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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Apr 02. 2019

센 어르신께 배운 두 가지 지혜

<자유로서의 발전>을 읽고

경제학계의 마더테레사로 불리는 아마르티아 센, 모르신다면 이 기사로 미리보기

>>> http://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4041516726070?did=NA&dtype=&dtypecode=&prnewsid=


1)복합적인 문제를 바라보는 방식


균형, 이 책을 읽으면서 자주 떠올리게 된 단어이다. 어떤 결과도 한 가지 원인에 의해 발생하지 않고, 어떤 원인도 한 가지 결과만을 낳지 않는다. 이토록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석할 때 한 가지 틀을 사용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숙고해보길 권하는 그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 


거시 경제를 논하면서도 개인을 능동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줌인 줌아웃이 자유로운 느낌. 개인의 실질적 자유를 확보하는 일이 경제발전의 수단(인적자원 활용->발전)임을 인정하면서, 그 자체로도 개인을 위해서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유를 하나의 고정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에 반대하고, 기회와 책임의 의미도 다각도로 바라본다. 그 유연함이 신선했다.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수많은 사례와 연구결과를 들어 보여주는 신중함 역시 훌륭했다.

'아마르티아'는 '불멸'이란 의미로, 인도시인 타고르가 붙여준 이름이라고.

특히 가치를 해석하는 데 있어 넉넉히 열려 있는 태도가 좋았다. 그는 행동의 기준을 잡을 때 '고상한 정신의 감상주의에 빠져 생각해선 안 된다.'고 했는데, 내가 그런 편이다. 도덕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서 낭패보는 스타일. 특히 젠더감수성 관련해서는 지나치게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는 바람에 사태를 다각도로 바라보지 못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에 현명하게 접근할 기회를 잃곤 한다. 한 개인의 행동에 대해 "인두겁을 쓰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비난하는 것은 쉽다. 내 상식과 가치가 옳고 우선한다는 오만에서 오는 평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타인의 선택과 복잡한 세상에 하나의 가치만 들이대 판단하는 일은 효과적이지 않다. 문제해결이 목표라면, 한 가지 가치에 매몰되지 말고 다양한 기준에 비추어보아 그 적절성과 발전 가능성을 파악해보라는 그의 제안을 배우고 싶다.


그래서 다양성과 유연성을 어떻게 배우냐고? 그는 공적 토론의 기회를 많이 확보해주라고 했다. 말하자면 민주주의고, 대화이겠다.


혼자 균형감각 잘 찾기는 너무 어렵다. 하지만 친구 셋만 모이면 한 명은 의견이 다르기 마련이다. '관습'에 잘 적응했으면서도, '성찰'을 부지런히 하는 친구나 동료들과 함께 치열하게 의견을 나누는 것이, 사안의 복잡함과 다면성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좋은 방법 같다.




2)사람은 서로 기대는 존재라는 사실


나에겐 원하는 일을 선택하고, 살 곳을 고르고, 교육과 여가 중 필요한 걸 취하고, 정치적인 의견을 가지고 표현할 얼마간의 자유가 있다. 그 자유는 내 삶을 더 잘 돌보는 책임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다. 동시에 그러한 기회를 박탈 당한 누군가의 자유를 확대하는 데에 힘쓰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투표가 모두에게 주어진 권리라 해도, 모두가 행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투표하러 갈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것도 나의 직업 덕분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자유가 가진 책임을 경시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의 한 표는 나, 그리고 투표할 수 없었던 이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자유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자 경향 기사는 기후변화의 영향도 불평등하게 나타난다는 분석을 전했다. 소득수준에 따라 녹지접근성이 달라지고, 녹지에서 소외된 계층에겐 폭염이 더 가혹하다고. 나에겐 선택인 일이 누군가에겐 필수이거나 결핍일 때, 나는 내 역량과 영향력을 더 키워야 함을 깨닫곤 한다.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나누기 위해서.





읽으면서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팠던 질문


1) 말이야 빛깔 좋지만, '실질적 자유'를 확보한다는 말이 모호하다. 공적 토론이라는 수단도 모호하다.

그러는 동안 여전히 오피스텔 아사 기사는 심심찮게 나고, 출산율은걱정스러울만치 낮고, 청년실업률은 상승곡선을 그린다. 한국에는 '실질적 자유의 확대', 어떻게 적용 가능할까?


2) 역량 확대가 확보한 자유는 책임을 다하고 있나? 잘 먹고 잘 배우고 잘 큰 애들이 보이는 지속적 일탈(일베?)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자유도 민주주의도, 제대로 정착하지 못해서 그런가? 더 많이 확보하면 될까? 다른 전략이 필요한 건 아닐까.




2018.08.15.

트레바리 1805 시즌 아마르티아 센 <자유로서의 발전>을 읽고 쓴 독후감과 발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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