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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마리 Oct 15. 2023

1. 연구의 절차: 언어를 위해 먼저 기호를

질문하는 언어학

[교수] 자, 이제 본격적으로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언어학이 무엇인지, 한국어학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셔서 이 자리에 오셨습니다. 언어학이 무엇인지 알려면, 먼저 언어학이 다루는, 언어학이 연구 대상으로 삼고 있는 언어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죠. 그런데 그런 언어를 이해하려면 먼저 기호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그 이유는 뭘까요? 그것이 첫 번째 질문입니다. 정리하면,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기호를 살펴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학생1] 1조 ‘집에 가고 싶죠’입니다. 답변하겠습니다. 언어가 기호에 속해서입니다. 


[교수] 그렇습니다. 교재에 그렇게 나와 있죠! 잘 찾았습니다. 그러면 추가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언어가 기호에 속해 있다고 해서, 언어를 알기 위해 굳이 기호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언어가 무엇인지 궁금하면 그냥 언어로 곧장 들어가 살펴보면 되지 않을까요? 왜 곧장 갈 수 있는 길을, 좀 돌아서 가야 하는 것 같은 길을 택해야 할까요? 방금 답변한 학생이 계속 답변해 보세요. 


[학생1] 아... 그건... 음...


[교수] 예, 조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물론 책에 나와 있기는 해요. 그런데 그 답이 그리 직접적으로 제시되어 있지는 않죠. 그걸 보고 좀 생각을 해야 합니다. 행간의 뜻을 읽어야죠. 잠깐 시간을 줄 테니 조별 토의를 통해 답을 찾아보세요. 그러고 나서 학생이 정리하여 답변해 주기 바랍니다. 다른 조들에서도 똑같이 답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이건 1조만 풀어야 하는 게 아니죠. 여러분 모두가 답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몇 분 드리겠습니다. 


( 4개의 조로 대여섯 명씩 모여 앉은 학생들은 곧 토의를 시작한다. 우선 교재의 어느 곳에 그런 내용이 나오는지 찾는 학생도 있고. 그걸 이미 알고 있는 학생이 그 부분을 읽어 주며 논의를 이끄는 조도 보인다. 첫 번째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되뇌어 보고, 그것에 이어지는 추가 질문이 뜻하는 바를 음미해 본다. 일정한 시간이 흘러 답변을 들을 시간이 되었다. )


[교수] 어떻게 답을 좀 찾아냈나요? 시간이 많지 않아서 쉽지는 않았겠지만, 성에 차지 않더라도 일단 조별 토의에서 나온 답을 학생이 정리해 주기 바랍니다. 어떻게 나왔나요? 


[학생1] 예, 책에 나와 있기로는, 김철수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을 알아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김철수는 사람에 속하고, 그래서 사람의 속성은 곧 김철수의 속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 중에서 김철수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점도 알 수 있어서, 우리는 김철수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교수] 김철수에 대해 알고 싶을 때, 그냥 김철수로 곧장 파고들지 않고, 김철수가 속해 있는 사람을 먼저 이해하여, 김철수가 가진 사람으로서의 일반적인 특성과 김철수가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김철수만의 특징을 이해한다는 것이죠. 잘 찾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얘기를 언어와 기호에 적용해 볼까요? 


[학생1] 예, 알겠습니다. 언어를 알고 싶다고 언어로 곧장 들어가는 게 아니라, 언어를 포함하고 있는 기호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언어가 가진 기호로서의 일반적인 특성과 언어가 다른 기호와 구별되는 언어만의 특징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교수] 잘했습니다. 그때 언어가 가진 기호로서의 일반적인 특성을 언어의 일반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기호와 구별되는 언어만의 특징은 언어의 개별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어의 일반성과 개별성을, 언어의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말로 바꾸어 부를 수도 있죠. 그러니까 언어를 알기 위해 기호로부터 시작하는 건, 언어의 일반성과 특수성을 모두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기호에 속한다는 것은, 기호에는 언어 말고도 다른 것들이 더 있다는 것입니다. 언어와 다른 기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성질, 그리고 언어가 다른 기호들과 구별되는 성질을 모두 파악하기 위해 언어에 앞서 기호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학문은 어떤 대상을 파악하기 위해 그것 자체로 시작하기보다는 그걸 포함한 더 큰 상위의 대상부터 탐구하게 됩니다. 일상에서 그렇게 하는 건, 좀 돌아서 가는 것 같고, 왠지 일을 더 크게 만드는 것 같고, 좀 답답해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학문이 고지식하다는 소리를 듣는 거겠죠. 그러나 그게 바로 학문이 체계적인 이유입니다. 언어학도 학문이고 그래서 언어학도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어 나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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