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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Choi 메덴코 Apr 13. 2022

북유럽을 떠나 아시아에서 마주했던 편안함

비슷한 생김새, 문화, 언어권이 주는 편안함을 마주하다.

"코펜하겐에 출장 오셨나 봐요." 

오늘 아침 집 앞 새로 생긴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들은 말이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하신 말씀이셨을 테지만.. 예전 같았으면,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을 이 말이 몹시 섭섭하고 서운했다. 하지만 "아니요. 저 이 앞 건물에 살아요. 카페가 새로 생겼길래 와봤어요."라며 웃으며 사장님께 대답했고, 사장님은 멋쩍어하셨다. 옆에 있던 친구에게는 괜스레 내 나이가 벌써 그렇게 직장인으로 밖에 안 보이나 봐. 옷 때문에 그런가? 어쩌면 내가 교환학생일 수도 있지 않느냐며 웃어넘겼지만 마음 한편에는 불편함이 자리 잡았다.


덴마크에서 이민 온지는 어느덧 1년 반이 지났고, 이전에 살던 시간까지 합하면 벌써 3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이 사회에 발을 내딛지도 못했고, 큰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국보다는 다국적, 다인종, 다문화의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극소수의 인종이자,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어쩌면 이곳에 평생 살아도 절대 속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괜찮다고 생각했고,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지난 두 달 한국과 싱가포르에 출장을 다녀오면서 심경에 많은 변화들이 찾아왔다.


한국은 핏줄이기에, 아무리 오래 떠났어도 언어와 문화에 아주 익숙하다. 귀를 쫑긋 세우지 않아도 들리는 누군가의 말에 불편함을 느끼다가도 한편으로는 동질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1년 반 만에 돌아간 한국은 그대로였고 똑같았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고 동시에 나만 또 뒤처져 살고 있는 건 아닐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별 큰 생각 없이 갔는데, 나도 모르는 편안함도 있었다. 나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여기서는 내가 외국인이 아니라, 자국민이라는 것에 대한 그런 편안함. 하지만 다양성이 없어서 갑갑하다고 느꼈고, 얼른 덴마크에 돌아오고 싶다고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싱가포르에 가고 다시 한번 묘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싱가포르는 벌써 4번째 방문이었는데, 그전에는 잘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덴마크만큼 아니 어쩌면 덴마크보다 좋은 것 같다고 느껴져서 왜 그럴까 잘 생각해보니 또다시 '인종'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나는 그곳에서도 외국인인데, 뭔가 나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이유와 아시아인이 다수라는 이유로 편하다고 느꼈으며 내가 외국인인 것이 특별하지도, 독특하지도 않다는 것이 마음이 들었다. 내게 중국어로 말을 거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고마울 정도였다. 노력하지 않아도 이 사회에 내가 속한 느낌을 받았다고 해야 할까? 내가 한국인이어서 내게 친구를 하자는 사람도 있었다. 

"저기.. 혹시 한국인이세요?"

회사에서 근무를 하는데 누가 갑자기 내게 말을 걸었다. 같은 오피스에서 일하는 파리에서 온 중국인 인턴 친구였는데, 내가 한국어를 하는 것을 보았다며 인스타그램을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흔쾌히 웃으며 친구가 되었고 기분이 참 좋았다. 내가 한국인이라서 덕을 보다니! 내가 한국인이라 친구를 하고 싶다니! 덴마크에서, 유럽에서 잘 없는 일이라 당황스럽기도 했다. 마치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이 다 내 친구인 기분에.. 내 편들 이 많아진 기분이랄까?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고 관심도 없고, 외국인일 거라 짐작하지 않는 것에서 오는 안정감과 동시에 다인종, 다문화의 사람들에 섞여 다채로운 그 느낌이 참 좋았다.


