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덜 아팠을까.
문득 생각했어.
우리가 차라리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조금은 덜 아팠을까.
당신을 깊이 알지 않았더라면,
그저 그런 관계로 남았더라면
이런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당신에게 호감을 가졌던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당신의 어떤 행동에도, 어떤 말에도
나만의 행복한 의미부여를 했었던.
도파민이 주는 설렘에 푹 빠져서
그냥 내 하루하루가 행복했던 그때로.
그건 어쩌면 ‘사랑’이라기보다,
‘내가 만든 환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시 돌아간다면, 애초에 우리 시작을 하지 말자.
그냥 가깝게 지내지 않고, 적당한 거리에 있을 때 좋은 사람으로.
그렇게 당신에게 내가 예쁜 미련으로 남겨지고,
나 또한 당신을 좋은 사람으로 기억할 수 있게.
'풉' 다른 내가, 나를 보며 비웃는다.
얼씨구,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태평하게도 하고 앉아있네.
그때의 너를 떠올려 봐.
그 사람의 얼굴을 가까이 보며, 입술에 시선이 머물던 순간을.
그 사람을 보면 만지고 싶고, 그 사람과의 미래를 꿈꾸고 싶었다.
그런데 무슨 적당한 거리에서 좋은 사람이야.
그래, 우리는 그때 사랑했다.
아마도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부터
‘적당한 관계’란 불가능한 일이었음이 분명했다.
생각은 위험할 수도 있다.
기억이라는 건 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니까.
순간적으로 미화되기 쉽다.
아무리 떠올린다 한들, 그때 그 순간의 나를 온전히 기억하기란 불가능하다.
내가 세상에서 잘 아는 건, 오직 지금 이 순간의 나뿐이다.
그래서 일기를 쓰라고 하는 건데.
아이러니하게도 마음이 아파서 내 일기를 열어보지 못하겠다.
너무 생생해서. 감정 하나하나 예쁘던 나를 떠올리면, 그게 신기루처럼 아득해서.
처음부터 그냥 내가 먼저 좋아한다고 적극적으로 표현해서,
그래서 그 시간 내내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건 아닐까?
아니면 정말 날 사랑하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까먹은 걸까?
꼬리를 물고 물고 하다가, 이런 생각들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싶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당신과 내가 변화했기에
그냥 서로가 원하던 포인트들이 점점 퇴색되면서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결말을 맞이한 것은 틀림없다.
나름대로 괜찮게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데,
아직은 이별을 마주하기 싫다고, 자꾸만 속이 나에게 투정 부린다.
왜냐면 난 여전히 이별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바쁜 현실을 마주하다 보니 깨달았다.
그때는 정말 지옥 같아도 결국 시간이 판결해 준다는 것.
나의 지나간 사랑 이야기 따위 한낱 풋소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연애란 결국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에 의미 있다.
그냥 내가 오늘 할 일은, 생각을 지나치지 않고 글로 덜어내는 것.
그게 적어도 오늘 이 시간, 지금 내가 마땅히 하고 싶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