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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빈 Mar 04. 2023

우리에게 필요한 건, '틈이 있는' 마음

단과대마다 가진 분위기가 만드는 특정한 성향의 학생상

대학교 1학년 때 들었던 교양 수업에서 한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다양한 과의 학생들을 한 수업에서 가르치다 보면 각 과, 각 단과대마다 확연히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게 보인다고 말이다. 경영대 학생의 경우 좀 더 이해타산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인문대 학생의 경우 좀 더 낙관적으로 세상을 보고 느긋한 성향을 가진 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사범대 학생은 사람의 잠재가능성에 좀 더 포용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사회과학대 학생은 분석적이고 세상에 일어나는 현상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 당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대부분 1,2학년들이었고, 우리가 잘 모르겠다는 듯이 애매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교수님께서는 잔잔한 미소를 띈 얼굴로 졸업할 때가 된 4학년 학생들을 보면 이러한 성향이 더욱 두드러지는 걸 볼 수 있을 거란 말씀을 덧붙이셨다.


4학년이 된 시점에서 이 말을 곱씹으니 교수님 말씀이 '옳았다'


1,2학년 때 교양수업에서 만났던 다양한 과의, 비슷비슷한 생각과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던 친구들은 제각기 다른 향기와 모습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했다. 디저트를 먹으러 갔을 때, 경영대 학생은 원재료 대비 가격이 적정하게 책정되었는지를 보는 반면, 예술대 학생은 디저트 모양의 균형감이나 색감의 조화로움을 먼저 봤다. 누군가 실수를 했을 때 사범대생은 이번엔 실수했지만 다음에 다시 시도했을 때 더 잘할 수 있을거란 가능성을 보았지만, 사회과학대생은 왜 저런 실수가 나오게 되었는지 원인을 규명하고자 했다. 이런 차이는 개인이 타고난 선천적 성향의 차이이기도 하겠지만, 각 단과대마다 가지고 있는 특성이 개인의 행동과 가치관에 녹아 들어간 결과이기도 했다.


단적으로, 각 단과대마다 피드백을 주는 방식이 다르다. 나는 국어교육과 학생으로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구. 신문방송학과)를 복수전공하며, 사범대 학생이면서 사회과학대를 경험해볼 수 있었다. 두 단과대만 비교하더라도 방식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범대의 경우, 뭘 하더라도 일단 칭찬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모든 평가에 있어 후하게 점수를 주는 경향이 있다. 어떤 말을 해도 일단 칭찬부터 쏟아내고 “다만, 아쉬운 점은~ 이것만 고치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완벽할 것 같다” 는 식으로 피드백을 준다. 유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어떤 발언이라도 편안하게 할 수 있고 실수하더라도 다 포용해주는 분위기다. 반면 사회과학대에서는 발표 후 갖는 질의응답 시간에 날선 질문과 대답이 오간다. 잘하면 잘했다고 칭찬하지만 못하거나 틀렸을 경우에는 가감없이 지적한다. 그게 교수님이든 학생이든. 잘했을 땐 확실하게 인정해주고, 못했을 땐 확실하게 무엇이 틀렸고 잘못됐는지 하나하나 짚어서 말한다. 그야말로 불꽃 튀는 토론이 격렬하게 일어나는 현장이다.


무엇이 옳고 그르고는 없다. 장단점이 있을 뿐이고, 각 학문분야의 특성에 적합한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분명한 건, 4년 동안 한 단과대에 속해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 단과대의 성향을 닮게 된다는 것이다. 사범대에서는 사회과학대식 피드백을 줘서 공격적이고 날카롭다는 평을, 사회과학대에서는 사범대식 피드백을 줘서 배려심이 넘치는 무딘 펜대를 잡았다는 평을 받으며 가끔씩 엇박자를 타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두 단과대를 모두 경험해보고 자리와 상황에 맞게 적절한 피드백을 할 수 있는 성향을 가지게 된 것에 감사하다. 덕분에 세상을 하나의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는 '틈'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우리는 같은 세상을 살고 있지만 다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다 다른데, 세상이 조용하게 돌아갈 리 만무하다. 세상이 북적북적한 건 당연하고 그렇기에 삶은 더 흥미로워진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을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고방식이 낯설다는 이유로, 판단기준이 엄격하거나 느슨하다는 이유로 배척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틈이 있는'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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