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울고 말았네_육개장

by 비단구름

나는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이미 오전에 커피를 마셔 더 이상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았던 나는 우유를 따뜻하게 데우고 꿀을 한 스푼 넣은 뒤 진하게 우려낸 얼그레이를 섞어 밀크티를 만들었다.


한여름 오후 뜨거운 밀크티를 만드는 동안 라디오에서는 목소리 좋은 진행자의 멘트와 신청곡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뜨거운 밀크티를 가지고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연필을 꺼냈다. 연필 하나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도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연필 하나만으로도 눈에 보이는 것들을 그려볼 수 있어 나는 연필그림이 좋았다.


오늘은 무얼 그릴까, 생각하며 밀크티를 마시는 동안 진행자가 한 사연을 소개했다. 나는 사연에 귀를 기울였다.


사연의 내용은 이러했다.


청취자의 아들이 친구를 집으로 데려왔다. 저녁으로 육개장을 끓여 아들 친구에게 먹고 가라 했다고 시작하는 청취자의 사연은 육개장을 따라 좀 더 과거로 거슬러 학창 시절로 갔다.


학창 시절 청취자는 한 친구네 집에 놀러 가곤 했는데 친구네서 놀다 보면 저녁이 되었고 친구 어머니는 저녁을 먹고 가라며 종종 청취자의 저녁까지 챙겨주셨다고 했다.

청취자의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시고 계셨고 친구 어머니는 이런 사정을 알고 계시기에 그러하셨으리라고 청취자는 짐작했다.


어느 날은 친구의 아버지와도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다고 했다. 친구 아버지께서는 몸이 안 좋아지셔서 집에서 쉬신다고 했다. 그날 친구 어머니는 저녁으로 육개장을 끓여 주셨는데 친구 아버지는 본인 그릇에 담긴 고기를 친구와 청취자에게 덜어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이좋게 지내거라.”


그리고 얼마 후 친구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내용의 사연이었다. 육개장을 보면 친구와 친구 부모님, 그 저녁의 풍경이 함께 떠오른다는 청취자의 사연이 끝나자 노래가 흘러나왔다.


노래가 흐르는 동안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고요한 혼자만의 시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집안을 가득 채우는 동안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자식을 걱정하는 아픈 아버지가 소고기를 덜어주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그 당시의 청취자와 친구 나이의 자녀를 키우고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아니면 갱년기에 들어서는 호르몬의 반란 인지도.

나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누가 듣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도했다.


"만약 신이 있다면, 마지막까지 자식 걱정뿐이었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고, 그 아버지의 자녀를 웃게 하여 주세요."

소소한 바람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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