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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단구름 Nov 29. 2024

입지도 않으면서 버리지도 못하는 옷

10월 15일~10월 16일 식단&운동&체중 변화

[저금(저녁 금식), 운동]


확실하게 빠지고 오래 유지하는 건장한 긍정 다이어트

10월 셋째 주(1013~1019) 체중 변화:

62.9kg ---> 63.3kg (0.4kg 증가)

다이어트 시작부터 체중 변화(52~1019):

69.5kg----> 63.3kg (6.2kg 감량)     






◩ 10월 15일 화요일      


간다, 단탄지 아침:

김자반+플레이크 주먹밥,

육포 조금,

화이트 아메리카노


간다, 단탄지 점심:

불향 차돌 떡볶이,

버터 갈릭 감자튀김,

청포도 에이드


간다, 단탄지 저녁: 안 먹음      


*온작 통통 육포 칼로리 80kcal/30g(1봉지)      



김자반+플레이크 주먹밥, 화이트 아메리카노


불향 차돌 떡볶이, 버터 갈릭 감자튀김, 청포도 에이드






운동 1. 도보 20분(약 2천 걸음)


운동 2. 모닝 스트레칭(체조)


운동 3. 1만 2천 걸음(약 8km)      

*성큼성큼 보폭(70-80cm), 느긋 보폭(58-60cm)     







아침 공복 체중.. 62.7kg      





◩ 10월 16일 수요일


아침:

고구마,

샤인 머스캣 주스,

화이트 아메리카노


간다, 단탄지 점심: 밥과 반찬(떡갈비 등)

*떡갈비, 더덕구이, 계란프라이, 표고버섯볶음, 무+쑥갓, 김치


간다, 단탄지 저녁: 안 먹음      


*비비고 한입 떡갈비 칼로리 915kcal/282g(1봉지), 325kcal/100g      



고구마, 샤인 머스캣 주스


떡갈비, 더덕구이, 계란프라이, 표고버섯볶음, 무+쑥갓, 김치





운동 1. 도보 20분(약 2천 걸음)


운동 2. 모닝 스트레칭(체조)


운동 3. 8천 걸음(약 6km)    

*성큼성큼 보폭(70-80cm), 느긋 보폭(58-60cm)       







아침 공복 체중.. 63.4kg         



       

◉ 입지도 않으면서 버리지도 못하는 옷      


드레스룸 구석엔 입지도 못하면서 버리지도 못하는 옷들이 있다. 아가씨 때 입던 옷, 출산 전에 입던 옷들 중 입지 못하는 옷은 틈틈이 정리해 버렸는데 어째서인지 버리려고 하면 큰 걸 상실하는 것 같은 두려움이 일어 버리지 못하는 옷들이 있다. 이번엔 정말로 버릴 거야, 하고 옷장을 열었다가도 ‘도저히 못 버리겠어.’ 옷을 끌어안고는 아련해져서는 다시 집어넣는 옷.


서랍장 바닥엔 지금은 입지 못하는 손바닥만 한 카키색 쫄쫄이 티셔츠와 연보라색 볼레로 스타일의 카디건 세트가 누워 있고 행거 구석엔 진한 청색의 스키니 청바지가 걸려있다. 각각의 옷을 버리지 못한 것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무정한 인간이 아니고서는 사연을 들으면 이해가 갈 것이다.)      


