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박찜+리코타치즈+꿀, 삶은 계란, 사과로 구성한 단호박 브렉퍼스트를 먹었더니 건강식을 먹은 기분이다. 특별한 간을 하지 않고 자연 식재료 그대로를 먹는 식단은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시도해 보는 식단이다. 자연 식재료를 먹는 식단은 익히지 않은 생채소를 먹는 샐러드, 채소를 쪄서 먹는 채소 찜 같이 대체로 채식 위주로 구성된다.
단호박 브렉퍼스트에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는 시럽보단 진한 향을 머금고 있는 꿀이 잘 어울린다. 찜기에 부드럽게 찐 미니 단호박과 리코타치즈와 그 위에 올린 꾸덕꾸덕한 꿀 한 숟가락의 맛의 조화는 맛있다는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단호박 브렉퍼스트는 맛도 맛이지만 식구들이 매우 좋아한다. 특히 금비와 효자 아들이 맛있게 먹는다. 요즘 아이들 입맛에 맞는 모양이다. 나야 잡식 끝판왕이라 세계 어느 나라의 음식을 먹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지만 케이는 어떤가, 싶어 단호박 브렉퍼스트를 먹고 있는 케이를 살핀다. 다행히 잘 먹는다. 케이도 어느덧 건강을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매일 건강식을 먹으면 좋을 텐데 현실은 세상엔 맛있는 음식이 너무 많아서 이렇게 좋은 건강식임에도 순번이 한참 걸려야 밥상에 겨우 차례가 돌아온다. 그 사이 밥상에는 온 세계의 음식이 다 올라온다. 아마 이런 것이 젊고 건강할 때 즐길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 아닐까 한다.
티브이나 유튜브에서 아흔 즈음의 장수 노인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발견한 건강한장수 노인들의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입맛을 잃지 않으셨다는 점.
젊은 사람처럼 맛있게 잘 드신다는 점이다.
그 와중에 발견한 것은, 장수 노인 중 샐러드나 자연 건강식으로만 드시는 분은 보지 못했다. 내가 본 장수 노인들은 밥과 나물 반찬, 생선, 육류 같은 것들로 구성된 ‘밥과 반찬’을 주식으로 드셨다. 아마 밥과 반찬으로 구성된 식단이 이분들의 유년기, 성장기, 청년기, 중년기, 장년기 등 생애 전반의 주식이었기 때문에 드시던 대로 드시는 것뿐일 것이다. 심지어 어떤 할머니는 식사 후 꼬박꼬박 달달한 믹스 커피를 타드시는 것이 아침 식사 루틴이었다.(심지어 절대 하지 말라고 권해지는 믹스 커피 봉지로 뜨거운 커피 휘젓기까지 하시고 계셨다!)
“나한테 이거 하지 말라, 저거 하지 말라 하던 의사들 다 죽었어.”라던가 “나한테 담배 끊으라던 의사가 먼저 죽었어.”라는 아흔의 노인들만이 할 수 있는 유머 앞에 수명, 건강, 노안, 동안 이런 것들의 인과관계에 대해 쉽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장수 노인들에게는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나는 이게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장수 노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행복한 아기 얼굴이었다. 욕심을 잊은 듯한 여유로운 얼굴, 순리를 따르는 순한 얼굴, 아기같이 활짝 웃는 ‘웃상 얼굴’이 깊은 가르침을 준다.
너무 맵고, 너무 짜고, 너무 단 음식이 아니라면 먹고 싶은 음식 맛있게 먹기. 골고루 먹기.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먹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자신만의 방법 터득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 인간의 수명은 타고난 것인가, 싶다가도, ‘웃상 얼굴’을 만드는 아기 같은 마음이 건강한 아흔 살이 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어제 마장 호숫가를 걷다 임진각 곤돌라 안내를 본 케이와 나.
“DMZ 들어가는 곤돌라가 있었네! 타보고 싶다!”
나도 모르게 뱉은 진심.
단호박 브렉퍼스트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핸드폰을 보며 한창 바쁜 케이.
“곤돌라 타고 싶다 그랬지?”
“진짜? 오늘 갈 거야?”
점점 뚝뚝 떨어지는 체력을 끌어안고 한여름 삼복더위 중에 주말 이틀 내내 나들이라니, 우리 체력으로 할 수 있나? 싶지만 케이와 나는 DMZ로 들어가는 곤돌라를 탔다.
곤돌라는 일반 곤돌라와 크리스털 곤돌라 두 종류. 일반은 바닥이 불투명, 크리스털은 바닥이 투명. 투명 바닥인 크리스털 곤돌라는 다음에 금비랑 효자 아들이랑 같이 왔을 때 타기로 하고 만 천 원하는 일반 곤돌라를 선택했다.
“나 신분증 안 가져 왔는데 어쩌지?”
민통선 들어가는데 신분증도 안 챙긴 정신머리라고는 없는 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매표했는데 다행히 대표자 한 명의 신분증만 있으면 통과였다. 키오스크로 매표부터 발권까지 끝내면서 편리함에 감탄하며 소중하게 표를 들고 3층 탑승장으로 향하는데 케이가 매점에서 음료수를 하나씩 사자고 한다. 곤돌라 타고 들어갔다 바로 나오는 줄 알았던 나는 금방 나올 건데 음료수를? 의아했지만 고르라니 고른다.
