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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May 05. 2023

바다

    엄마가 죽었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잠들기 전, 눈을 뜨면 엄마가 죽어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시신을 옮기기 위해 아빠가 구급차를 부를 때 나와 동생은 기도책을 펼쳤다. 우리 중 가장 독실한 신자였던 엄마를 위해서였다. 아니다. 사실은 아빠가 기도하라고 해서였다. 얼른 기도문을 읽은 후 다시 자고 싶었다. 그러나 기도가 끝나자 잠은 달아나 버렸다. 슬픔이 온 것은 아니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구급차를 타고 내렸다. 아빠의 뒤를 천천히 따라가는 나를 지나치며 운전기사는 "지 엄마가 죽었는데 울지도 않네", 중얼거렸다. 병원 사람들은 엄마를 바로 관으로 옮기지 않았다. 진짜로 죽었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있다고 했다. 죽음을 확인하는 일은 아빠만 했다. 나는 동생과 바깥 대기실 의자에 앉아 담임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가 오늘도 학교에 못 가게 되었어요. 엄마가 돌아가셔서요. 두 번째 문장은 울음과 섞여 엉망으로 나왔다. 난데없이 터진 눈물에 깜짝 놀라 복도 구석으로 달려갔다. 의자 뒤에 쪼그려 앉아 잠깐 울고 나니 진정됐다. 아빠가 나왔을 땐 멀쩡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뒤로는 그다지 울지 않았다. '지 엄마가 죽었는데 울지도 않네.' 구급차 기사의 목소리가 한 번씩 머릿속을 찾아올 때면 울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 잠깐은 울 수 있었다. 조문객은 나와 달랐다. 하나같이 울었다. 우는 모습이 다양했다. 숨죽여 흐느끼기도, 엎드려 오열하기도, 고개를 돌린 채 입을 틀어막기도 했다. 눈물의 방향은 제각각이었다. 엄마를 향하기도, 아빠를 향하기도, 동생을 향하기도, 나를 향하기도, 자기 자신을 향하기도 했다. 어떤 눈물은 그 모든 것을 향했고 어떤 눈물은 어디로도 향하지 않았다. 제각각의 눈물바다가 장례식장을 가득 채웠다. 바다에선 짠내 대신 향냄새가 났다. 나는 해변에 모래를 밟고 서 바다를 쳐다보는 사람이었다. 바다를 향한 얼굴에 종종 행복감이 스쳐 갔다. 바다를 구경하며 엄마는 언제 올까, 궁금해했다.


    눈물바다를 만들던 사람들이 떠나면 바다를 잊었다. 바다가 떠난 자리를 정적이 채웠다. 유족이 머무는 작은 방으로 동생을 들여보내고 상주 자리를 지켰다. 아빠는 밤과 함께 찾아온 몇몇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다를 데려오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제야 다시 잠이 찾아왔다. 방석 세 개를 이불 삼아 깔고 눕자 금세 머릿속이 까매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흐느끼는 소리에 깼다. 눈을 뜨자 영정사진을 향해 무릎 꿇고 앉은 검은 양복이 비스듬히 보였다. 나는 사진이 있는 쪽으로 발을 두고 누워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아빠라는 건 알았다. 몸을 일으키거나 아빠를 부르는 대신 다시 눈을 감았다. 아빠는 그 순간 혼자였고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아빠의 울음소리는 처음 듣는 종류였다. 아주 가늘어서 곧 끊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계속 이어졌다. 그러자 이번엔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다.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엄마의 엄마가 왔다. 엄마의 언니와 동생들도 왔다. 엄마의 형제자매를 마지막으로 본 건 몇 년 전이었다. 그때 엄마의 언니와 여동생은 내게 ‘네 엄마 독한 것 보라’며 욕했다. 이번엔 아녔다. 다들 눈이 빨갰다. 엄마의 언니는 어떻게 연락을 안 했냐며 아빠를 타박했다. 남동생도 빨간 얼굴로 거들었다. 여동생은 그냥 뒤에 서 있었다. 엄마의 엄마는 말 대신 아주 깊은 바다를 가져왔다. 바다가 너무 무거워서 말을 못 하는 것 같았다. 가만히 있던 바다가 내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 쭈글쭈글한 손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없었다. 더 이상 행복한 얼굴로 바다를 바라볼 수도 없었다. 손을 잡은 바다가 무슨 말을 했으나 잊어버렸다.


    엄마는 화장했다. 친족만이 화장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유리 너머, 쇠로 된 공장 같은 입구로 관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쇠문이 닫혔다. 우리가 있는 곳까진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유리와 함께 침묵이 방을 감싸고 있었다. 적당히 무겁고 적당히 어색한 공기가 마음에 들었다. 아빠는 아니었나 보다. 어색한 목소리로 침묵을 쫓아내려 했다. "허무하지 않니?" 아빠의 말은 연기 못하는 배우의 대사처럼 낯간지럽고 의아했다. 아빠는 어떤 공감을 원한 걸까? 알 수 없었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침묵을 도로 불러들였다.