1. 카키색 쫄쫄이 티셔츠


카키색 쫄쫄이 티셔츠는 케이를 처음 만났을 때 입었던 옷이다. 케이를 만나는 데는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같은 호텔에서 근무하던 객실팀 언니가 나를 볼 때마다 괜찮은 남자가 있으니 한 번 만나보라고 권하길래 그래? 한 번 만나볼까, 못 이기는 척 만날 날짜를 잡았는데, 이 인간이 갑자기 일이 생겼다며 첫 번째 만남이 취소되어 버린 것. (만나지 말았어야 하는 운명?) 그러거나 말거나, 하려고 했는데 결혼의 신이 접신한 것처럼 이 언니가 또 볼 때마다 자꾸 한 번만 만나보라고, 집안이며(아니던데?), 직업이며(그냥 그렇던데?), 외모며(대충 훈남이긴 함), 성격이며(내 마음에 들긴 함), 정말 괜찮은 남자라고(그럼 언니가 만나시던가), 계속, (아, 언니 나한테 왜 그래?) 꾸준히, 진짜 괜찮은 사람이라서 그런다며, 둘이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그런다며, 한 번만 만나보라는 (언니 그 인간한테 뭐 받았어? 성혼 성사 수수료 같은 거 받기로 했어?) 결혼 신이 접신한 것 같은 언니의 대가 없는 살신성인 설득으로 소개팅 자리에 나가게 된 거였는데, 만나기 전 사실 사진을 본 터라 큰 기대는 없어서, 근데 또 매일 마주쳐야 하는 객실팀 언니를 언제까지고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남자가 반하지 않을 거 같은 쫄쫄이 카키색 티셔츠에 후줄근한 청바지를 입고 대충 나간 자리였던 것이었는데 뭐가 그렇게 바쁜지 이 인간이 늦게 도착, 나 먼저 도착해서 십분쯤이었나? 기다리고 있으니 케이가 들어왔는데 내 눈엔 대충 훈남인 케이의 맑고 다정해 보이는 첫인상이 썩 나쁘지는 않았고,(마음에 들었고) 애프터 신청하면 한 번 더 만나는 봐야겠다, 하고 작정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케이가 말하기를 자기는 나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만날 운명?) 해서 아직까지 버리지 못했다.      


2. 연보라색 카디건 세트


민소매와 카디건이 한 세트인 연보라색 카디건 세트는 원래 이모의 것이었다. 엄마의 바로 위 언니인 이모, 내가 엄마처럼 사랑하고, 나를 자식처럼 사랑해 주었던 이모는 어느 날 거리를 걷다가 옷걸이에 걸려있던 연보라색 카디건 세트가 너무 예뻐 걸음을 멈추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즉시 연보라색 카디건 세트를 사고선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왔다.


우리 엄마를 포함해서 자매들 중 가장 키가 크고 세련된 멋쟁이 이모, 엄마는 종종 젊은 시절의 이모를 자랑스러워했다. “셋째 언니가 키도 크고 늘씬하고 예뻤지. 서울 여자처럼.”


가슴 벅찬 설렘의 연보라색 카디건 세트를 입고 거울 앞에 선 이모는 거울에 비친 낯선 여자를 마주한다. 상상과 달리 연보라색 카디건 세트를 입은 모습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이모는 자신의 인생에서 무언가 큰 게 하나 훅,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리시안셔스 꽃잎처럼 고운 연보라색 카디건 세트가 더는 어울리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다시 깨닫는다. 그렇게 이모의 슬프고도 미운 연보라색 카디건 세트가 나에게 온 것이었다.


엄마는 가끔 시장이건 어디건 나한테 무척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샀다는 꽤 엄마 취향의 옷을 나에게 마구 투척하며 일방적 사랑을 하곤 하는데 엄마 옷이든, 이모 옷이든 주는 대로 잘 주워 입고 다니는 나는 이게 웬 새 옷이야? 연보라색 카디건을 보자마자 반해버렸다. 이십 대 초반이었던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보다 서른여섯 살이 많은 이모, 60대를 앞두고 있는 이모가 이렇게 젊은 옷을 사다니! 그때는 미처 짐작도 못 했던 것이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것을. 거울 속의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때가 온다는 사실을. 때론 거울 속의 나를 보고 있기만 해도 슬퍼지곤 한다는 사실을.


덕분에 4월에서 5월 사이, 연두색 봉오리들이 나뭇가지마다 맺히고 부지런한 벚꽃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봄이 오면 연보라색 카디건을 실컷 입었다. 곁에는 언제나 리시안셔스만큼 화사한 친구들이 까르르 웃고 있었다. 연보라색 카디건 세트를 입고 그녀들과 캠퍼스를 다니며 뭐가 좋은지 종일 웃음 짓던 20대의 나, 그녀들,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연보라색 부케 같아서 연보라색 카디건 세트를 버리지 못했다.      


