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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Lee Sep 30. 2015

짐노페디 - 시인의 사과 세알

평온을 그대에게



오래전에 펜을 꺽어 버린 시인이 있다.
더 이상 자신 때문에 식구들이 고생하는게 싫어서
지금은 산골에 들어가 농사를 짓고 산다

오랫만에 서울에서 만난 그는 까맣게 탄 얼굴로
이곳은 차도 많고 사람도 많아 무섭다면서
어린애 같이 맑게 웃었다.
그가 소중히 품에 안고 온 누런 봉투에서  내밀어준 사과 몇 알,

요새는 구경하기 힘든 홍옥이 들어 있었다

나 어릴때는 골든, 홍옥, 아오리, 부사, 후지, 홍로, 요까, 국광 등등

얼핏 생각하기에도 사과의 종류가 참 다양했는데..
특히 늦은 가을 쌀쌀해질때면 가장 흔히 보이던 홍옥,
새빨간 껍질을 한입 베어물면 보이던 샛노란 속살과 

그 강렬한 신 맛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요즘에는 거의 부사로 통일되어 홍옥은 보기도 힘들어졌다.

문득 그 홍옥이 시인의 운명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충해에 약하다고. 키우기 힘들다고,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싹 갈아 엎고 돈 되는 것들만 키웠더니
어느새 다양한 맛과 개성을 지닌 사과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사는게 참 편하다고 왠지 서글프게 웃는 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
신문지에 돌돌 감긴 사과가 참 애달프면서...

따뜻하게 느껴졌었다.


과거의 시인에게 나는 이 곡을 주었었다.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이 곡에 담긴 단순한 평온함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Erik Satie: Gymnopédie No. 1


https://youtu.be/rIjWutnXZz8


프랑스 음악가 에릭 사티는 서양 음악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독특했던 기인 중 한 사람이라고 전해지며, 복잡한 것을 아주 싫어했다.
후기 낭만주의의 너저분한 장식과 새로움으로 한창 유행하던 

다다이즘, 큐비즘, 포비즘의 예술론은 그에 의해 단호히 배격되었다.
그의 관심은 주로 그레고리오 성가의 단선율 양식,
고대 그리스의 단조로운 고딕 양식, 신비로운 중세 생활 양식 등이었다.

그가 남긴 "세 곡의 짐노페디"는  이렇게 복잡한 관념을 싫어하고
그리스 문화에 경도되어 있었던 그의 독특한 산물,
말하자면 그의 성격과 취미의 결과였다.

짐노페디(Gymnopedie)는 그리스어로  벌거벗은 아이들 이란 뜻인데
원래는 그리스 스파르타에서 아폴론을 송축하던 연례 축제를 일컫는 말이었다.

악곡으로서의 그것은 느리고 애처로우며 평온한 야릇한 감상을 전한다.
사티의 짐노페디를 드뷔시가 매우 좋아했던 것은 아주 잘 알려진 사실.
오늘날 즐겨 듣는 사티의 관현악곡 짐노페디 2곡은
이 곡을 매우 좋아했던 드뷔시가 편곡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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