새로운 화젯거리가 되어 주었다.
더위를 식힐 겸, 다리도 쉬게 해줄 겸 호숫가 카페에 들어가 칡꽃 차를 판매하는지 검색해 봤다.
“정말 그러네. 이런 차도 있었네. 칡뿌리만 먹는 줄 알았더니 칡꽃도 먹는구나.”
꼼꼼하게 칡꽃의 효능과 섭취 방법, 부작용을 확인하면서 생각했다. 아직 모르는 게 많다.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다. 오늘도 거리에서 한 수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