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의 깨진 유리창 이론

놀이터의 밤엔 늘 소풍이 벌어진다

by 비단구름

놀이터의 밤엔 늘 소풍이 벌어지는 모양이다. 아마도 신나고, 설레고, 세상 근심이 다 사라진 것 같았을 소풍을 마친 놀이터의 아침은 쓰레기로 점령당한 처참한 꼴을 하고 있다. 나란히 일자로 배치되어 있는 벤치는 깨끗한 편이다. 디귿자로 배치된 벤치에 쓰레기가 수두룩하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티가 난다. 놀이터 바로 근처엔 헬스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헬스 기구의 벤치들은 깨끗하다. 혹시 운동과 쓰레기가 상관관계가 있을까? 별의별 쓰레기를 줍다 보니 별별 생각을 다 해본다.


전단지가 갈기갈기 작은 조각으로 찢어져 바닥에 뿌려져 있다. 앱에 데이터를 입력해야 하는데 ‘종이 쓰레기’ 한 개로 입력해야 하는지, 여러 개로 입력해야 하는지 헷갈린다. 아이스크림 봉지, 아이스크림 막대, 아이스크림 꼭지, 사탕 비닐, 젤리 봉지들, 과자봉지, 빈 컵라면 용기를 줍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쓰레기를 버리는 이유는 단순히 편해서인지도 모르겠다고.


인류는 불편함을 개선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더 편하게 살기 위해 많은 발전을 이뤄내고 때로는 왕조를, 때로는 체제도 바꾸었잖은가. 그러니 편하게 쓰레기를 버리는 것쯤이야. 쓰레기를 들고 다니는 불편함을 감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과 편하게 거리에 쓰레기를 버렸을 때 불이익의 값이 동일하다면 상황은 개선되지 않는다. 이렇게 누군가 쓰레기를 버리면 누군가는 쫓아다니며 치워주고 있으니 말이다.

놀이터 벤치에 앉아 아파트 시세 이야기를 하던 무리 중 한 명이 호탕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파트 값이나 올랐으면 좋겠다!”

그러자 함께 있던 여자들이 웃는다. 요즘 동네는 재건축 분위기로 들썩인다. 단지 게시판에는 재건축 안내 전단지가 게시되어 있고 공원의 나무와 나무 사이는 재건축 준비위원을 모집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최근 들어 몇몇 지인들이 한국이 망하고 있다며 근심하는 것을 들었다. 그들은 그들의 지인들이 모두 그렇게 얘기하며 근심한다고 전했다. 그들이 말하는 ‘망한다.’의 의미가 재산을 잃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국가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형세가 이전보다 못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경제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것인지, 사회적으로 강력 범죄율이 높고 치안이 불안한 것을 말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하고 싶다. ‘망한다, 망한다.’하는 이들도 현재로선 누가, 뭐가, 어떻게, 망하고 있다는 것인지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큰일이 일어나기 전엔 작은 징조들이 힌트를 준다. 예민한 생명들은 미세한 징조들을 감지한다.


꾸준히 버려져있는 쓰레기를 보면 우리 사회의 밑바닥부터 흔들리고, 저 아래서부터 균열이 생기고, 기본마저 붕괴되고 있는 징조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 아무 데나 버려지는 담배꽁초들은 막다른 길 끝에 내몰린 개개인의 고통의 합인지도 모른다. 쓰레기 옆에 앉아 있으면서 쓰레기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 쓰레기를 보고 무심하게 지나치는 분위기를 보고 있으면 사회는 진짜 다방면으로 무너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인성교육의 부재, 공교육의 기능 상실이라고 하는 세간의 우려 섞인 목소리들은 알면서도 손 놓고 구경하고 있는 정확한 분석인지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내 방을 정리하듯 쓰레기를 치운다. 쓰레기가 쌓이지 않도록 바로바로 치운다. 눈앞에 드러난 사소해 보이는 문제가 임계점을 돌파하여 최악의 상황으로 향하는 시점에서 최고의 선택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 화합으로 이끌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최선의 선택이라도 시도한다.


1980년대 뉴욕의 지하철은 더럽고 범죄율이 높았다. 뉴욕시는 도시 정화를 위해 경범죄도 강력하게 단속하고 엄격하게 처벌하는 ‘무관용의 원칙’을 적용했다. 시는 지하철과 거리의 낙서를 지우고 무임승차 단속, 쓰레기 무단 투기 단속, 신호 위반, 빈 캔 아무 데나 버리기 같은 경범죄 단속을 시행했다. 이후 뉴욕 지하철의 범죄율은 무려 75% 감소한다.


범죄 심리학의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은 사소해 보이는 나쁜 상태를 방치하면 나쁜 상태가 가속화되는 현상이다. 방치되어 있는 유리가 깨진 자동차는 사회의 법과 질서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여 범죄의 타깃이 되어 주요 부품들을 도난당하고 결국 고철 덩어리가 된다. 방치되어 있는 손상된 시민의식은 현재 적극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쉽고 만만한 먹잇감이라는 신호를 굶주린 하이에나 같은 기회주의자들에게 보내 사회를 함부로 대하는데 눈치를 보지 않게 만들어버린다.


밝고 깨끗한 도시 환경은 강력 범죄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 쓰레기 투기가 빈번히 발생하는 구역은 관리되지 않는 신호를 주어 불안정한 치안, 빈곤화와 같은 상황으로 급격하게 악화된다.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주우면 관심 없던 사람들도 쓰레기를 주울 지도 모른다. 누군가 쓰레기를 줍고 있는 것을 보면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를 망설일 수도 있다.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을 꾸준히 유지하고 관리하려는 관심과 행동이 커질지도 모른다. ‘무관용의 공권력’과 ‘자발적 시민의식’의 조화로운 사회가 법 없이도 살 선량한 시민들이 편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인간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형태의 유토피아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쓰레기를 줍다 좁은 길에서 지인을 딱 마주쳤다.

“쓰레기 줍는 거예요?” 지인이 물었다.

“아, 네, 뭐. 이벤트 하는 게 있어서,”

대충 횡설수설하고 이상한 짓하다 걸린 사람처럼 어색하게 굴고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왜 그랬을까. 포식자가 기다리고 있는 바다로 뛰어드는 펭귄보다도 심약한 새가슴이다. 당당하게 이렇게 말해볼걸.


“같이 하실래요?


그랬어야 했는데. 좋은 건 적극 권했어야 했는데.


마지막으로 방문한 놀이터는 깨끗하다. 이마가 넓고 마른 체형의 노인이 담배를 피우며 벤치에 앉아있다. “쓰레기 줍는 거요?” 노인이 관심을 보인다. 그렇다, 고 하자 “여긴 깨끗해. 내가 담배를 피워서 그렇지.”라고 말한다. “그러네요. 여기는 매우 깨끗하네요.”

내가 대답했다.

“지하철역에서 이리로 오는 중간에 공원 하나 있지. 그 공원 안에 놀이터가 있는데 거기가 말도 못 하게 더러워.”

노인이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생각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질 만큼 질색이라는 것을 노인의 미간도 함께 부연설명해 주고 있다.

“젊은 애들이 거기서 밤마다 술 마시고 그래서 그래. 여긴 젊은 애들이 잘 안 와. 공원 관리하는 사람도 저렇게 치우고 말이야.”

노인이 놀이터 화장실에서 나온 형광 조끼를 입은 남자를 가리켰다. 노인의 말에 적절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나는 노인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을 함께 바라보았다.



#플로깅 #줍깅 #쓰담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