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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Sep 24. 2023

희의 가족

    희의 엄격함과 예민함, 여러 재능은 곧 가족의 색깔이 되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선을 행하라'는 의미의 가훈을 만든 것도, 가훈을 솔선수범하기 위해 가장 노력한 것도 희였다. 언제나 그랬듯 희는 치열할 만큼 열심히 살았다. 아버지에겐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한 희의 손재주가 집에서는 유감없이 발휘됐다. 언제나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었다. 집은 늘 쾌적했고, 가족에겐 깨끗이 빨아 다림질한 옷을 입혔다. 손수 만든 액자에 가족사진을 걸어 두었다. 매년 아이들에게 ‘행복한 가정상’을 만들어 줬다. 가족의 생일과 각종 기념일이면 정성껏 만든 카드에 한 자 한 자 사랑을 담아 편지를 썼다. 매일같이 아이들을 데리고 성당에 갔다. 결혼 후 정착한 동네에서도 희는 교사 활동을 이어갔고, 하민과 함께 성가대에도 들어갔다. 아이들은 복사단에 들어가 미사를 보조했다. 부활절에는 온 가족이 함께 달걀을 만들어 성당 사람들과 나누었고, 성탄절에는 가족이 함께 합창 대회에 나가 성가를 불렀다. 새해도, 명절도, 모두 성당에서 맞이했다. 가족의 세례명에 따른 축일을 생일처럼 챙긴 덕에 아이들은 일 년에 두 번씩 생일 선물을 받았다. 더없이 신실하고 화목한 가족이었다. 그 모든 모습에 희의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유방암 판정을 받았을 때 희는 처음 신을 원망했다. 하지만 ‘신은 인간이 감내할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 준다’는 말을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가진 건 믿음뿐이었고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이건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희와 하민에게 적용되는 규칙이었다. 암도 예외가 될 순 없었다. 퇴원 후 희는 더 열심히 기도했고, 일상을 지키기 위해 더 노력했다.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성당에 갔다가 산에 올랐다. 수술 후 예전 같지 않은 몸을 챙기기 위한 노력 중 하나였지만, 등산은 어느새 가족의 주말 문화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노력이 무색하게도 몇 년 뒤 암이 재발했을 때, 희는 신을 원망하지 않았다. 원망보다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다. 재발한 암은 한 번의 수술로 제거할 수 없었다. 끝을 알 수 없는 항암치료의 시작이었다. 보험을 들지 않았던 희의 첫 번째 수술로 진 빚을 다 갚지도 못한 상태에서 꾸준히 거액의 치료비가 더 나갔다. 희와 하민은 이 버거움을 아이들이 느끼지 않기를 바라며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으나, 아이들의 일상이 꼭 같을 수는 없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후부터 아이들은 희와 함께 병원에 갔고, 언제부터인가 늘 부어 있는 희의 팔을 돌아가며 주물렀다. 하민과 아이들이 분담하는 집안일의 양도 점점 늘어 갔다. 희는 직감 했다. 앞으로 아이들이 분담할 집안일이 더 많아질 거다. 희의 몸은 점점 더 야윌 거고, 숨길 수 없을 만큼 머리가 빠질 거다. 일상의 거동도 불편한 날이 올 테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희에게는 몸의 아픔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게 어려웠다. 몸의 아픔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후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답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기도했다. 희는 평생을 신실하게 살았지만, 그때만큼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한 적은 없었다.


    주말은 가족이 종일 함께 보내는 날이었다. 희는 자신의 병으로 가족의 주말 문화를 훼손하고 싶지 않았다. 산책조차 힘들어진 때, 희는 그 문화에 동참하기를 포기했다. 남은 가족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어련히 만들어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민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그런 세심함이나 재치는 없었다. 엄마 없이 놀지 말자. 하민의 말에 아이들은 당연하단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가족의 주말 문화가 사라졌다. 희는 짐이 된 기분이었다. 가족 문화를 파괴한 가해자가 된 기분도 들었다. 천진하고 어딘가 뿌듯해 보이기까지 하는 가족의 얼굴을 보며, 그 기분은 이내 고독으로 바뀌었다.


    고독은 암세포와 닮아 틈만 나면 몸집을 불리고 가짓수를 늘렸다. 자신의 마음을 도무지 몰라주는 하민의 무심함을 마주할 때마다, 그런 무심함을 딸에게서도 발견할 때마다, 자신을 똑 닮아 사랑 많은 아들이 엄마의 애정을 보챌 때마다 고독이 커졌다. 위암에 걸려 죽는 순간까지도 희에게 미안하단 말 한번 하지 않은 시어머니를 봤을 때도, 하민이 대구에 가 장례를 치르는 동안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과 집에 있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기분을 참을 수 없어, 희는 딸에게 '너희 친할머니, 친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 줄 아냐'며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를 할수록 온갖 감정이 먼지처럼 뒤엉키며 희의 속을 쓰리게 만들었으나 멈출 수 없었다. 커다란 먼지 덩어리를 게워내고 싶었으나 무언가를 토할 기력도 없었다. 희가 가슴을 탁탁 치자, 딸은 말없이 등을 두드려주었다. 등을 두드리던 손이 이내 어깨와 팔을 주물렀다. 그 온기가 요동치던 덩어리를 멈춰 주었다. 그러나 이미 생긴 덩어리를 없애진 못했다.