인종, 문화, 국적이 다른 나의 외국인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그는 무슨 기분인지 알겠다고 했다. 한국에 가면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그를 쳐다보거나 궁금해하거나 가끔 무례한 어르신들이 있는데, 싱가포르에서는 그가 똑같이 소수이지만 마치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편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덴마크에서, 라트비아에서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두 달을 아시아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덴마크로 돌아온 날, 갑자기 세계관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다른 행성에 뚝 하고 떨어진 기분이랄까? 또 나만 혼자가 된 것 같은 무서움에 사로 잡히기까지 했다. 도서관에 갔는데, 지하철을 탔는데, 아시아인이, 나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 어색했고 신기했고 가끔 무례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불편하고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괜히 자격지심으로 "내가 아시아인이라 쳐다보는 건가? 내가 다르게 생겨서? 머리가 검해서?" 등 별 쓸 때 없는 생각을 했다. 남편은 내가 조금 투머치 한 것 같다고 했지만 정말 그런 기분이 들었다. 가끔 누군가 무지해서 묻는 아시아 관련된 질문을 들을 때는 뒷골이 당기기도 한다. 물론 악의적인 사람은 많이 없지만 똑같은 말을 번복해야 하는 것이 아주 불편하다.


사실 내가 덴마크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시아인을 마주쳐도 덴마크인이거나 덴마크어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전제하여 말을 걸어서였는데 이번에는 돌아오고 계속 어딜 가나 내게 영어로만 말을 거는 것이 속상하기도 했다. "내가 너무 아시아 화가 되어서 왔나..?"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근데 뭐 그러면 또 어때? 아시아인으로 태어났고, 아시아에서 왔고 그래서 그게 나인데?라는 생각 등, 머리가 복잡하던 차에 오래된 나의 싱가포르, 덴마크 혼혈 친구를 만났다. 그녀에게 만나자마자 내 이런 상황들을 이야기하니 그녀는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대답을 해주었다. 


"써니, 나는 그런 기분을 평생 느꼈어. 내가 조금 더 아시아인처럼 생긴 덕에 그런지 나는 평생을 이곳에서 외국인 취급을 당해왔는걸. 내 남자 친구는 덴마크인도 아니고 독일인인데, 백인이라는 이유로 다들 그가 덴마크인일 거라 생각하더라. 함께 레스토랑에 가면, 나한테는 영어로 그한테는 덴마크어로 말한다니까? 웃기지? 내 남자 친구는 덴마크어도 못하는데. 그것뿐만이 아니야. 한 번은 내가 혼자 쇼핑하러 갔는데 영어로 반겨주시더라고, 나는 덴마크어로 인사했는데. 그래서 저분이 외국인이신가? 하고 있었는데, 옆에 다른 직원분에게 덴마크어로 조금 입에 담기 힘든 주제를 이야기를 하시는 거야. 당연히 내가 덴마크어를 못할 거라 짐작해서 하시는 것 같아서 그냥 모르는 척했어. 이런 일이 정말 많아"


이 이야기를 듣고 친구와 함께 이야기하다 보니 그들이, 누군가가 나를, 우리를 상처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의식적인 편견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잠정 지었다. 한국보다는 다문화 국가인 덴마크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미국이나 영국만큼은 아니라서 그럴 수도 있고 뭐 여러 가지 사회적인 요인들에 따른 것일 거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렇다고 해서 누가 내게 아시아인이 다수가 아닌 곳에 살라고 하지도 않았고, 나의 선택으로 이곳에 살고 있기에 그리고 언제든 원한다면 떠날 수도 있기에 괜찮다고 또다시 익숙해질 것이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해외생활 10년 만에 처음 느껴보는 감정들이라 조금 많이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어릴 땐 보이지도, 느끼지도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신경이 쓰이면서 새로운 것들이 보이고 느껴진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걸까 괜히 아시아계 사람들을 보면 동질감이 생기고, 동시에 나 또한 새로 누구를 처음 만났을 때 인종으로 인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고 하게 되었다. 이 넓고 다양해진 세상에 누구든 한국인일 수도, 덴마크 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며.


(그래도 내가 사는 곳에 한국인뿐만 아니라, 아시아인이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희망과 소망을 곁들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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