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데 왜 눈물이 나지?
긴 여름 해가 베란다 창을 통과해 거실 바닥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작은 아이는 베란다 쪽으로 놓은 오래된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고, 큰 아이는 공부방에서 인강을 보고 있었는데 별안간 케이가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했다.
“거기 갈까? 문산 부대찌개.”
아이들은 뒷자리에 타고 나는 조수석에 타고 우리는 이십 년 단골, 케이에겐 삼십 년 단골인 문산의 부대찌개 식당으로 향했다.
부대찌개를 주문하니 직원이 동치미 국물과 김치를 갖다 주었다. 동치미 국물은 새콤달콤한 세련된 국물이 아니고 소금기와 무 향만 있는 투박한 맛이다.
어릴 때 시골집 할머니가 소금에 묵혀둔 커다란 무를 꺼내 모양 같은 건 신경 안 쓰고 툭툭 썰어낸 뒤 물을 붓고 파 송송 띄워 주시던 그 맛. 내 나이쯤 사람들이 한 번쯤은 맛보았을 그 맛. 결코 맛이 없는 동치미라고 할 수 없는 옛 맛. 이 동치미 한 숟가락을 떠먹으면 옛날 어느 시절 어디쯤에 닿아 있곤 한다.
처음 케이가 이 식당에 데려간 것은 약 이십 년 전이었다. 케이는 자기가 먹어본 부대찌개 집 중에서 가장 맛있는 집이라고 소개했다. 다른 부대찌개와 달리 이곳은 옛날 스타일로 끓이는데 특히 햄의 종류가 다양하고 고기 다진 것을 다양하게 넣는다고 했다.
깔끔하게 매운맛으로 잘 알려진 일반적인 부대찌개 맛에 익숙했던 나는 케이의 말을 듣고 엄청 기대했었는데 막상 나온 부대찌개를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케이 말대로 이곳의 부대찌개는 여느 부대찌개와는 다르긴 달랐다. 국물 색이 다홍색이라기보다는 뭔가 좀 어두운 것도 같고, 국물 맛도 다르고, 안에 들어가 있는 내용물도 보통의 부대찌개와는 달랐는데, 한 번 맛을 보자 숟가락이 계속 갔다.
식당은 아주아주 오래된 작은 노포의 모습이다. 가게 입구로 들어가면 일층에는 테이블 몇 개가 있는데, 전반적으로 어수선하다고 생각했다. 홀 안쪽에는 자세히 보면 보이는 지하계단이 있는데 그 지하계단을 내려가면 좌식으로 먹을 수 있는 방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한동안 노포의 지하방으로 내려가 부대찌개를 먹었다. 지하방에는 대게 우리밖에 없거나 또는 어린 유아들이 있는 가족이 와서 방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편하게 앉아 밥을 먹는 경우가 많아 아기를 옆에 눕혀 놓아도 서로 그러려니 하던 때였다.
아이가 돌이 지나 밥을 먹기 시작하자. 주문한 부대찌개를 가져다주시면서 직원이 까만 김을 주시곤 했다.
"아이가 먹을 것이 없네." 하시면서. 그분이 사장님인지, 직원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곳에서 일하시는 분들 중 누구라도 슬쩍 김을 가져다주셨을 거라고 생각되는 그런 곳이었다.
이 집 부대찌개에는 쑥갓이 듬뿍 들어있는 것도 특징인데 부대찌개를 끓이면 끓일수록 쑥갓의 향이 국물에 스며들고 국물이 진해져 부대찌개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맛있는 부대찌개가 된다. 한 번 맛을 보면 계속 찾게 되는 곳. 멋은 없지만 맛은 있는 곳. 이 집 부대찌개의 참 맛을 알아버린 뒤로 부대찌개는 꼭 이 집에서 먹는데 그동안은 주로 포장해서 집에서 먹다가 실로 오랜만에 가게를 방문한 것이었다.
"어쩐 일로 포장을 안 하고 여기 와서 먹자고 했어?"
"오늘은 그냥 와서 먹고 싶더라고. 여기는 부대찌개도 맛있지만 밥맛이 좋거든. 다른 식당하고 다르게 쌀을 좋은 거 쓰는지 특히 밥이 맛있어. 이 밥은 여기 와서 먹어야 먹을 수 있잖아."
케이가 공깃밥을 금세 다 비웠다.
"자기가 먹고 싶었던 그 밥맛, 여전해?"
삼십 년 동안 이 식당을 애정한 케이가 이 집 맛을 여전하다고 느끼는지 문득 궁금했다. 케이가 "여기도 많이 변했네. 옛날 그 맛이 아니야."라고 하면 어쩐지 서글플 것도 같았다.
"응. 같아. 맛있어. 지금은 여름이라 좀 덜하지만 가을에 햅쌀 나오면 지금보다 더 밥맛이 좋을 거야."
케이가 공깃밥 하나를 추가해서 반을 자기 그릇에 덜고 나머지 반을 나에게 내밀었다.
"더 먹어."
"여기 언제 처음 와 봤어? “
언젠가 케이에게 물은 적이 있다.
"아버지랑 와 봤어. 중학교 졸업할 즈음."
"가족들이랑 외식하던 곳이구나."
