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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진 Jan 24. 2019

공자, 진흙탕 속으로 들어가다

인(仁)으로 자연에서 독립하다

공자는 인(仁)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인간은 무엇인가를 규정했습니다. 공자 이전 시대에 신화에 기대어 하늘을 두려워하며 살던 사람들에게 인간은 그저 하늘에 대응하는 수동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그래서 민속신앙, 신화, 귀신을 섬기며 살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공자에 이르러서, 신화를 벗어나 인간이 스스로 자립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자가 명쾌하게 인(仁)을 가진 것이 사람이라는 통찰을 통해서 사람을 자연과 구분한 독립적인 개체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인(仁)을 갖춘 사람은 스스로 덕을 깊게 쌓으면 하늘의 도에 닿을 수 있다고 합니다. 공자 이전 시대에 하늘의 도가 모든 것을 알아서 주재하고, 사람은 거기에 호응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도가 운행하기 이전에, 덕을 깊게 쌓으면 하늘의 도를 스스로 자신에게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수동적인 존재에서 능동적인 존재로, 자연의 일부에서 자연과는 독립된 개체로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공자의 사상을 통해 사람만이 사람일 수 있는 이유가 생긴 것입니다.


그렇게 인(仁)을 통해서 사람을 규정하고, 그 인(仁)을 행함으로써 덕을 쌓아 군자가 되고, 군자가 되어 하늘의 도에 닿을 수 있으면 세상이 평화로워진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목표를 제시합니다. 능동적인 사람은 이제 하늘에 비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인(仁)을 행함으로써 세상이 좋아지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공자의 인(仁)이라는 개념은 다른 현자들처럼 홀로 깨우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인간관계, 가족과 사회, 나를 둘러 싼 지금 여기에서 실천하고, 논하는 것입니다. 거칠게 말하면 진흙탕 속으로 들어가야 인(仁)을 행할 수 있습니다.


역사 속에 많은 현자들은 산속에 은거합니다. 세상이 혼란해지면 물러나서 숨어버립니다. 때묻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고립됩니다. 그리고 그 때묻지 않음을 간직한 채 죽어버립니다. 세상 부귀영화를 뒤로했다는 찬사를 듣기는 하지만 그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공자는 다릅니다. 사람들로부터 어리석다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공자는 세상 속에서 인(仁)을  행합니다. 공자를 비판한 현자들이 보기에 왜 되지도 않는 도를 저렇게 실현할까가 이해되지 않았겠죠. 그들은 공자보다 더  똑똑하고, 총명하게 세상을 바라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보면 공자는 어리석어서 세상 안에서, 진흙탕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일 뿐인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공자가 세상이 이미 구하기 어렵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선비는 뜻이 크고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책임은 무겁고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인의 실현을 자신의 임무로 삼으니 어찌 무겁지 않겠는가. 죽은 뒤에나 그만둘 수 있으니 어찌 멀지 않겠는가." 《논어》 <태백>


세상이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있을 때, 깨우친 사람은 어찌해야 할까요. 공자는 현자들의 총명함보다, 자신의 책임감을 더 중요하게 두고 살아갔습니다. 자신이 깨우친 사람으로서 진흙탕일지라도 세상에 뛰어들어 정의와 백성을 위해 한 걸음씩 싸워나갔던 것입니다. 그런 공자의 정신이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 아닙니까? 현명한 사람은 세상에 빠르게 적응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이 그 세상을 바꿔낼 수 있습니다.


“오직 어진 사람만이 능히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능히 사람을 미워할 수 있다.”  《논어》 <이인>


공자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자신을 다스리는 덕목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인(仁)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원칙적으로 잘못되었을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것은 어찌 보면 제3자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켜야 하는 가치, 불인이 분명하다면 공자는 분노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사악한 사람이나 사태에 대해  도덕적 분노를 가지고, 선량한 사람이 당한 불행에 아픔을 느끼는 그런 경지 말입니다.


"시세에 영합하면서도 겉으로만 점잖고 성실한 듯이 행동하여 순박한 마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은 바로 덕을 해치는 사람이다." 《논어》 <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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