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이 힘든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해서 그래. 편한 것만 찾아서 그래. 양보하고 희생하기 싫어서 결혼도 하지 않고 출산도 하지 않고 육아도 하지 않는 거야.’
태어날 때부터 지독하게 공부하고 경쟁하며 살아온 청년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본인의 불행이 아니라 본인으로 인해 상대방, 사랑하는 배우자, 사랑하는 자녀가 힘들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렇게 악하지 않다. 보이는 것보다 착하고 여린 심성을 가진 것이 인간이다. 너무 착해서 기성세대가 엉망진창 날림으로 쌓아놓은 기득권에 억세고 싹수없게 저항도 못하고 체념하는 편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숫한 좌절감과 무기력감을 겪어 내는 동안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한 만신창이가 되면서. 선하고 마음 약한 사람들 덕에 소수의 야망가와 탐욕가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고 덕을 본다. 악한 인간이 많다면 사회는 당장 내일이라도 대혼돈의 나락으로 빠져들 것이다.
(내 주관적인 견해로는) 사회에 가장 해로운 부류는 ‘무능하면서 욕심 많은’ 부류다. 무능하고 욕심 많은 사람들은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아는 체를 하고, 잘난 체를 한다. 욕심을 감추기 위해 적절한 명분을 내세운다. 무능함을 감추기 위해 거짓을 서슴지 않으며 욕망을 위해 모략질도 망설이지 않는다. 간교함으로 차지한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갖은 수를 다 쓴다.
훌륭한 리더는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한다. 인재가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해 조직을 성장시킨다. ‘무능하고 욕심 많은’ 부류들은 조직에 있어야 할 사람들, 일해야 하는 사람들, 해보려고 하는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에게 무기력감과 좌절감을 주고, 우울감을 주어 내보내고 주위를 본인과 비슷한 무리들로 채운다. 내보내는 방법도 다양하다. 성과 가로채기, 뒤집어 씌우기, 험담하기, 따돌리기, 깎아내리기, 무시하기, 구박하기.
이들만큼 해로운 부류는 ‘무능하고 욕심 많은’ 부류를 떠받들고 뒤받쳐 주어 자리보존하게 해주는 부류다. 공천받은 각 당 후보들의 자질 부족, 수십 년 동안 신도들을 성착취 했던 교주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이인자들, 모르는 척하는 방관자들, 알면서도 침묵하는 자들. 이들 행동의 근원은 두려움으로 보이지만 실은 사욕에서 비롯된다.
빛 좋은 개살구지만 그럴듯하게, 빈 수레지만 있어 보이게, 속 빈 강정이지만 포장만 한 그들의 무능함은 사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금방 들통난다. ‘무능하고 욕심 많은’ 부류는 자기희생적인 말을 하곤 한다.
‘그만두고 싶어도 나 아니면 안 돼. 나 아니면 누가 이걸 하겠어.’
헌신적이고 정의로운 의인처럼 포장하지만 공동의 이익을 위한 선택과 행동은 하지 않는다. 책임과 의무를 매우 중요하게 강요하지만 정작 궤변에 가까운 명분을 들이밀며 어렵고 힘든 일을 피해 간다. 무능함을 금방 들켜버리니 갈 곳이 없는 그들은 지박령처럼 끈질기게 붙어있다. 그래서 그들은 공들여 구축해 놓은 익숙한 곳에 머무르고 싶어 한다. 조직과 사회에 해로울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지만 차곡차곡 그럴듯한 껍데기를 뒤집어쓴 그들을 내보내기란 쉽지 않다.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수십조를 들이붓고도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되어 세계 최저 수치를 기록 중인 저출산 대책, 2055년 고갈이 예정되어 있는 국민연금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현상, 건강보험 적자, 매년 반복되는 사회 고위직들의 부도덕성, 삼십 년 전부터 있었으나 해결되지 못하는 왕따 문제,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학교 폭력, 삼십 년 전에도 문제였던 살인적인 스케줄을 감당해야 하는 입시 경쟁, 보편적인 근로소득으로는 꿈도 못 꿀 지경이 된 주거문제, 수도권 과밀화, 지방 공동화, 청년들을 고립시키는 사회문화적 갈등, 삼십 년 전에 문제 인식을 했으나 더욱 악화된 지구온난화. 삼십 년 동안 대책 회의만 주야장천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여전히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도 놀랍다.
과학 기술을 제외하곤 모든 것의 모든 면의 악화가 악화되었다.
아무것에도 홀리지 마세요.
어떤 집에 살든,
어떤 차를 타든,
어떤 학교를 나왔든,
어떤 상을 받았든,
어떤 집안이든,
어떤 친구가 있다든,
어떤 말을 하든,
어떤 일을 했다든,
어떤 일을 할 것이라고 하든,
아무것에도 홀리지 마세요.
껍데기쯤이야 가져다 쓰는 것 어려운 일도 아니니.
돈만 들이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으니.
그다음엔 사람들이 알아서 더 좋은 껍데기를 구해다 준답니다.
악랄하게 살아야 잘 사는 사회는 청년들에게 좌절감과 무기력감을 준다. 사회에 이로운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치워도 치워도 거리에는 일정량의 쓰레기가 발생하는 것 같다. 우리 동네에서 내가 줍는 쓰레기양은 백여 개다. 매일 꾸준히 발생하는 쓰레기를 보면 이게 왜 이러는지,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기, 가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던가. 어김없이 버려져 있는 쓰레기들을 보면 비관적인 마음이 든다. ‘버리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 따로, 역시 그른 것인가.’ 플로깅 활동을 끝낸 뒤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다, 비관적이다, 낙관적이지 않다,라고 결론 내릴까 봐 두렵다. 도시 곳곳에서 나보다 몇 배는 열정적으로 수백 개의 쓰레기를 주워 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한 번에 몇 백 개씩을 줍는 봉사자들의 절망과 우려는 더 클 것이다.
놀이터에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다. 화장실 옆 정자에 열한 명, 맞은편 벤치에 여섯 명의 노인들이 아침 모임을 한다. 이들은 거의 매일 아침 놀이터에 모인다. 빨간 조끼를 입고 야구 모자를 쓴 노인이 악어 집게로 놀이터의 쓰레기를 주워 손에 들고 있는 비닐봉지에 담고 있다. 벤치에 앉은 노인들의 일행으로 보이는 노인 한 명도 악어 집게를 들고 근처 화단의 쓰레기를 주워 비닐봉지에 담고 있다. 놀라운 청력의 멀티플레이어인지 쓰레기를 주우며 벤치에 앉아 있는 일행들과의 대화에도 참여한다. 놀이터를 벗어나니 챙이 넓은 모자를 쓴 중년 남자가 쌀 포대를 들고 공원의 쓰레기를 주워 담고 있다. 오늘 무슨 날인가, 싶어 휴대폰의 날짜를 확인했다.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는 별 거 없는 날이다. ‘역시 좋은 세상에 살고 있어.’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듯 버려진 쓰레기가 수거되는 거리를 걷는다. 꽃이 피고 지는 잔잔한 나날의 시간이 흐른다. '개선의 여지와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어서 다행이야. 나도 동참할 수 있어.’ 냉소주의가 빠져나간 자리에 긍정의 기운이 차오른다. 예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유월인데 벌써 전국적으로 폭염 주의보가 발령되었다는 점뿐이다.
#플로깅 #줍깅 #쓰담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