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하늘일 뿐, 인간의 능동적 참여로 세상을 바꾼다
공자의 인仁으로 시작된 인간 본성에 대한 논증은 묵자, 장자, 맹자에 이르러서 형이상의 이상론으로 발전합니다. 묵자는 겸애兼愛, 장자는 소요유逍遙遊, 맹자는 인의예지仁義禮智등의 가치로 인간을 설명했습니다.
공자에서 자사(공자의 손자), 그리고 맹자로 이어지는 유가의 흐름이 있다면, 공자에서 자공(공자의 제자), 그리고 순자로 이어지는 흐름이 있습니다. 후에 송대에 주희는 공자-증자-자사-맹자의 유가를 확립하고 순자를 이단으로 배격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가는 맹자의 형이상학적 유가입니다.
반면, 공자-자공-순자로 이어지는 유가는 실천적 유가입니다. 자공은 공자의 제자로 실천적 공자로 평가되는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자공이 한 번 나서자 노나라를 존속시키고 제나라를 혼란에 빠트리고 오나라를 격파하고 진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으며, 월나라를 패자로 만들었다. 자공이 한 번 외교 사절로 나서면 국제정세에 균열이 생겨 10년 동안 다섯 나라에 각각 변동이 생겼다.", "일찍이 노나라와 위나라의 재상을 지냈으며 집안에 천금을 쌓아두기도 했다." <사기>, <중니제자열전>
사마천은 자공에 대해서 실용적이고, 실천적이었던 자공을 후하게 평가했습니다. 이러한 자공을 계승하려는 순자는 맹자의 형이상학적 이상론을 배격합니다.
맹자는 사람의 마음이 곧 하늘이라는 천인합일天人合一설으로 사상을 발전시킵니다. 이는 하늘의 도道를 사람에게로 가져온 혁명적 발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유가의 정치적 삶(공자-자공)을 철학적 삶(공자-자사)으로 전환시켜버립니다. 이는 후대에 성리학으로 이어져, 인간의 심성과 불변의 진리를 탐구하는 형이상학적 철학으로 흐르게 됩니다.
반면 맹자를 비판한 순자는 천인각분天人各分설에 근거하여, 하늘의 도道와 사람의 마음을 분리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역사에 주목하게 됩니다. 하늘은 하늘일 뿐, 천도天道가 아닌 인도人道를 따라야 함을 역설합니다. 공자가 주장했던 치국평천하治国平天下를 현실에서 만들기 위한 각 사람들의 노력과 방법에 대해서 주목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해하는 성악설의 개념이 등장합니다. 예禮를 통한 교육으로 전 사회 구성원이 군자가 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인간 자체가 악하다고 단정 짓기보단, 악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제도적, 구조적 대안으로 '예禮를 통한 교육'을 제시한 것입니다.
맹자가 수신修身을 통해서 자신을 다스리면 하늘의 뜻을 수용할 수 있고, 그러면 곧 왕도王道가 펼쳐질 것이라는 것은 치세治世에는 가능하겠으나, 난세亂世에는 적절치 못합니다. 하루아침에 왕조가 바뀌는 난세亂世에서 도를 닦듯이 수신修身만 한다고 세상이 바뀌겠습니까. 순자는 이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난세亂世에는 난세亂世의 법도를 따라야 하듯이 수신修身으로만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맹자의 수신修身이 소수의 엘리트들이 할 수 있는 수양론, 치세治世의 방법이라면, 순자의 예禮는 전체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사회적, 제도적 대안입니다. 이렇게 맹자와 순자는 갈립니다. 형이상학의 개념과 실천적 방법론, 소수의 기득권과 다수의 민중들. 이상적 치세治世와 현실적 난세亂世.
어쩌면 공자의 사상을 정립하는데서 맹자와 순자 모두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인仁을 알아가는데서 치밀한 논리와 추성적 개념이 필요하겠고, 인仁을 실현하는데서 실천적 방법론과 구조적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니까요. 성리학을 발전시킨 주희에 이르러서, 격물치지格物致知(사물을 깊게 탐구함)를 통한 수신修身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형이상학으로 치우친 유가, 어쩌면 순자를 배격함으로 합리성, 실천성, 과학성이 배격된 유교사회가 된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서양의 근대화에 무력하게 무너지는 동양의 제국이 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