    장례를 치른 다음 날부터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장례식에 온 반 애들 모두에게 감사를 전하는 편지와 초콜릿을 사서 돌렸고, 그게 끝이었다. 한동안 학교를 빠진 일도, 장례식도 없었다는 듯 굴었다. 친구들과 시답잖은 장난을 치고 다가오는 기말고사와 연말 얘기를 했다. 이 년 후 치를 수능으로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하루하루는 금방 지나갔다. 밀린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주로 책을 보다 잠에 들었다. 아빠는 대개 내가 잠든 후 집에 들어왔고 학교 가기 전에 출근했다. 동생과는 서로 있는 듯 없는 듯 지냈다. 적막한 집이 나쁘지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적응이 빨랐다. 다녀왔다는 말을 습관처럼 뱉은 적조차 없었다.


    현관문을 열면 직선으로 보이는 안방은 늘 문이 열려 있었다. 문을 등진 의자와 책상이 침대를 가리고 있어 안이 잘 보이진 않았다. 엄마가 쓰려고 갖다 놓은 책걸상이었다. 그러나 의자에 앉은 엄마의 뒤통수를 본 기억은 사실 너무 까마득했다. 책걸상 너머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이 훨씬 익숙했다. 아니면 거실에서 리클라이너 소파를 한껏 뒤로 젖혀 앉은 모습이나. 이제는 그런 걸 볼 일 없어. 이제 우리 집에 환자는 없어. 안방엔 잘 가지 않았다. 거실 소파에는 자주 앉았다. 소파에 앉으면 바로 보이는 텔레비전보다 텔레비전장을 보는 일이 더 잦았다. 십자가상, 성모마리아상, 아기천사 상, 묵주, 성경 따위와 함께 가족사진이 있었다. 어릴 때 찍은 사진이었다. 그 위로는 엄마의 영정사진이 걸려 있었다. 내가 주로 보는 건 그 사진이었다. 엄마는 숏컷에 멋들어진 스카프 차림이었다. 항암치료로 빠졌던 머리가 한창 다시 자랄 때였다. 마지막으로 본 엄마의 모습과는 달랐다. 마지막으로 본 엄마의 모습이 가짜고 사진이 진짜일지도 모른다.


    기말고사가 시작되었다. 첫날이었나, 둘째 날이었나. 마지막 날이었던가. 하여간 시험을 단단히 망친 날이 있었다. 기분이 가채점한 점수만큼 내려앉았다. 시험이 끝나고 바로 집에 오니 아무도 없었다. 그 적막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적응했단 감각은 도망친 지 오래였다. 집이 낯설어 신발을 벗고 들어갈 수 없었다. 현관에 멍청히 서 있는 틈을 타 장례식에서 보았던 바다가 나를 덮쳤다. 바다는 꼭 나만큼 간사했다. 몰려오는 기세가 거세어 서 있기 어려웠다.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어 현관에 주저앉아 바다를 뱉어냈다. 숨을 쉴 수 있을 때까지 뱉고 나자 차가운 바닥이 느껴졌다. 그래도 일어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반쯤 열린 안방 문 너머로 책상과 의자가 보였다. 엄마 좀 돌려줘. 아픈 엄마 말고, 건강한 엄마. 바다에게 말했지만, 엄마를 데려간 게 바다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래도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며 쉰 소리로 떼를 쓰다가, 건강한 엄마가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멈췄다.


    그날부터 바다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비밀스러운 동거였다. 내 것이 된 바다는 이제 바다가 아니었다. 까맣게 보일 만큼 짙은 물이 흐르지 못하고 깊어지기만 했다. 바다였던 물 위로 외면했던 기억들이 쏟아졌다. 가라앉았다 떠오르기를 반복했다.


    가장 자주 떠오르는 건 엄마가 살아있던 마지막 날들이었다. 학교에 가는 대신 바싹 마른 몸 곁에 있던 날들. 부어올라 라텍스 같은 팔다리를 주무르거나 돌아눕는 걸 도왔다. 안아서 화장실에 데려갔다. 침대에 함께 누워있을 때, 엄마는 그 시간을 잊으라고 했다. 아팠던 시간을 다 지우라고 했다. 그럼 내 유소년기가 사라질 텐데, 대꾸하는 대신 알겠다며 거짓말했다. 엄마에게 하고픈 말이 없냐고 물어본 날에는 사랑한다고 답했다. 너는 이 순간에도 이런 말밖에 못 하는 애야, 갈라진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마지막 밤에는 손 닿는 대로 자국이 남는 엄마의 팔을 주무르며 기도했다. 하느님, 엄마에게 건강을 돌려주세요. 엄마에게 건강을 돌려주지 않을 거라면 차라리 엄마를 데려가세요. ‘차라리’가 ‘제발’로 바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느님은 언제나 엄마의 신이었다. 그런데 왜 그날은 내 기도를 들어줬는지 모를 일이다. 하느님도 바다만큼 간사했다. 잔인함은 바다보다 한 수 위였다. 그래도 제일 나쁜 건 나였다. 평생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용서해선 안 된다. 바다가 고인 물에 가라앉아 되뇌었다. 되뇌는 게 나인지 바다인지 하느님인지 알 수 없었다. 여전히 알 수 없다.






커버 이미지 Egon Schiele, Tote Mu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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