곤돌라 같은 거 되게 무서워하는 나. 은근 긴장된다. 곤돌라가 물 위를 지날 때나 그나마 안심. 만약에 추락해도 물 위로 떨어지는 거니까 살 수 있을 거야. 여기서 저기 육지까지는 개헤엄이든 잠수든 헤엄쳐서 갈 수 있겠지? 오만 가지 비현실적인 상상이 나를 지켜주지만, 땅 위를 나는 동안은 무슨 상상을 하든지 곤돌라를 타는 내내 긴장한다.
그래도 쫄깃한 스릴이 놀이 기구보다 재밌다. 오랜만에 곤돌라 타고선 긴장과 스릴과 풍경과 DMZ로 들어간다는 오묘한 설렘을 만끽하며 케이와 사진도 찍었다. 홍보가 덜 되었는지 이제는 곤돌라쯤은 흔한 건지 곤돌라엔 케이와 나 둘뿐이다. 맞은편에서 돌아오는 곤돌라에 탄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준다.
들어갔다 바로 나오는 줄 알았더니 곤돌라 하차 후 근처를 둘러볼 수 있게 꾸며 두었다. 이래서 탑승할 때 직원이 표 잃어버리지 말라 했구나, 직원의 당부를 떠올린다.
미군이 주둔하던 베이스캠프를 개방한 한 건물에서 6.25전쟁 때 학도병들의 참전과 안타까운 희생에 대한 전시회를 하고 있다. 학도병으로 참전한 학생이 전사 전 어머니께 남긴 편지를 읽었다.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 이우근 편지 中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제 옆에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 엎디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엎디어 이 글을 씁니다. 적군은 지금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저희들 앞에 도사리고 있는 적군의 수는 너무나 많습니다.
저희들은 겨우 칠십 명뿐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까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제 손으로 빨아 입었습니다. 비눗 내 나는 정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한 가지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빨아주시던 백옥 같은 내복과 제가 빨아 입은 그다지 청결하지 못한 내복의 의미를 말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저는 그 내복을 갈아입으면서, 왜 수의를 문득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돌아가겠습니다.
...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니 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웬일인지 문득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
아, 놈들이 다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살아서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이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꼭 살아서 어머니 곁으로 달려가겠다던 이우근 학도병은 편지를 쓴 다음날 포항 여중 전투에서 전사하셨다.
그가 학도병으로 참전했을 때, 전투 중 사망했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16살이었다. 폭음과 비명 속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고, 바라보기에도 너무 아까운 나이였다.
‘전쟁은 왜 해야 할까요?’ 묻던 16세 소년의 물음에 여전히 답을 할 수 없다. 이 순간도 세계에선 전쟁 중이고, 내전 중이다. 누군가 지켜낸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 누군가 지켜준 땅에서 태어나 소년의 사진을 보고 있는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 말고는 소년의 물음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DMZ 관람을 마치고 탑승장 옆에 있는 로컬푸드로 들어갔다. 지방을 가면 로컬 푸드에 들르는 편이다. 지역의 로컬푸드에서 특색 있는 특산품을 발견하면 보물을 찾은 것 마냥 설렌다. 임진각 로컬푸드답게 지역 특산품인 장단콩, 파주쌀을 판매하고 있었다.
세밀하면서 화려한 자개공예 미니 거울을 만지작거리자 “하나 사.” 케이가 말한다. “아니야. 다음에.” 나는 마음에 쏙 든 자개공예 미니 거울을 얌전히 내려놓는다. 내려놓으면서도 화려함에 시선을 떼지 못한다.
혼합 잼의 종류가 다양하다. 나는 오디 사과잼과 아로니아 사과잼을 한 병씩 집어 든다. 곡물 코너에 가서 보리쌀, 현미 등 밥에 섞을 곡물을 보고 있는데 내 옆에서 곡물을 고르시던 노파가 ‘늘보리’를 추천해 주셨다.
“이게 맛있어요.”
자그마한 노파는 ‘늘보리’를 가리켰다.
“이걸 불려서 밥하고 지어 먹으면 구수하고 맛있어요. 보리밥 해먹어도 맛있고.”
노파의 말씨는 다정하다. 나는 구전으로 나에게 늘보리에 대해 알려주는 노파가 온갖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블로거의 오프라인 버전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큼 불려야 할까요?”
내가 묻자 노파는 허공에 시선을 두고는 이초쯤 생각하는가 싶더니 친절하게 대답했다.
“옛날 사람들은 보리를 먼저 끓인 다음 넣기도 하더만, 한 삼십분 불리면 될거예요.”
“찰보리랑은 어때요? 늘보리가 더 좋은가요?” 나는 옆에 있는 찰보리를 가리켰다.
“이게 더 맛있어요. 맛도 좋고 몸에도 좋아요.” 노파가 늘보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만하면 좋은 거지요.”
“엄마 그거 집에 있어. 저번에 샀잖아!”
어느 틈에 노파의 딸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큰 목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하나 사 두려고.”
“있어. 집에 많아.”
딸이 노파를 잡아 끌 듯 데려갔다.
노파가 떠난 뒤 노파의 권유대로 나는 늘보리 2kg짜리 한 팩을 샀다. 2kg에 8,200원에 팔고 있었는데 이 정도면 적당한 가격인가, 하는 생각은 접었다. 갑자기 나타난 낯선 노파의 가르침이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늘보리 섞은 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