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도 꽃이 핀다_한 겨울의 냉면
그녀는 어디에
평생 흘려야 할 눈물에 총량이라는 것이 있었으면, 한다. 언젠가 신은 감당할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 는 말을 듣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감당할 만큼의 시련이라니! 그러니까 잘 견디는 애는 더 때리고 때리는 시늉만 해도 엄살을 떠는 애는 봐준다는 거야? 신이 그렇게 잔혹하단 말이야?”
사는 모양새는 달라도 눈물주머니의 눈물은 정해져 있다고 들어본 듯도 하다. 그 말은 사실이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는 눈물 흘릴 일이 없을 테니까. 끝을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시련은 오싹하다.
몇 해 전 겨울 이모가 집 앞에서 넘어져 허리가 아스러졌다. 뼈가 약해 수술은 무리라고 했다. 이모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걸어서 외출하는 일도, 차를 타고 어디를 가는 것도, 오래 앉아 있는 것도, 일어서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이전에 평범하게 누렸던 별일 아니었던 일 중 이제 일흔아홉의 이모가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모 집 현관을 열자 이모가 현관 바닥에 앉은 채 나를 반겨주었다. 내가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이렇게 앉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허리가 부러져 남은 생은 누워만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사고 직후에 비하면 몇 발자국이라도 뗄 수 있는 오늘이 그저 감사했다. 잠시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하면서 이모는 뭐라도 주고 싶어 냉장고에서 박카스를 꺼내 건네고 귤을 꺼내 주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일어선 이모의 허리는 상체를 지탱하는 힘을 버티지 못하고 스르르 바닥으로 무너져 앉았다.
하루 종일 혼자 있는 이모를 설득하여 바람을 쐬러 나갔다. 이모와 한반도섬 벤치에 나란히 앉아 파로호가 내뿜는 물줄기를 보며 이대로 사라져도 좋겠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힘들어서 싫다던 이모는 분수가 물줄기를 뿜을 때마다 이렇게 근사한 분수는 처음 본다며 태어나 처음 분수를 보는 사람처럼 감탄사를 쏟았다.
이모는 늘씬하고 서글서글한 미인이었다. 네 명의 자매 중 가장 멋쟁이 딸이었던 이모는 돈 벌러 간 서울에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아이를 가졌다. 인사하러 간 시댁에서 남자가 말하지 않은 남자의 일곱 살 아들을 보았지만 뱃속 아이의 미래를 위해 남자와 식도 올리지 않은 채 살림을 시작했다.
딸이 두 돌이 막 지났을 즈음, 동네 여자의 제보로 남자가 다른 살림을 차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남자는 대범하게도 같은 동네에 살림을 차렸다. 이모는 한창 귀여운 딸과 마침 서울 언니네로 놀러 와 있던 막내 여동생을 데리고 남자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버스에서 내린 남자를 미행해 남자가 살림을 차렸다는 집 앞 골목에 몸을 숨겼다. 사실 확인만 하고 조용히 돌아올 참이었는데 이제 막 걸음마와 말이 트기 시작한 딸이 말릴 새도 없이‘아빠’를 부르며 남자에게 달려갔다. 같은 동네에 살림을 차릴 만큼 후안무치한 남자가 이모와 딸의 등장에 당황하며 딸을 안아 세웠다.
앞장서라는 이모의 말에 남자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놈의 집구석 세간살이란 세간살이는 죄다 때려 부술 기세로 남자를 따라 당당하게 마당으로 들어선 이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문 밖으로 나왔다.
“그 여자는 나보다도 키가 크더라.”
이모는 이 말밖에 하지 않았다.
이모는 그 길로 딸을 데리고 바다와 산이 있는 친정으로 돌아왔다. 인정 많고 사람 좋은 셋째 딸이 이대로 혼자 늙는 것을 볼 수 없었던 외할머니와 외삼촌과 큰 이모가 네 살 된 딸을 서울에 있는 남자 집에 데려다주었다. 그것이 이모와 딸의 마지막이었다.
