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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Jan 05. 2018

달게 말하고, 쓰게 받아들이는 연습

<한식의 품격>을 읽고 대화의 품격을 떠올리다  

타협하지 않는 완고함이 이 책의 컨셉이다. 저자는 너무하다 싶을 만큼 잔인하게 깐다. 온도와 자극에 의존하고 개선없이 퉁 치는 조리방식, 단맛의 과잉이나 반찬 문화의 열악함 등에 대해서 열심히 공감하며 읽다가도 이내 우는소리하게 된다. "청양고추도? 고기기름 양념볶음밥도? 활어회도? 차진 쌀밥마저ㅠ? 쏘맥도ㅠㅠㅠㅠ?" 무수한 되물음에도 아랑곳 않고 마지막까지 책은 계속 까고 파고, 으깨고 뭉갠다.


그 완고함이 어디서 왔는가 하면, 그 누구도 한식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감히 까려하지 않아서 발언 자체가 문제시되거나 듣기 전에 격한 거부를 당하는 경험을 많이 해서일 거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두 가지 물음이 생겼다.


문제제기는 가장 한쪽 극단에 서서 원칙을 강하게 논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거부감의 표시나 반박의 표현은 원색적으로 제시해도 되는가?


1) 문제제기하는 방식

세세하게 따져보자면 그의 말이 9.9할 맞을 수 있다. 이렇게까지 덕력과 전문성을 뽐내기가 쉽지 않다. 집요하고 섬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다 말고 나가서 '매콤하게' 해달라 해서 오징어덮밥을 먹고 들어왔다.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에서 묘한 반발심을 갖게 한다. 쉬이 설득당하던 나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 예시를 하나만 들어본다면 아래와 같다.

p288 비싸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강진 한정식 골목에서 잘 만든 저녁 한 상을 받은 적 있다. 3만 원에 더할 나위 없는 차림새였지만, 그런 상에도 찐 브로콜리가 올라온다. (중략) 그래도 찐 브로콜리는 찐 브로콜리일 뿐이다. 맛을 향한 목표 의식과 비전을 가지고 가치를 불어넣은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심지어 소금 간도 안 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요리의 결과물이 아니다. 이런 반찬이 잔뜩 깔린 상은 '풍요 속 빈곤'의 정확한 구현이다.


'이렇게까지? 문제인 건 알겠는데 당신 따라가다 바짓가랑이 찢어지겠어' 싶은 거다.


그런데, 읽으면서 대상이 유독 매력적이라 심히 유혹당하고 마구 설득당하던 부분이 있다. 평양냉면.

어디 평냉이게요


멤버 재현님도 그 부분 읽다가 우래옥을 다녀왔다신다. 정말이지 몹시 매혹적인 글이었다. 저자의 목적은 한식 까기가 아니라 한식의 발전방법 고민하기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깠다가 인정도 해줬다가, 비판하면서도 좋은 점 부각시켜주는 등 방식을 풍부히 버무려줬다면 더 많은 사람이 열린 마음으로 공감하도록 설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완급조절이 없어서 후반부로 갈수록 지쳤다. 덕분에, 누군가를 설득할 때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해주었다. 




2) 새로워서 불쾌한 생각을 수용하는 방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그래도 즐겁게 읽어냈던 건, "한식 별로예요 왜냐하면"류의 글이나 방송을 이미 여러 번 접해봤기 때문일 거다. 제일 처음 들었을 땐 '엥? 한식만큼 재료 다양하고 맛 다양하고 조리법 다양한 데가 어딨어? 이탈리아는 맨 파스타 피자면서!'하는 생각부터  떠올랐다. 사례 중심으로, 비교군 중심으로 여러 번 듣기 전엔 '모여서 먹는 한식에 엄마 손맛이 최고지, 뜨거운 국물이 쉬원~하지'하는, '닥치고 찬양'식의 한국 식문화의 테두리에서 나가기 어려웠다. 나갈 수 있다는 생각조차 안 해봤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다.

새로운 의견을 처음 접할 때 첫번째로 취하는 태도는 방어다. '불쾌하다'는 느낌이 그 표식이다. 불쾌함이 들 때 나를 들여다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당장 든 불쾌함을 억지로 거둘 필요까진 없지만, 왜 그런지 이유를 아는 건 나에게 중요하다. 이유를 모를 때 그 불쾌함을 쉽게 배설해버리기 때문이다. 그게 저자가 무수히 접한 반응들을 보낸 이들의 태도일 거다. 


왜 불쾌하지?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따져보면 이 불쾌함은 정당할까? 를 판단하다 보면 상대편을 이해할 틈이 생긴다. 어려워도, 있음직한 생각임을 받아들일 여유가 생긴다. 물론 이 작업은 쉽지 않다. 가끔은 눈물나게 어렵다. 내 생각을 버리거나, 새 생각의 논리성 합리성을 따져 제일 좋은 걸 골라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때떄로 만나는 소통의 벽 앞에서 주저앉지 않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함부로 말해버리지 않는 태도의 중요성은 나를 비롯한 이 책의 청자들에게서 힌트를 얻었다. 



적폐!청산! 강한 말이 귀여워 보이게 하는 것도 훌륭한 전략. 띠지에 숨겨진 표현도 훌륭하다


우리의 나태한 식문화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한편의 책 덕분에 더 잘 말하고, 더 잘 수용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다.

쩝, 퍽 맛있는 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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