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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광진 Feb 04. 2019

한비, 현실에 적응한 정치철학자

제자백가 섭렵하고, 강력한 방법론을 제시하다

한비, 법가사상을 정립한 인물입니다. 법가사상은 진나라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해주어서, 강력한 제국으로 통일에 이르기까지 그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한비와 함께 동문수학했던 이사가 재상으로 있으면서 진시황을 보좌하여 천하를 통일했습니다. 물론 한비도 진나라에 초청되었습니다. 많은 역사책에서는 이사가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한비를 음모로 제거한 것으로 표현하지만, 당시 진나라의 통일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의 노선 차이가 더 결정적이었습니다. 진시황에게 유세하면서, 이사와는 달리 한나라를 먼저 침공하지 말 것을 주장하면서 이사에 의해 제거되게 이릅니다.

어쨌든, 이사와 한비는 유가 계통을 잇는 순자에게서 배웠습니다. 순자는 공자의 인(仁)의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서, 교육을 통한 예(禮)를 강조했던 유학자입니다. 동시대에 있었던 맹자는 교육이 아닌, 수신(修身), 즉 자기 자신을 닦음을 통해서 인(仁)을 의(義)로 확장되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갈렸던 순자에게서 성악설과 교육을 통한 통치에 대한 관점을 배웠던 한비는, 제자백가 사상을 총화 하면서 자신의 법가사상을 정립했습니다.

 특이한 것은《한비자》속에 노자를 해석한 <해로> 편이 존재합니다.


 "사람은 재앙을 당하면 마음이 두려워지고, 마음이 두려워지면 행동이 단정 해지며, 행동이 단정해지면 재앙과 화가 없게 되고, 재앙과 화가 없으면 천수를 다하게 된다. 행동이 단정하면 생각이 무르익고, 생각이 무르익으면 사물의 이치를 얻게 되고, 사물의 이치를 얻게 되면 반드시 공을 이루게 된다. 천수를 다하면 온전하게 장수할 것이며, 반드시 공을 이루면 부유하고 귀해질 것이다. 온전하게 장수하고 부유하고 귀한 것을 복이라고 한다. 복은 본래 재앙이 있는 곳에서 생긴다. 그래서 '재앙이란 복이 기대는 곳이다'라고 한 것이다." 《한비자》 <해로>


한비의 법가는 제자백가 사상들을 두루 비판하지만, 유독 노자에게만은 관대합니다. 한비 본인이 한나라의 귀족으로 온갖 고생을 해서 그런지, 노자에게 친화적입니다. 그러나 유가와 묵가에 대해서는 무용하다고 격하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세상을 통치하기가, 즉 좋은 세상이 오기 힘들다는 것이었죠. 유가와 묵가의 경계선에서 취할 것은 취하면서 강력한 법, 술, 세를 통한 권력으로서의 통치술을 정립합니다. 한비는 또한 종횡가에 대해서는 유해하다고 비판합니다. 종횡가의 폐해에 대한 군주의 대응은 《한비자》전체를 관통하여 나오는 주제입니다. 한비가 그렇게 일관되게 종횡가를 비판한 이유는 한비의 조국인 한나라가 종횡가의 언술에 넘어가 망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살펴보면, 한비는 유가와 묵가의 가치와 이상에는 동조하나, 그것만으로는 종횡가의 언술에 휘둘리는 작금의 상황을 넘어설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종횡가로 대표되는 관료 계급에 대한 군주의 통솔력, 그것이 확립되어야 평화로운 세상, 더 좋은 세상이 가능하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한비자》 속에는 유가의 인의 가치와 묵가의 겸애의 가치가 묻어있습니다. 그것을  넘어서서 현실에서 실현하는 과제로, 법, 술, 세의 통치술을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한비의 법가를 제자백가 사상의 총화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한비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에 당면하여 진나라의 부상과 다른 제후국들의 몰락을 대비시키면서, 왜 제후국들이 망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했습니다. 자신의 조국인 한나라의 역사적 사례를 참조하여 그 원인을 종횡가, 신하들에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인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분명히 그 자신의 효력을 행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방법이 있는데,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에 의지하지 않고서 스스로를 위하게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에 근거해서 나를 위하는 방법은 위험한 것이니, 나에 의지해 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이 안전하다." 《한비자》 <간겁시신>


다른 나라의 힘에 기대어 강대국에게 대응하는 종횡, 그리고 강대국의 힘에 기대어 살아보려는 연횡, 모두 부국강병과는 거리가 멉니다. 자기 실력을 갖추는 것이 아니라, 힘을 빌려서 무엇인가를 도모하려고 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종속은 한 국가의 자주권을 빼앗아가고, 자주권이 빼앗긴 국가는 국가의 이익이 공유되거나 빼앗겨 결국 망하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전국시대 말기에 제후국들의 모습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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