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인지
명상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분별심과 분별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 결과 분별심을 금기의 대상으로 여긴다. 분별심의 문제는 분별하는 마음이 아니라 이기적 마음이다. 분별과 분별심은 구분되어야 하는데 이를 구분하지 못한 채 사용한다. 그 결과 분별심을 극도로 경계하는 마음은 인지 발달의 큰 장애로 작용한다. 우리의 삶은 하루 종일 분별하는 인지 작용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 작용이 없으면 삶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대다수는 그것이 인지 작용이라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그 이유 역시 인지가 충분히 발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별심의 문제는 분별하는 마음이 아니라 이기적 마음
독일 국민이 히틀러를 선택한 것은 (가치) 인지 능력이 떨어져서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독일은 국가의 존립이 어려워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었다. 히틀러를 선택한 일반인들은 자신의 선택으로 살인과 파괴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이미 그때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다행인 것은 자신들의 역사를 돌이켜보고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처절한 역사의 경험을 통해 상당수 독일 국민이 (가치) 인지 발달이 되었기 때문이다.
분별심은 차별하는 마음을 뜻한다. 그런데 차별과 차이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차별은 인지 발달이 덜 된 이기적 마음에서 나오는 행위이다. 인종 우월주의, 남성 우월주의는 모두 이기적 마음에서 나온 차별이다. 이에 반해 차이는 다름을 의미하는 단어이며, 인지 능력이 발달해야 차이 즉 다름을 알 수 있다. 차이를 알 수 있을 때 노약자나 장애인을 배려할 수 있다. 차이를 알 수 있을 때 차별하지 않고, 세심하게 그 차이를 고려한 배려 즉 사랑이 가능하다.
차이를 알 수 있을 때 사랑이 가능
분별심은 분별하는 인지 능력과 그 인지 능력을 사용하는 주체인 마음으로 구성된다. 비유를 들면 칼은 인지 능력이며, 그 칼을 들고 있는 주체가 마음이다. 따뜻한 마음의 의사가 칼을 들면 생명을 살릴 수 있지만, 강도가 칼을 들면 사람을 죽일 수 있다. 강도가 칼을 버린다고 해서 강도의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즉 분별하지 않는다고 해서 분별하는 주체인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의 변화 즉 마음의 성장이다. 그런데 마음의 성장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바로 인지 발달을 통해 이루어진다. 인지 발달이 되어야 칼과 마음을 구분하며, 자신의 마음이 강도의 마음인지 의사의 마음인지를 알 수 있다. 칼이 문제가 아니라 그 칼을 쓰는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분별(차별)심을 내려놓는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분별(차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일시적으로 멈춘다는 의미이다. 그 멈춤은 마음의 본질적 변화가 아니다. 그렇기에 다른 상황에서 다시 분별(차별)심은 자기도 모르게 작용한다. 그렇다고 차별심을 멈추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차별하는 마음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다. 그 관찰을 통해 나 자신이 얼마나 사랑이 부족한 존재인지를 뼛속 깊이 인지해야 한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인지할 때만이 마음은 본질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삶의 다양한 영역과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함을 뜻한다. 이것이 바로 가치 인지 발달이다.
사람이 자신의 본질을 모르는 것은 마음의 본질을 볼 수 있는 인지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지 발달이 될 때만이 자신의 본질을 볼 수 있으며, 본질을 볼 수 있을 때 그 변화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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