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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Choi 메덴코 Dec 23. 2022

옆자리 동료의 눈물과 퇴사

덴마크나 한국이나 사회생활은 힘든 곳인가 보다.

지난 월요일 오후, 근무를 빨리 끝내고 공항에 가려고 준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옆자리 덴마크인 동료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너무 당황해서 괜찮냐는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얼굴이 벌게진 그녀는 서러운 듯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놀란 동료들이 하나같이 일어나 무슨 일일이냐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잘 모르겠다며 갸우뚱거리다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달래주기 시작했다. 그녀는 괜찮다고 했지만 눈물이 그치지 않는지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싶어 내가 먼저 얼른 회사를 빠져나가자며 우리 둘의 짐을 주섬주섬 챙겼다. 그리고 둘이 함께 회사 밖을 나왔다. 그녀는 지난 20년이 직장생활 중 이렇게나 힘든 회사는 처음이라고 했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여태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이렇게 정신적으로 힘든 적이 없다고 했다. 계속 잠도 못자고 악몽을 꾸고 회사 일하는게 숨이 막힌다고했다. 나는 그냥 말없이 그녀를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갑자기 급하게 이야기할 게 있다며 미팅을 요청받았다.


"써니, 예상했겠지만 저는 아무래도 이곳에서 못 버틸 것 같아요. 저의 정신건강에 너무 해로워서 안 되겠어요. 저 오늘 퇴사한다고 이야기할 거예요."


그녀는 2년 계약직 사원이었는데, 내년 3월에 이미 계약이 완료될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만 당장 두고 싶다고 했다. 이직 자리를 알아보지도 않은 채 내린 결정이라고 했고, 본인 의지로 관두게 되면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도 무조건 얼른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고만 반복했다. 현재 유일하게 나와 함께 회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동료라, 어떤 것들이 힘든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왜냐면 나도 같은 이유로 하루에 몇 번씩 울었고, 몇 날 며칠 몸과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를 설득할 수가 없었다. 그저 응원해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야말로 미련하게 나의 정신건강은 뒤로한 채, 꾸역꾸역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슬퍼지기도 했다. 한편으로 내가 계약직이 아니라 정규직이라는 사실이 슬플 정도였다. 그녀의 선택이 부럽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건 바로 온전히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염려하고 내린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행복하게만 살기도 짧은 인생 회사 때문에, 일 때문에 내 삶이 이렇게까지 불행한 건 용납이 안 돼요."


그녀가 내게 한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었다. 누군가에겐 현실감각이 없다고, 책임감이 없는 그리고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또 누군가에겐 부럽고 대단한 그리고 현명한 결정일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가 상사에게 퇴사 사유로 '정신적 스트레스 과다'라고 이야기했고, 그 사유를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었다는 것도 놀라웠다. 보통 한국에서라면 일단은 면담을 하면서 좀 시간을 가져보자고 하거나 다른 제안을 할 텐데 말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아주 큰 프로젝트를 맡고 있고, 모두에게 인정받는 유능한 인재라서 분명 회사에서 3월까지는 있어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정신건강' 이슈를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개인의 행복'을 존중해주는 모습은 꽤나 인상 깊었다. 어쩌면 꽤나 모순적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녀는 선택을 내린 후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책임감 없이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본인 스스로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해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다. 그 당연한걸 어쩌면 내가, 많은 사람들이 안 하거나 못하고 있는 걸 수도 있으니까. 한편으로는 나만 힘들었던 것이 아닌 걸 느껴서 위안이 되기도 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걸보며 내가 유난히 나약하거나 적응을 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또 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늘 버티고 버티다 결국 곪아 터지고, 병이 나야 끝을 내는 성격이라 너무 미련한 내가 바보 같이 느껴졌다. 끈기가 아니라 미련인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행복하자고 덴마크에 살면서 요즘 가장 불행하게 살고 있는 내가 바보 같았다. 다만 나는 조금 더 스스로에게 적응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이 힘든 조직에서 묵묵히 견뎌보기로 했다. 나 자신에게 물었는데, 아직 나는 그 정도로 힘들지는 않다고 답변을 받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나만의 이유로 꼭 이곳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끝으로 이곳이 나의 첫 덴마크 회사이자 워낙 보수적인 분야에 그리고 큰 조직에서 근무 중이라, 모든 덴마크 회사생활을 대변할 수는 없다. 다만 내가 기대하고 꿈꿔왔던 덴마크 직장 생활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가는 것 같단 생각을 한다. 누군가는 내게 나의 첫 덴마크 사회생활이 너무 가혹하다고 했다. 그 정도로 괴로운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나는 무엇을 꿈꿔왔던 걸까? 혹은 기대했던 걸까? 덴마크 사회생활은 그저 천국이라 생각했던 걸까? 그럼 나의 천국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의 결론적으로 느끼는 건 사회생활은 한국이나 덴마크나 똑같다는 것이다. 아무리 37시간의 짧은 근무시간, 연간 6주간의 유급 휴가가 주어져도, 누구와 어떤 사람들과 함께 일하느냐에 따라 그리고 어떤 기업 문화에 속하느냐에 따라 일의 만족도가 갈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곳도 치열하고 전쟁터라는 것을, 어쩌면 나는 요즘 한국에서 근무했을 때 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덴마크에 산다고

덴마크에서 직장을 다닌다고

반드시 한국에서보다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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