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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노스 최민호 Dec 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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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튜라플리네스의 유혹

1. 튜라플리네스의 유혹     


방에 들어선 마탁소는 침대 옆 탁자 위에 놓인 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튜라플리네스’      


아직 학명도 없이 갓 세상에 태어난 꽃이었다. 

붉은색과 노란색의 꽃잎이 8장으로, 나팔 모양의 통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8개의 꽃잎이 서로 겹쳐진 겹꽃이다. 

튤립과 얼핏 비슷한데, 크기는 튤립 2배 정도의 꽃으로, 완전한 성화인 경우, 꽃 가장자리 지름이 약 8cm, 길이는 약 15cm까지 자란다. 


8장의 꽃잎이 각각의 색깔을 내면서 로제와인 잔과 같은 기품 있는 자태로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며 피어난다. 

탐스럽고 향기가 그윽하다.


튜라플리네스는 튤립과 카사블랑카 백합, 그리고 식충식물 네펜데스의 유전자를 합성하여 개발한 신품종이다. 

카사블랑카(Casablanca)는 순백색의 꽃이 매력적이고 향기도 은은해 결혼식 부케로 사랑을 받고 있다. 

원산지 보르네오섬을 중심으로 중국 남부와 인도차이나에 주로 서식하는 네펜데스(Nepenthes)는 말 그대로 벌레를 잡아먹는 덩굴식물이다. 


신품종의 개발자, 막스 쉬뢰더 2세.

마탁소는 지난 4월 30일 퀸즈데이에 네덜란드 대사관의 초청으로 참석한 파티에서 막스 쉬뢰더를 만났다. 


“튤립과 라고 해야 옳을 것 같소. 네펜데스와 유전자 합성을 하였기 때문에 식충식물과인 네펜데스과라고 해야 하나 생각했지만, 모습이 튤립과 백합에 가까워서요. 

하지만 아직 100%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품속에서 조심스럽게 사진을 꺼내 보여준 꽃.

바로 튜라플리네스였다.      

쉬뢰더는 스스로를 식물유전공학자이자 원예가라고 소개하면서, 어느 날 꿈에서 튜라플리네스를 보고, 신의 계시라고 여겨 이 꽃의 합성을 시작했다고 담담하게 설명했다.   


사진 속의 꽃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정교하게 합성된 것이었다. 

봉오리가 튤립보다 훨씬 크고 탐스러울 뿐만 아니라, 빛깔도 튤립과 백합의 장점만을 살려 신비한 빛과 기운이 주위에 감도는 듯했다.      

만약 개발에 성공한다면 무가(無價)의 보물, 그 자체일 것이었다. 


쉬뢰더는 이 꽃이 식충식물이 될 것이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네펜데스처럼 동물의 단백질도 섭취하는 특성이 있어 가끔 파리와 벌 같은 곤충을 벌레잡이 주머니에 넣어주면 녹여 먹는다. 

그래서 물이 충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쉬뢰더가 꿈꾸는 튜라플리네스 개발 계획을 들으면서 마탁소는 환상의 세계 너머로 왠지 기괴스러운 느낌마저 들었지만, 그런 꽃이 태어난다면 화훼 세계에 100년 동안 잠자던 백설공주가 깨어나는 경이의 존재가 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이 꽃이 내 방에 피어 있는 걸까? 

이 꽃은 당연히 최고의 보안이 유지되는 막스 쉬뢰더 박사의 연구실 깊숙이 보관되고 있어야 할 텐데….’      


마탁소는 의아심을 갖고 튜라플리네스로 다가갔다.

가까이 갈수록 활짝 핀 꽃 깊숙한 곳에서 그윽한 향기가 피어올랐다. 

코끝을 맴돌던 향기가 몸 전체를 휘감았다. 깊고 진했다.  

꽃잎의 촉감 또한 부드럽고 따스했다. 여인의 부드러운 살결같은 느낌이었다. 

꽃 향기에 취하면서 하루 종일 수목원에서 꽃나무를 살피던 그의 몸은 피로로 인해 솜처럼 무거웠다.  


잠이 들었을까. 

잠결에 자기의 성기를 부드럽게 애무하는 따스한 감촉이 느껴졌다. 

서서히 달아오르는 달콤함에 무의식 중에 자신의 몸을 내맡겼다. 

세차게 빨아들이는 촉감에 온 몸에 짜릿한 쾌감이 파도처럼 밀려들기 시작했다.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쾌감을 거부하지 못하면서 그는 이것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궁금했다. 


‘손은 아니다…, 손의 느낌이 아니다….’      


그런 느낌이 드는 순간 정신이 들었다.


때는 늦었다. 오르가슴의 꼭짓점을 넘기고 말았다. 마구 분출하는 그의 몸과 함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마탁소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성기를 빨고 있는 것은 꽃잎을 있는 대로 열어젖히고 꽃대를 바짝 기울여 뒤덮고 있는 튜라플리네스가 아닌가. 


“으악!”      


마탁소는 비명을 지르며 튜라플리네스 꽃대를 왼손으로 거머쥐고 오른손으로 칼로 베듯 힘껏 내리쳤다. 

꽃대는 목이 잘린 것처럼 끊어져 방구석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그때 마탁소는 보았다. 

줄기에서 주르르 흘러나와 방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붉은 핏방울들을. 


마탁소는 너무 놀라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비명이 얼마나 컸던지 자신의 비명소리에 다시 놀랐다. 

침대에서 튕겨 오르듯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차츰 정신이 돌아오고 있었다. 


꿈이었다.      


“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튜라플리네스도, 그 향기도, 목이 떨어진 꽃대도 아무것도 없었다.      

목에서 물을 찾는 갈증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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