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끝을 맴도는 시간의 향기
대학로엔 학림, 신촌의 미네르바..
대학 문화와 함께 다방들이 번성하고 있을때
명동에서는 상업과 소비 중심의 문화를 바탕으로
다방들이 번창했다.
그 다방 문화의 전성기에 1972년부터 같은 자리를 지켜온 명동의 터줏대감 카페 < 가무 >가 있다.
1972년 원래 이름은 알베르 까뮈의 이름을 따서 '까뮈' 였는데 외래어 상호를 시정하라는
유신정권 때 글자를 조금 바꿔
'가무'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명동이 소비의 중심지였던 시절,
이 곳의 손님들은 대학나온 여자들,기업 회장,
은행 간부등 대한민국 상위 10퍼센트인
귀한 분들이 오는 곳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2007년 실내 리모델링 전까지 천장에는 화려한 금도금 모자이크가 덮여 있었을 정도로 사치스럽고 예뻤다.
오랫동안 <가무>에서 가장 사랑받고 유명한 것은
이 비엔나 커피이다.
잘 내린 드립 커피에다가 싸구려 휘핑 크림이 아닌
진짜 생크림을 듬뿍 넣고 계피 가루를 솔솔 뿌린...
그 부드러움과 달콤함은 단연코 따라 올 곳이 없다.
또 하나, 차를 시키면 조각 케이크가 따라 나오는데 32년째 이곳에서 일하는 50대 직원에 따르면 1980년대 세무조사 나온 공무원이
'커피가 뭐 이리 비싸냐'고 해서 핫케이크를 공짜로 주게 된 게 시작이라고 한다.
서울역사박물관에 보관 중인 1970년대 메뉴판. 커피값이 당시 돈으로 300~350원인데,
밥값보다 비쌌다.
자장면 한 그릇이 130원쯤 하던 때다.
지금 6000원 하는 이 커피는 1970년대
지금으로 치면 2만원 정도 하는
'한국에서 최고로 비싼 커피'였다.
특히 <가무>의 아름다움은 녹지를 찾아보기 힘든 명동 한복판에서 푸르름을 자랑하는 창가에 있다.
저 창가로 내려다 보이는 곳이 중국 대사관의 아름다운 앞뜰이다. 2000년에 개봉했던 영화 <정사>에서는 이정재의 2층 방에서 내려다 보이는 정원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대학때 복잡한 인파와 건물 속을 헤매다 지치면
이 창가에서 달달한 비엔나 커피를 마시며 쉼를 얻곤 했다.
이제 시간은 흐르고 소비의 중심에서 화려했던
카페 <가무>의 시절은 사라졌다.
청춘의 반짝 거리는 한 페이지를 선물했던 이곳에서 나 또한 추억이 빛바래 가는 것을
잠잠히 바라본다.
시간이 흘러도 변함 없는 건
비엔나 커피의 달콤함뿐..
코 끝에서 조용히 맴도는 계피향이
멈춰진 시간의 향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