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엔 한 가지 병을 얻었다.
현실과 이상의 틈새에서 오는 이 우울함.
분명 새로운 시간이건만, 닿을 수 없는 꿈과 되풀이되는 일상 속에서 갑갑하다.
내 안의 평형점은 곧잘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온갖 것이 피어나는 봄에 혼자서 황량한 황무지에 서 있곤 한다.
우울함이 게속되는 날, 갑자기 치즈 케익이 먹고 싶어 졌다.
나는 치즈케익을 아주 좋아하는데,
새콤하고 달콤한 그 맛은 씁쓸한 커피와도 잘 어울려서 좋다.
밀가루 많이 섞어 퍽퍽하고 달기만 한, 냄새만 치즈케익이 아닌
크림치즈를 듬뿍 넣어 미묘하게 흔들릴 것 같은 부드러움과
사르르 녹아내리는 첫맛, 약간은 새콤하고 고소한 뒷맛이 아주 중요하다.
엄선해 놓고 찾아가는 케이크 가게에서
약간은 사치스러운 가격의 치즈케이크를 포장해 들고서
스스로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 달콤하고 새콤한 치즈케익의 정체는 아마도 봄의 우울이 아닐까.
노년의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1981년 골드베르그를 걸어놓고
치즈케익을 한입 가득 떠넣고 나는 어느새 봄을 우물거린다.
이 음악에 담긴 평온함을 누리며 상상을 해본다
얼굴을 따끔거리게 만드는 황금색 공기 입자들
꿀벌이 잉잉대는 금잔화 밭의 향기
머리카락을 스치는 하늘색 바람결..
어제는 봄의 우울이 그렇게,
치즈케익 모양을 하고 내게 왔다.
1981년 글렌굴드, 바흐 골드베르그 변주곡
글렌굴드야말로 바흐의 골드베르그 연주의 대가라고 불리운다.
연주시 기이한 버릇들과 연주 녹음에서도 들리는 웅얼거리는 목소리는 아주 유명하다.
연주자들도 해마다 곡의 해석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나는 젊었을 때의 그의 천재적인 연주도 좋지만
담담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노년의 연주를 참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