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마리 Dec 16. 2021

지나치게 쓰기

쓰기의 유형

‘지나치다’라는 말과 ‘쓰기’라는 말이 만나면 꽤 다양한 글쓰기 양식이 포착된다.


지나치게 쓰기(1)


이런 글쓰기에는 너무 넓게 쓰기, 너무 깊이 쓰기, 너무 심하게 쓰기 등이 있을 것이다. 하나의 글에 너무 많은 주제를 담으려는 경우가 있다. 주제가 많아지면 글이 길을 잃기 쉽다. 그러나 백과사전의 풍모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흥미로운 글일 수 있다. 너무 깊이 쓰기는 일상의 상식 차원을 넘어 고도의 철학적 사유로만 따라갈 수 있는 어려운 글쓰기를 말한다. 가볍게 읽기가 어렵지만 그 분야에 관심을 가진 이에게는 정독하고 싶은 글이 될 수도 있다. 너무 심하게 쓰기란 과장이 심하거나 단순화가 심한 글이다. 어떤 감정을 여실히 나타내기 위해서거나 어떤 생각을 매우 강조하기 위해 시도해 봄직한 글쓰기이다.


지나치게 쓰기(2)


독자들이 그 글을 보고 지나치도록 만드는 글쓰기이다. 제목만 보고도 돌아서게 만들 수 있고, 제목을 넘어 글 내용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읽기를 중단하게 만들 수도 있다. 형식 혹은 내용이 그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이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이런 글이 된 것일 수 있고, 아니면 의도적으로, 공개는 해야 하나 남이 잘 읽지 않았으면 하여 그런 글이 된 것일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뭔가 감추고 싶을 만큼 중요한 게 있을 수도 있고, 숨기고 싶을 정도로 자신만의 은밀한 내용을 담은 것일 수도 있다. 읽히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읽히지 않기 위해 쓰는 것이라면 그 점에서 특이하고 흥미로운 글일 수 있다.


지나치게 쓰기(3)


어떤 일을 겪고 나서 그 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 글을 쓰는 경우이다. ‘지나가게 쓰기’라고 바꾸어 부를 수도 있다. 글을 써서 그 일을 오래 기억하고자 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글을 쓰고 나서 덮고 잊고 싶은 경우도 있다. 이때 글쓰기가 일종의 치유 과정일 수 있다. 따라서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매우 중요해진다. 보통은 쓰기의 결과물인 글 자체를 위해 글을 쓰게 되지만, 이 경우는 글 쓰는 과정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쓰인 글은 글쓴이에게도 힐링을 주겠지만 읽는 이에게도 힐링을 줄 수 있다.


지나치며 쓰기


‘지나치다’와 ‘쓰기’를 결합하여 포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글쓰기 양식이다. 어떤 것을 스케치하듯 글로 옮기는 경우를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대상이나 상황, 성격을 눈에 보이듯 자세히 기술할 수도 있겠지만, 가볍게 스쳐 지나가듯 써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차창에 지나가는 풍경처럼 쓰인 글은 막힘 없이 줄줄 읽히며 읽는 독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읽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런 글쓰기도 때론 필요할 것이다. 글이 매우 자세하거나 심각해질 필요도 있겠지만 이렇게 스쳐 지나가듯 속도감 있게 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상의 다양한 글쓰기 유형은, ‘쓰기’ 앞에 오는 ‘지나치다’라는 말의 중의성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지나치다'라는 말의 뜻을 이 대목에서 새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지나치다    『표준국어대사전』

[Ⅰ] 「동사」

 「1」 어떤 곳을 머무르거나 들르지 않고 지나가거나 지나오다.

 「2」 어떤 일이나 현상을 문제 삼거나 관심을 가지지 아니하고 그냥 넘기다.

[Ⅱ] 「형용사」

       일정한 한도를 넘어 정도가 심하다.


쓰기 앞에 더욱 다양한 한정어를 두고, 그것으로부터 더욱 다양한 쓰기의 유형을 나누어 그 역할이나 기능, 맛, 색깔을 음미해 보는 것도 즐거운 글쓰기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쓰기에 관한 쓰기이다.


작가의 이전글 글 쓰며 드는 생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