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소리 씨는 어떤 기분이었어요?”
상담사가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딸은 당황스러웠다. 상담사는 얘기 사이사이마다 그의 기분이나 감정, 마음을 물었다. 왜 그런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았는지 묻기도 했다. 왜 자꾸 그런 걸 묻냐는 딸의 질문에, 상담사는 그가 감정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소리 씨는 정말 상세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해 줘요. 아빠가 어땠는지, 엄마가 어땠는지, 그때 뭐라고 말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머릿속에 그려질 만큼 자세했어요. 특히 어머니의 일대기는...“ 상담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시선을 내려 노트를 바라보았다. 딸깍, 딸깍. 볼펜을 누르는 소리가 두어 번 들리고 상담사가 다시 딸을 바라볼 때까지의 시간이 길진 않았다. 상담사의 표정에도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소리 씨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왜 그렇게 말했는지, 왜 울었는지, 말하지 않으니까요. 하나하나 복기하고 있는 지금은 어떤지도요.“
딸은 상담사가 삼킨 말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보단 상담사의 입에서 나오는 자신의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져 당황스러웠다. 상담사가 그보다 더 낯설었다. 그가 일부러 감정을 말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말하지 않은 줄 몰랐던 것에 가까웠다. 상담사가 이따금 딸의 마음을 물을 때마다 당황한 이유도,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거나, 어떤 감정이었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러면 상담사는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라며 넘어가주곤 했다. 이번엔 아니었다.
“소리 씨가 어릴 적 일들을 놀라울 만큼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건 그게 소리 씨의 마음 깊이 남았기 때문이고, 어떤 식으로든 감정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에요. 기억이 안 나는 것일 수도 있고 묻어두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
딸은 그 말이 꽤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의 기억력에 놀라곤 했으나, 그가 모든 일에 기억력이 좋은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떤 것들은 놀라울 만큼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 것들은 몇 번을 보거나 들어도 기억이 안 났다. 어떤 것들이 그랬더라? 패턴이 있을 텐데. 기억의 알고리즘으로 넘어가려던 딸의 생각은 상담사의 말에 붙잡혔다.
“소리 씨 인생에서 소리 씨는 관찰자가 아니잖아요.” 상담사의 말은 질문이 아니었지만, 딸은 대답할 필요성을 느꼈다. 할 말이 즉각 떠올랐기 때문이다. “가족의 일에서 저는 관찰자예요. 아팠던 건 엄마지 제가 아니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던 건 아빠지 제가 아니니까요. 가장 어렸던 건 동생이고요. 그러니까 저는 제가 제일 덜 힘든 위치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어렸던 소리 씨에게 미안한 일이에요. 소리 씨는 동생이 어리다고 하지만 그때 소리 씨도 어렸고, 그 소리 씨를 다독여줄 수 있는 건 지금의 소리 씨뿐이잖아요.”
상담사의 말은 언젠가 딸의 가족사를 들은 친구들이 했던 말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딸은 자신이 어리다는 생각을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심지어 초등학생 때도 자신이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너도 어렸다’는 말을 해준 뒤에야 그때 자신이 어렸음을 인지했으나, 그게 지금의 딸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어렸던 자신에게 미안하라는 상담사의 말이 유독 생경한 건 이런 이유였다. 과거의 자신에게 미안할 수 있다는 생각이 흔한가? 딸은 생각했다. 적어도 그의 인생에서는 없는 말이었다. 여하튼 지금 그는 누군가를 다독여줄 만큼 충분히 어른이었다. 그게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상담사의 주문대로, 딸은 이 가족사에서 자신을 더 직접적으로 꺼내기로 했다. 어차피 상담을 받기로 한 날부터 한 번은 얘기할 거라 생각한 것들이었다. 길지 않은 침묵 끝에 딸의 입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