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놈의 코로나 때문이다. 3월 31일 짝꿍은 한국에 오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4월 첫째 주에 혼인신고를 마치고 4월 11일 출국 예정이었다.
모든 예약이 끝났고 우리는 그냥 그렇게 정말 영원히 해피엔딩일 줄 알았는데, 다시 온 우주가 우리의 만남을 거부하고 있다. 한국 내 코로나 19 확진자가 늘어나서 걱정을 했는데, 이제는 그 반대로 유럽이 전쟁터가 되었다. 그리고 덴마크는 발 빠르게 2주간 사회적 거리를 두기로 하고 모든 것을 닫기 시작했고, 며칠 후에 유럽연합은 한 달간 국경을 닫았다.
그래서 우리의 일정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처음엔 진짜 욕이 나왔다. 쌍욕이 나왔다. 대체 왜 나의 행복을 가로막냐고 망할 놈의 바이러스가! 네가 뭔데 대체..?
그리고 순간 기억이 났다. 1년 전 사주 봤던 곳에서 들었던 말이 (갑자기 맹신하게 되었다. 그럴싸하니까..)
아가씨는 2019년에 결혼해야지 안 하면 2020년에는 못해. 2021년, 서른 돼야 가능해.
망할, 의미부여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못하다는 이유가 바로 코로나 때문인가? 아, 뭐 조상님이 외국인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소리도 얼핏 들은 것 같은데 그건 어쩔 수 없어요. 하늘에 계신 조상님들, 부디 좀 자손을 위하여 자비를 베풀어 주시길..
그나저나, 이 망할 놈의 코로나가 내게 선물도 주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병 주고 약 주고 잘한다 잘해!
한 달이란 시간이 길게도 느껴지면서 또 짧다고 느꼈는데, 마음이 붕 떠있던 나를 잡아주는 시간을 주었다. 무엇보다 기회를 다시 얻었다는 점이다. 한국에 들어와 다시 근무를 하면서 파격적인 제안을 받았다. 그건 바로, 덴마크에 돌아가 재택근무를 하게 된 것.내겐 너무나도 과분한 오퍼였다. 무엇보다 신설되는 팀, 여태 해보지 않았던 더 깊은 마케팅에 발을 담글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동생이자 나의 팀장은 너무나도 똑똑한 사람이고 배울게 참 많은 친구인데 이 친구가 제안을 해주니, 인정받은 것 같아 너무나도 설레고 또 부담도 되었다.
물론 이 소식은, 덴마크와 유럽 전체가 닫기 전이다. 그래서 처음엔 3월까지 근무하고 4월에 덴마크로 돌아가서 근무를 하는 것이었는데.. 아무쪼록 나는 오퍼에 대한 YES를 외치고 며칠 후 모든 일정이 틀어졌다. 나는 4월도 어쩌면 5월도 여전히 한국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점과, 짝꿍은 본국인 라트비아에도 못 가고 덴마크 집에 갇혀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들이 다시 또 원점으로 돌아왔고 잠시 멈춰졌다. 우리의 선택이 아닌, 우주의 선택으로 우리는 더 길고 기나긴 장거리를 하게 되었다.
내가 코로나에게 받은 또 다른 선물은,
커리어 외적으로도 있다.
바로 사회적 거리를 통한 나만의 온전한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것과 잠시 멈춤이 필요했던 나에게 핑곗거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주말을 최대한 나와 보내고, 나와 친하게 지낸다. 물론 그중 몇 시간은 짝꿍과 영상통화를 하며 넷플릭스를 영화를 보는데도 소비한다. 난 이게 선물이라 생각한다. 마음이 훨씬 안정되었다 왠진 모르겠지만.
그리고 더욱더 애틋해진 우리 관계를 느낄 수 있다.
만날 수 없어서, 또 늦춰져서 더욱더 돈독해진 관계를 발견한다. 그리고 짝꿍은 너무나도 러블리하게 매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