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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Lee Sep 02. 2015

이스탄불의 여행자

선택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파도처럼 밀려드는 추억 속으로 빠진다.

앨범 속 사진으로만은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기억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여러 나라에 머물렀지만 터키는 좀 특별한 느낌으로 남아있다.

오래 머물렀던 이스라엘 보다 인간적으로 훨씬 정이 가는 나라였다.

 

관습과 종교에 매여

약간은 경직된 분위기의 주변 국가들과 달리

터키는 자유롭고 역동적인 느낌이었다.


아야 소피아 성당


이스탄불이나 이즈미르 같은 대도시에서는

화려함과 자유로움이 넘치는 상인들과 여행자들이,

이름도 기억할 수 없는 흑해 연안의 작은 시골에서는

인간적인 따뜻함이 넘치는 순박한 심성의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나 이스탄불은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비잔틴의 성 소피아 성당과 오스만의 블루모스크가 두 대륙의 상징처럼 마주 하고 있는 거리,

비잔틴의 화려함과 오스만의 신비로움이 공존하고

토카피 궁전과 오벨리스크 사이로  땅위에 트렘(전차)이 달리는

과거와 현재가 시간의 씨실과 날실로 정교하게 짜여진 곳.

 

동양과 서양의 대지가 만나는 보스포러스 해협의 다리 위로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너듯 하루에도 몇 번씩 건너 다니며

마치 중세로 돌아간 듯 화려한 성과 궁전들이며 

그야말로 마법의 양탄자처럼 쇼윈도를 장식한 페르시아의 화려한 카펫들을 보느라 늘 정신이 분주했다.

 

그러다 보면 천성적으로 사람들을 반기고 상술이 뛰어난 

이스탄불의 상인들에게 끌려가 그들의 가게에 앉아 귀빈인양 느긋하게 

터키의 특산품인 사과차를 홀짝 거리는 일이 하루에 서너 번은 되었다.

 

꾀죄죄한 차림의 배낭족이 호사스러운 가게의 주인과 아무  말없이 차를 마셨다.

물론 말도 잘 통하지 않으니 서로 조용했겠지만,

구매하는 물건이 없어도 나올 땐 그저 웃으며 또 오라는 손짓뿐.

사실 그들이 돈이 없는 배낭족에게 그 비싼 카펫이며 골동품 팔려고 했겠는가.

 

생각해 보면 그건 늘상 그 거리를 지나다니는  여행자들에게 보내준

그들의 작은 친절이고 재미였던 것 같다.

 


 



보스포러스 항구의 다리 아래에서 파는 1달러짜리 피쉬버거와

때 묻은 배낭이 삶의 제일 큰 동반자였던, 날마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생활.

 

불안하고, 경계하고 또 기뻐하고 반가워하고, 그리고 고마워하고 아쉬워하던....

단 하루도 같은 날은 없어서 그것이 몹시 피곤했지만 또 몹시도 즐거웠던 시간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불안하고 나약한 인생...

흉흉한 이 세상에서  그토록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 건

정말 신께 감사할 일이다.

 

아름다운 터키의 어느 곳 보다 이국적이고 역동적인  도시,

활기차고 신비로운 이스탄불에  나는 한없이 머물고 싶었었다.

행복했었고, 그만큼 자주 외로웠었던 이스탄불의 여행자.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더라도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이다.

프로스트의 시처럼  그냥 지나쳐 뚜벅뚜벅 걸어온 길들..

가보지 않았고, 가보지 못한 길들 속에는 선택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 난 새로운 꿈을 꿀 것이다.

언젠가 이스탄불의 거리를

블루모스크의 뾰족한 첨탑 아래,  따뜻한 손을 잡고 걸어가는 꿈을.

 

 

블루 모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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