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아, 이걸 쓰고 싶다, 써 봐야지'생각했다가..
어느새 하루가 또 지나간다.
그런 하루의 반복.
직업적으로 돈이 되는 원고가 아닌 내 맘가는 대로 자유롭게 쓰는 글이 고프다.
그러나 나는 생활인이기도 하니까...
끼니 거리, 입힐 거리, 치우고 쓸고 닦아야 하는 일거리가 끊임없이 보이고,
아이를 보살펴야하고, 사교성 좋은 학부모도 되어야 한다.
그 모든 곳에서 작가의 얼굴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상황에 맞는 역할이 있으니까 말이다.
작가로써의 자아와 생활인의 자아,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
그 미묘한 균형점을 잡는 것은 꽤 중요하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 내 안에 추는 곧잘 기우뚱하게 기울어지곤 한다.
그래서 더 정해진 시간과 자리에 성실하게 임하려고 노력 해본다.
하지만, 불쑥 불쑥 글거리가 생각나고,
놓치고, 아쉬워하면서 갈증을 느낀다.
골방에 콕 박혀서 글만 쓰고 싶은
깜짝 놀랄만큼 격렬한 욕망에 시달릴 때가 있다.
원고 두어줄 쓰다가 불현듯 내일 끼니 반찬 걱정,
깜빡 잊은 아이 학교 준비물을 챙기러 후다닥 일어나는 일 없이,
내가 방금 놓쳐버린 주옥같은 글귀를 찾으며
안개 속에서 해매이지 않도록...
아무런 다른 생각 없이 그냥 사고의 바다에 빠져서
내 안에 깊숙히 침몰한 난파선의 온전한 조각들을 찾고 싶은 것이다.
어두운 저 심연에 잠긴 난파선도
한때는 꿈을 가득 싣던 보물선이었을 텐데.
누구나 가슴 깊은 곳엔.. 있지 않을까..
꿈을 싣고 침몰해버린 난파선이.
더 이상 헤엄칠 힘이 사라지기 전에
찾고 싶은 그 욕망마저 희미해지기 전에
다시 한번만...
아, 잡다한 일상에서 벗어나서
음악 듣고, 책 읽고, 이따금씩 푸르른 창 밖도 내다 보면서
한없이 글만 쓰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진하고 까만 밤,
씁쓸한 커피 한모금이 목을 타고 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