    덩어리는 고독과 상성이 좋았다. 아버지가 폐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요동치며 크기를 키웠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자매들에게 “너 진짜 독하다”며 혀 차는 소리를 들었을 때, 싸움 끝에 형제자매들과 연을 끊은 후. 희는 점점 더 고독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성당 사람들이 찾아와 희를 위해 기도해도 고독을 채워주진 못했다. 그럴 때마다 희를 위로하는 건 자신의 신앙이었다. 때로는 혼자 하는 기도로, 때로는 신부에게 고하는 기도로, 희는 마음을 털어놓곤 했다. 신부는 희가 오래전부터 죽음을 준비하고 있음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희에게 숨통이 되어주었다. 그럴수록 가족에게 나누는 말은 줄어들었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을 때부터 죽음을 준비하던 희는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에야 가족에게도 이를 알렸다. 그때부터 딸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종일 집에 있으며 희의 몸을 돌려눕혀 주고, 화장실에 데려가주었다. 매일 저녁마다 희의 팔다리를 주물렀다. 그런 딸을 보며 이제는 떠나도 되겠다고 생각한 날, 희는 신부를 집으로 불러 병자성사를 받았다. 신부가 돌아간 후, 희는 거실에 있던 딸을 방으로 불렀다. 곁에 와 눕는 딸을 끌어안으며 희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딸도 마찬가지였다. 희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너무 힘드니 이제 그만 보내달라는 거였다. 몇 초쯤, 아니면 몇 분쯤이었을까. 딸은 멀거니 희를 바라만 보았다. 보다 못한 희가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묻자, 이내 눈물을 흘리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때 딸은 지독하게 형편없는 배우 같았다. 차분하던 희의 마음에 덩어리가 다시 요동쳤다. 한층 날카롭게 희의 속을 할퀴어댔다. 너는 마지막까지 이런 말밖에 못 하는 애야. 싸늘한 희의 말에도 딸은 반응이 없었다. 희는 남의 아픔에 공감할 줄 모르고 이기적이던 어린 딸의 모습이 걱정스럽고 불편하던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불평 한번 없이 종일 집에 머물며 희를 돌보던 얼굴과 지금의 얼굴은 무척 괴리감이 들기도, 같은 결 같기도 했다. 그래서 희는 그냥 준비한 말을 꺼냈다. 네가 본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다 잊어. 엄마가 아팠던 것도 잊어. 우리 가족의 행복했던 모습만 담아서 나중에 책으로 내줘. 딸은 쉽게 그러마 했다. 나중에 아빠가 다른 사람 만나면 축복해 주란 말에도 그러마 했다. 마지막까지 딸의 얼굴에는 마음이 드러나지 않았다. 딸의 마음을 묻는 대신 전한 사랑한다는 말은 희의 진심이었다. 돌아오는 딸의 답도 진심일 거라고 믿었다. 차분한 끝이었다. 다음으로 들어온 아들은 딸과 모든 것에서 반대되었다. 엉엉 울며 가지 말라 떼를 썼다. 주사 맞기 싫다며 희에게 달려와 울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희도 울었다. 떠날 생각을 하면 서운한 딸과 달리 아들은 마냥 눈에 밟혔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엄마가 우리 가족 병 다 가지고 가는 거니까 너흰 아프지 않을 거야. 아빠도 마찬가지야. 똑같은 말도 아들에게는 차분히 전하기 어려웠다. 어쩜 이렇게 다를까, 희는 새삼스레 생각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어느 쪽이 다행인지는 잘 몰랐다.


    하민과는 그런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약 9년간 불어나기만 한 빚을 감당하느라 하민은 매일 밤늦게 귀가했고 새벽같이 나갔다. 희가 깨어있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갈수록 아파오는 몸에 제대로 잠들지는 못했으나, 그게 깨어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신음과 색색대는 숨소리 사이로 하민이 일어나거나 눕는 걸 어렴풋이 느끼는 게 다였다. 그 와중에도 희는 인사를 나누지 못하는 게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민에게는 속에 있는 덩어리를 다 내보일 것 같았다. 그러다 진짜 인사를 하기 전에 덩어리에 잡아먹혀 죽을 것 같았다. 희의 사후에 관해 필요한 이야기는 일찍이 다 나누었으니 그걸로 되었다.


    그날은 확실히 추웠다. 이제 완전히 겨울이구나, 희는 생각 했다. 찬 공기에 죽음이 서려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잠이 쏟아졌다. 문득, 다음 날이 하민의 생일임이 떠올랐다. 이대로 깨어나지 못하면 정말 끔찍한 생일 선물이 되겠다. 너무 작위적이라고 생각하며 조금 웃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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