"아니야, 나한테만 사주셨어. 우리는 외식 같은 건 안 했지. 아버지가 아프시기도 했고, 그때는 먹고 사느라 외식할 형편도 아니었고. 그날은 고등학교 원서 쓰던 날이었는데 아버지가 태워 주셔서 원서 쓰고 여기서 부대찌개를 사 주셨어."
케이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어지간히도 얘기 안 하고, 미래에 대해서도 말이 없는 편이지만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면 제법 말을 많이 한다.
"아버지랑 둘이?"
"응, 아버지랑 둘이. 그때 아버지가 부대찌개를 사주셔서 처음으로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더라고. 아버지랑 먹은 것은 그때 딱 한 번뿐이야."
케이가 중학교 일 학년 즈음 아버지 몸이 안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전사 출신에 형제들 중 가장 체격이 좋고 건강하셨던 아버지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고 했을 때 훌훌 털어버릴 거라고, 별거 아닐 거라고, 모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고등학교 원서 쓰던 날 아들에게 부대찌개를 사주셨던 아버지는 그 후 삼 년 정도 더 사시고 먼 곳으로 떠나셨다.
"얘들아, 맛있지?"
곁에서 잘 먹고 있는 아이들에게 케이가 연신 "맛있지?" 하며 물어본다. 누가 봐도 맛있게 잘 먹고 있고만. 햄 좋아하지 않는 큰애도 앞 그릇에 국물과 쑥갓과 햄을 한 국자 퍼 놓고 아주 잘 먹고 있고만, 케이는 계속 아이들이 먹는 모습을 확인하며 "맛있지."라고 묻는다.
"아들, 먹고 더 먹어."
"그럴 건데."
먹느라 정신없는 아들의 무심한 대답에 케이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더니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열여섯 살 사내아이처럼 케이도 밥과 부대찌개를 듬뿍 떠먹었다. 아이처럼 밥을 먹는 케이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가 지켜줄게. 함께 있어줄게.’라고 다짐했다.
우리가 밥을 먹는 바로 옆 테이블에는 중년 남자가 혼자 앉아 부대찌개를 먹고 있었다. 소주 한 병이 부대찌개 냄비 옆에 올려 있었다. 혼자 소주잔에 소주를 따라 짭조름한 부대찌개에 반주 삼아 홀짝홀짝 맛있게 드신다. 아저씨가 우리를 마주 보고 앉아 계신 터라 본의 아니게 밥을 먹다 한 번씩 소주잔을 입에 넣는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어찌나 맛있게 홀짝홀짝 소주를 드시던지 그 모습을 본 케이도 술 생각이 나는 모양이었다.
“얘들아, 얼른 커서 운전 배워라. 엄마, 아빠 한 잔 하게.”
기분도 몹시 좋은 모양이었다.
혼자 식사하는 아저씨는 심심하지는 않아 보였다. 우리 뒤편에 서있는 직원과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고 계셨다. 뉘 집 이야기인가는 모르겠으나 오늘 주제는 ‘효’ 내지는 ‘자식의 도리’인가 보았다.
"자식 된 도리라면 부모가 고생하고 키워준 것을 잊지 말고 나중에 부모에게 효도해야지."
"부모한테 잘하면 좋지요. 근데 그게 맘대로 되나."
"그렇긴 하지. 자식처럼 맘대로 안 되는 것도 없지."
"부모 맘대로 되는 자식이 어딨 다고요."
직원이 아저씨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부대찌개를 한 입 떠먹고 소주 한 잔을 마신 아저씨가 말했다.
"그래도 자식이 부모한테 잘해야지. 부모가 저 키울 때 얼마나 고생했어."
"자식 농사가 젤로 어려운 법이에요."
"그래도 부모한테는 잘해야 돼."
"그러는 댁은 왜 여태 결혼 안 했소?"
직원 아주머니의 기습 질문에 아저씨가 소주잔을 입에 털고 너털너털 실실 웃었다.
"그러게 말이요."
그러더니 그들의 대화는 별안간 ‘대상포진’과 ‘오십견’과 중년의 건강으로 넘어갔다.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다 하마터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 뻔했다.
삼십 년의 세월 동안 이 집 부대찌개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긴 한데 부대찌개에 들어가는 햄과 소시지와 다진 고기의 종류가 예전에 비하면 조금 바뀌었지만 티가 날 정도는 아니고 단골손님이 빠져나갈 정도는 아니다. 그 없어진 재료는 아마 요즘 세상에서는 구하기가 어려워졌을 거라고 나와 케이는 짐작한다.
우리가 함께 처음 간 이십 년 전부터 여태껏 인테리어라고 할만한 것을 하지 않아 가게는 여전히 낡은 테이블과 의자와 약간의 어수선함을 간직한 노포다.
이십 년 전에도 노포였는데 더 노포가 되었지만 이십 년 동안 이 집을 지키는 사장님은 그대로이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투박한 동치미 국물과 하얀 쌀밥 맛이 그대로다. 이 집의 메인인 부대찌개의 국물 맛도 그대로이고 그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의 분위기와 말투와 멋도 그대로다. 세련된 것이 넘쳐나는 요즘에도 이런 곳이 있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