가족의 바람과 달리 이모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저렇게 혼자 지낼 줄 알았으면 남자에게 딸을 보내지 말걸, 이라며 외할머니와 큰 이모가 뒤늦은 후회를 했다. 이모는 원래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외할머니와 큰 이모는 너무 늦게 깨달아 버렸다.
현장을 급습한 그 자리에 함께했던 엄마가 ‘내가 그때 어리지만 않았어도 그 인간한테 욕을 해주었을 건데.’라고 말하며 남자와 닮은 탤런트가 티브이에 나올 때마다 분통을 터뜨렸다.
딸을 다시 데려오려고 연락을 취했을 땐 남자와 딸이 사라진 뒤였다.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데, 찾을라고 맘만 먹으면 못 찾을 사람이 없어. 요즘은.”
나는 동사무소에 가서 딸을 찾아볼 심산이었다. 그러나 이모가 자식을 낳고 살았던 남자의 이름과 주민번호가 사실이 아니었는지 아니면 이모와 헤어진 후 무슨 일이 생겨 주민번호가 말소되었는지 두 사람의 존재는 영영 사라져 버렸다.
“너무 답답해서 점쟁이를 찾은 적이 있는데, 죽었다더라.”
우리는 이제 남자의 이름은커녕 그가 김 씨였는지 강 씨였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했다. 남자의 아들 이름이 승현이었는지, 승환이었는지도 긴가민가해져 버렸다. 딸아이의 이름, ‘미라’만은 잊질 못했으나 이모는 딸을 찾는 일을 그만두었다.
“살았어도 너무 어렸어서 새엄마를 엄마라고 알고 있을 텐데.”
소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는 산과 깊고 푸른 동해 바다가 넘실거리는 아름다운 고향을 떠나 엄마가 신접살림을 차린 산골 마을로 함께 온 이모는 십칠 개 월 차이로 동생을 본 나를 자식처럼 품에 안았고 말이 막 트이던 나는 이모에게도 "엄마, 엄마" 했다.
박카스와 위장약을 달고 살았던 이모는 내가 갈 때마다 박카스를 꺼내 주어 나는 이모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를 박카스라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 박카스를 좋아해?"
"속병이 나서 그래."
속병이 사실은 술병이었다는 점, 술병이 사실은 속병이었다는 점, 담백하게 받아치던 낮이 지나고 칠흑같이 어둡고 긴 밤이 오면, 소주 없인 잠에 들 수 없었던 깡마른 빈속이 어땠을지 마흔, 엄마가 된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짐작한다.
이제야 일흔아홉 이모의 허리가 예전으로 돌아가기만을 간절히 소망하다니. 이제야 밤이 낮인지 낮이 밤인지 모를 칠흑 같이 어두운 무간지옥에 홀로 덩그러니 버려진 것 같았을 이모의 나날들을 이해하다니. 이런 바람을 하기 전, 진즉에 이모의 삶을 위해 기도했어야 했다. 이모가 홀로 일흔아홉이 되도록 오랜 세월을 그렇게 두면 안 되는 것이었다.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는 이모와 짧은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문득 이모가 냉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집 앞에 냉면 맛집이 있다고 하여 이모가 이끄는 냉면 집에 들어가 앉았다. 같은 아파트 사는 아낙과 가끔 주전부리를 나눠먹어 심심하지 않다고 했다. 걸음 보조기를 천천히 밀고 집 앞 마트에 가 찬거리를 사 오니 운동이 된다며 마트가 집 앞에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모의 폭풍 같은 날들은 지났고 이날이 이날 같고 저 날이 저 날 같은 날들을 이모는 어린아이처럼 매일 새롭게 즐거워하고 있었다. 귀때기를 때리는 칼바람이 부는 겨울 뜨거운 속을 냉면 한 그릇으로 달래는 이모를 따라 나도 냉면 한 그릇을 다 비웠다. 햇살 비치는 바깥 풍경이 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