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기는 운동이 아니라고 단언하며 살아왔지만,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만으로도 운동이 될 수 있는 요가를 시작한지 어느덧 일년 반을 넘어섰다. 격렬한 유산소 운동의 턱까지 차오르는 숨이야 말로 운동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의 기분은 내 몸 안의 에너지를 가득 채웠다. 그와 달리 한가지 동작을 부동의 상태로 유지하는 요가는 운동이 아니라고 치부했었다. 다리 찢기를 3분간 유지하느니 스쿼트를 100회 하고 말지, 데드리프트 정도는 해야 당기는 허벅지의 근육 통증은 이것이 운동이라고 말이다.
요가를 언제, 어떠한 계기로 시작했는지는 구체적이지 않았다. 새로운 일의 시작으로 시간이 맞지 않아져 잘 다니던 수영을 그만두고 무슨 운동을 해볼까 라고 기웃거리던 참이었다. 불현듯 요가가 생각이 났다. 원데이 클래스로 가볍게 참여해본 요가 체험은 어느 동작도 바르게 되지 않았지만 눈을 감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날로부터 나는 요기니(요가하는 여자를 말하는 말)가 되었다.
내가 다니는 요가원은 새벽6시, 아침10시, 저녁8시 하루에 세번 강습이 있다. 보통 일을 마치면 밥을 먹을 기운도 없었지만 요가 매트를 꼭 껴안고 요가원으로 터벅터벅 들어갔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연령대가 다양한 소수의 사람들이 양 옆의 30센티미터 남짓의 공간을 남겨두고 요가매트를 가지런히 편다. 간접조명 두어개 만이 실내를 밝히며 아늑한 어두움이 조성되지만, 사람의 형태만큼은 또렷하게 보였다. 한사람이 누워 양 손발을 대각선을 향해 쭉 뻗으면 꽉 차는 그 요가 매트 안의 작은 공간안에서 아빠 다리로 허리를 펴고 바르게 앉아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다.
요가를 할 때 만큼은 두 눈을 감는다. 선생님께서 눈을 감으면 내 몸에 집중하기 좋다고 하셨기 때문이다.“받다 코나아사나”“파스치모타나 아사나”요가 자세 용어가 선생님의 목소리를 타고 조용히 천천히 흘러온다. 요가원의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자세를 취한다. 외계어처럼 들리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그 말은 잊은 채 옆 사람의 자세를 훔치듯 쳐다보며 재빠르게 나로 돌아와 비슷하게 자세를 잡아본다. 허둥지둥 하는 나를 향해 선생님은 괜찮다는 미소를 보이며“팔을 멀리 뻗으며 쭉 펴보세요”, “왼쪽 다리를 접어 세워보세요”, “허리를 조금만 더 비틀어보세요”라고 말하신다. 어둠속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집중을 한다.
요가를 시작하고 두가지의 알아차림이 있었다.
하나는, 눈을 감고 보이는 것을 가린 채 소리 자체에 집중하여 듣고 행동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과 두번째로는 그간 살아오는 동안 내가 내 몸을 어떻게 사용하며 살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골반, 고관절이 약해 잘 삐걱거리기도 하고 어긋나는 기분이 종종 들곤 했다. 그러다 보니 원래 그렇다는 생각과 함께 잘 사용하지 않는 근육과 관절의 하나가 됐다. 요가에서는 누구나 같은 동작의 자세가 주어지지만 잘 되는 자세, 잘 안되는 자세가 사람마다 다르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될 뿐이었다. 고관절을 사용하는 동작도 마찬가지 였다. 당연한 말이기도 했지만 선생님은 특히 잘 안되는 자세에 대해서는 그 근육을 쓰지 않아서 안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누구보다 미숙한 그 동작을 통해 그간 약하다고 해서 그대로 두었던 것이 굳어져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느껴졌다. 내 몸을 어떻게 써왔고 쓰고 싶은 대로 편하게만 쓰며 살아왔는지 다 드러나는 것 같았다. 단지 약하고 불편하단 이유로 방치한 것 같아 그런 내 몸에게 미안해지기도 했다. 무리가지 않게 조금씩 사용하면서 근육을 늘리고 자극시킨다면 해당 근육이 강해질 것이고 점점 나아진다는 것이다. 간단한 이치였지만 그간 생각지도 못했다. 나이가 들수록 안되는 것은 점점 하지 않고, 잘하는 것은 점점 많이 하게 되었다. 균형이란 어느 하나 두드러짐 없이 골고루 같은 힘을 갖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었다. 비록 강하지 않더라도 외부에서 오는 자극과 힘에 맞서 고르게 막아내고 지켜낼 수 있는 것 아닐까. 눈을 감으면 시야에 있는 것들이 마음까지 가로 막고 있었던 게 아닌지 생각하기도 한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 홀로 앉아있다는 생각은 없는듯 존재하던 내 숨 조차 지금 이순간 가파른지 편안한지 느껴진다. 천천히 숨을 쉬어 몸을 이완시키고 자극한다. 그렇게 평생 쓰지 않고 잠자고 있던 근육도 깨어난다. 몸의 구석구석이 균형을 맞추어 간다.
요가에서 나무자세 라 불리는 동작이 있다. 양 발을 바닥에 붙이고 정면을 보고 서서, 한쪽 발을 구부려 다른 쪽 발의 허벅지 안에 갖다 붙인다. 그리고 두 손바닥을 기도하는 자세로 하늘을 향하게 쭉 뻗어 팔을 펴고 양 팔은 귀 옆에 붙인다. 외 발로 서서 먼 곳을 응시하며 균형을 잡는 자세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쉽지 않은 자세로 시선을 한 곳으로 집중하여 바라보다가도 자칫 조금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데…’ 라는 마음을 먹기만 해도 바로 쓰러진다. 마음과 몸이 연결 되어있다는 것이 느껴져 참 신기하다. 균형을 잡는 데에는 균형 잡힌 몸 뿐 아니라 집중하는 마음도 하나 라는 것이다.
요가에는 기록이 없다. 수영을 할 때는 오늘은 몇 바퀴를 쉬지 않고 돌았나, 크로스핏이라는 운동을 할 때는 와드(WOD, Workout Of the Day : 그 날의 운동)를 몇 분 내로 수행했나, 러닝을 할 때는 1키로 구간을 몇 초에 뛰었나 하고 끝남과 동시에 다음 운동을 다짐하고 했다. 그러나 요가를 할 때 만큼은 나의 상태를 바라보고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일이 아닌 운동 조차도 나와의 경쟁에서 늘 이겨보려고 했던 긴장된 마음이 그간 얼마나 부담이 되었는지 요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러닝을 즐겨하던 나는 겨울이 되면 이불속으로 들어가기 급급하다. 따뜻한 집안의 온기와 차가운 바람을 가르고 뛰는 것을 머리속에서 저울질 한다. 그러다 박차고 나가 뛰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 잊고 후끈한 몸으로 집에 돌아온다. 그 기분은 나 자신을 이겨낸 승리자의 왕관 같은 것이었다. 자신과의 싸움을 이기고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아졌음은 더할 나위 없는 쾌감을 가져다 주지만 나를 이겨야 하는 마음에 전전긍긍한다.
요가를 할 때 만큼은 그런 승부욕 같은 것이 없어서 좋다. 나 자신에게 져도 좋다.
'누구나 꾸준히 하면 돼요. 욕심내지 않고 조금씩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무리 하지 않아도 돼요. 잘하지도 않아도 돼요. 그저 내 몸을 바라보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중요해요. '
요가 선생님의 말은 오랫동안 내 마음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