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바람
어느 해 여름 나는 이집트에 있었다.
피라미드를, 나일 강을, 왕가의 골짜기를,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아서 그렇게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걷기에 편한 신발과 목을 축이기에 적당한 물만으로도
삶이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사막에서 진정으로 배우면서.
그렇게 헤매다가 여름의 살인적인 중동 햇볕과 만만찮게 살인적인 배낭의 무게에 지쳐서
사막의 끄트머리에서 카이로로 다시 돌아왔을 때 그곳에 나와 함께 9월이 도착했다.
싸고 오래된 영국식 건물의 5층 숙소엔 유럽식 건물 특유의 테라스가 방에 이어져 있었다.
천정부터 바닥까지 문이 달린 오픈 테라스.
난 그 테라스에 줄을 매어놓고 매일 빨래를 널곤 했는데
중동이고, 여름인데다, 옷도 별로 없는 배낭족이었으니 빨래는 하루의 필수 일과였다.
시트와 면티와 바지, 수건 등을 가지런히 빨랫줄에 널면서
아래 펼쳐진 올드 카이로 뒷골목의 시장을 보곤 했다.
그 시끄러운 외침과 분주함을 보면 사람 사는 건 어디나 같구나 생각하고
간혹 위를 올려다 보는 사람들은 낯선 동양 여자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중동의 날씨가 으레 그렇지만 추운 겨울은 없다.
건기에서 우기로 접어들어 가끔 비가 내릴 뿐이고 우리와 같은 늦가을의 추운 날씨도 없다.
그러나 8월의 하늘과 바람은 9월이 되니 달라졌고
중순쯤 되자 그건 더욱 확실해졌다.
테라스에 나가서 빨래를 널 때마다 귓가에 시원하게 바람이 불고
하늘은 눈이 아리게 샛파래 졌다.
아침 저녁으로 온몸의 세포들이 하나하나 깨어나서 가을이라고 외쳐댔다.
이상했다.
그렇게 지겹고 싫어서 떠나오고 싶었는데,
카이로의 메마른 길 위로 바스락 거리는 낙엽이 쌓인 남산길이,
모스크의 둥근 지붕 위론 교회의 뾰족한 종탑들이,
이국의 사파이어 빛 하늘 위론 쨍하며 눈에 박히던 장독대의 가을 하늘이
나일 강과 한강이 자꾸만 겹쳐졌다.
난치에서 불치병으로 까지 발전했던 그리움들.
결국 그 향수병은 숙소의 외국 친구들이 수소문해서 알아낸
카이로에서 유일한 한국식당의 비싼 육개장과 한식들,
당시 이집트에선 하기 힘들었던 국제 전화 몇 통으로 간신히 치료되었다.
외국에서의 봄, 여름, 겨울은 우리와 엇비슷하거나 아예 달라서
그리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가을은 비슷하지만 너무도 달랐다.
떠나 본다면 알겠지만 우리나라의 가을만큼 아름답고
그리운 것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해 9월엔...
붉은 햇볕과 사막, 카이로의 열린 테라스 사이로
그렇게 그리움의 바람이 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