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연구는 최근 딥러닝을 기점으로 달라졌다. 그 전에는 인공지능을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설계하여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러한 연구는 실제로는 실현 불가능하여 70년대에는 인공지능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잠정적으로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알파고라 불리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성취를 통해서 인공지능 개발의 방향이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직접 무언가를 입력해 주는 게 아니라 기계가 직접 스스로 배워 나가는 것이다.
인공지능 분야에서 확인된 스스로 학습이 일반적으로 가지는 함의는 무얼까?
학자들은 각 분야에서 그와 관련된 현상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고 이론화한다. 그것을 통해 해당 분야의 현상을 기술하고 설명하고 예측해 내고자 하는 것이다. 가령, 한국어교육에서는 한국어가 어떠하며 그러한 한국어를 어떻게 잘 가르칠 수 있는지를 연구하여 이론화하고자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 분야의 딥러닝에 따라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인위적인 연구 및 그 결과는 그리 믿을 만한 것이 못될 듯하다.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들은 그저 한국에 와서 한국인들과 함께 살아가다 보면 저절로 한국어를 터득해 나가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한 방법이 최선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한국어교육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어쩌면 전 분야에서 학자들이 하고 있는 노력이 모두 허사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삶에 대한 이해를 추구해 온 철학적 작업 역시 마찬가지의 문제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냥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 그 밖의 다른 어떠한 방법도 삶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최적의 방법으로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떤 분야에서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이 있기 전에 그 분야는 이미 존재해 왔다. 사실상 어떤 분야를 특칭하거나 특정화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삶은 분야들로 나눌 수 없을 만큼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데 학자들은 그것을 연구라는 미명 아래에 임의로 분야들로 나누고 그렇게 정확하지도 않게 나누어진 분야들에 한정된 이론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이론들이 실제로 얼마나 설득력이 있겠고 유용할 수 있으며 적합할 수 있을까? 그저 부질없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한다. 그것을 알고 싶다면 그저 그것을 살아내는 것 이외의 방법은 없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