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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

by 실마리

<주전자>


우리 집은 물을 끓여 마신다.

전에는 다른 이들처럼 생수를 사다 마셨는데

언젠가부터 물을 직접 끓여 마시기 시작했다.


돈도 아끼고 쓰레기도 줄여 일석이조다.

정수와 가열의 수고는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

그게 부담일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가뿐하다.


아내가 아들 데리고 외국 나가는 그 새벽에

부엌에서 마지막으로 한 일은

주전자에 물을 넣고 끓이는 것이었다.


먼길 떠나기 전 이것저것 챙길 일이

무척이나 많았을텐데

그때 주전자를 올리고 있었다.


지금 물 끓일 때냐고 묻고 싶었지만,

소리를 내는 주전자를 부엌 베란다로 조심스레 옮기는 그 손길은

그것이 나를 위한 마지막 배려임을 문득 알게 했다.


집 떠나는 새벽의 마지막에,

나와 꽤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나를 위한 아내의 마음이었다.


사랑은 말로도 하는 것이지만

아내의 그 행동 하나가

내게 가슴 깊이 묵직하게 고인다.


공항에 아내와 아들을 내려주고 집에 혼자 돌아와

미지근해진 주전자의 물을 따라 마시면서

눈물을 삼켰다. 사랑을 마셨다.


사랑하는 이가 그 바쁜 새벽에 나를 위해 끓여 놓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손길로 내려놓은

주전자의 손잡이를 가만히 잡아 본다.


사랑은 그렇게

주전자를 통해

물 한 잔으로 내 마음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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