3. 스키니 청바지


킬힐을 신고 입었던 진한 스키니 청바지는 내 젊음과 같아서 버리지 못했다. 마른 것과 별개로 체형이 받쳐줘야 맵시 나게 입을 수 있는 손바닥만 한 티셔츠와 스키니 바지. 타고난 하비 체형이 49킬로그램까지 체중을 감소하자 마침내 스키니 바지를 입을 수 있었다. 비비안 리가 더, 더, 더, 하면서 토르소를 조인 것처럼 스키니 바지를 입을 땐 더 길어 보이고, 더 늘씬해 보이도록 아슬아슬한 높이의 킬힐을 신곤 했다. 가끔 연보라색 카디건 세트에 스키니 바지를 입고 킬힐을 신고 케이를 만나기도 했다. 그때는 킬힐을 신고도 출발하려는 버스를 놓치지 않겠다고 잘만 뛰어다녔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킬힐을 신지 않은지도 한참 되었다. 운동화, 단화만 신고 다니다 보니 다시 하비 체형이 되었다.      


◎ 내가 잊지 않았으니까     


금비와 효자 아들로선 엄마도 스키니 바지를 입고 킬힐을 신고 뛰어다니던 팔딱이는 젊음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눈치다. 나는 뭐 날 때부터 이런 모습인 줄 아는지 엄마의 젊음도 꽤 아름답고 환했다는 걸 믿지 못하는 눈치. 나라도 내 젊음을 기억하고 싶어서 버리지 못했다. 나라도 기억해야지. 나도 한때 환하고 밝은 젊음이 있었다는걸. 나에게도 한때 활짝 핀 리시안셔스처럼  아름다운 연보랏빛 시절이 있었다는걸. 케이든, 금비든, 효자 아들이든, 누구든, 타인에게 바라지 말고 내가 기억해야지. 나에게도 호시절이 있었다는걸.   


◎ 엄마들에겐 버리지 못하는 옷이 있다.      


엄마들은 이런저런 사연으로 버리지 못하는 옷들이 있다. 살 빠지면 입어야지, 하고 걸어두는 옷. 살 빠지면 다시 예쁘게 입어야지, 하고 서랍에 고이 모셔두는 옷. 살이 빠지지 않아도, 다시는 아가씨 시절의 몸매로 돌아가지 않아도, 다시는 그 옷을 입지 못해도 버리지 못하는 옷이 있다. 그것은 언제나 값비싼 옷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론 길을 가다 거리에서 산 만 원짜리 티셔츠이기도 하다. 때론 고백을 받을 때 입었던 옷이기도 하다. 첫아기 돌잔치 때 입었던 드레스이기도 하다. 남편에게 받은 깜짝 선물이기도 하다. 어느 날 문득 온몸 가득 행복을 전해준 옷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젊음을 이어받은 옷이기도 하다. 아가씨 때 입었던 옷을 이유 없이 한 벌쯤 갖고 있기도 하다.


나는 카키색 쫄쫄이 티셔츠를 볼 때면 케이와 사랑에 빠졌을 때의 설렘에 다시 빠진다. 우리가 꽤 사랑했던 사이였다는 사실이 옷에 남아있다. 연분홍색 카디건 세트를 볼 때면 노년을 앞둔 어느 날 문득 젊은 날이 방문해 설레었을 이모의 청춘을 상상한다. 진한 청색 스키니 청바지를 입기 위해 노력했던 20대의 나를 본다. 그 노력에 담긴 꿈과 희망을 만지작거린다.      


◎ 과거의 나를 간직한다.


언젠가 가난한 집에는 과거의 물건이 있고, 부자의 집엔 미래의 물건이 있다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과거의 옷을 버리지 못하는 것을 미련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과거의 옷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청승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버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과거의 나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10년 전의 내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안다. 오늘의 내가 10년 뒤의 내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과거에 내가 입었던 옷들, 그 기억에 조금 더 취하고 싶다. 예전에 입었던 옷의 냄새를 좀 더 맡고 싶다. 그 옷에는 풋풋한 살 냄새가 있다. 달콤한 땀 냄새가 있다. 코끝으로 들어와 가슴까지 전해지는 향수를 조금 더 간직하고 싶다.      


언젠가는, 입어야지, 하고 모셔두는 옷이 있다.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지는 옷이 있다. 드레스룸 한편에서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살아주고 있는 고마운 옷이 있다. 우리에겐 옷을 입고 시절을 누리던 젊음이 있었다. 우리 모두에게도 싱그러움이 있었고, 아름다움이 있었고 꿈이 있었고 설레는 미래가 있었다. 그리고 아직 늦지 않았다. 옷이 나를 기다린다. 우리에겐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하면서 간직하는 과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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