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솔 Oct 26. 2024

희와 딸

     희는 한결같이 하민을 사랑했다. 하민과 연애를 시작한 날부터, 어쩌면 처음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부터. 어떤 시선과 폭력도 감수할 만큼 사랑했다. 그건 하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희와 하민이 아무리 서로를 사랑해도, 아이들을 낳고 안전한 집을 꾸려도, 크고 작은 폭력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물리적 폭력에 한정된 기억은 아녔다.


    희가 첫 아이를 낳고 하민의 부모 집에 얹혀살던 시절, 하민의 부모는 손녀의 이름 한번 부르지 않을 만큼 손녀에게 정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손녀가 밤에 깨어 울면 희를 깨워 타박했다. '우리 엄마였다면 내가 힘들지 않은지 먼저 살폈을 것이다.' 그즈음 희의 일기에는 이러한 설움이 자주 보였다. 출산 후 몸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냉대와 환멸을 감내하며 희의 정신은 말라갔다. 하민은 늘 희의 편이었지만,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길었다. 아기는 희의 편이 아니라 희가 돌보고 지켜야 하는 대상이었다. 희는 최선을 다해 딸을 사랑했으나 상황이 그 사랑을 도와주지 않았다.


    딸은 아빠를 닮는다는 말이 희의 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희를 닮은 것도 아녔다. 하민은 약간 처진 길고 진한 눈에 희는 동그랗고 큰 눈이었는데, 딸은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짝눈이었다. 기본값이 화난 얼굴인 아기는 표정도 별로 없었다.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늘 주먹을 꼭 쥔 채 어른들의 손가락 한번 잡아주지 않았다. 딸을 본 사람들은 '예쁘다'나 '귀엽다' 대신 '똑똑하게 생겼다'라고 말했다. 희는 그 말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가끔은 딸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폐렴에 걸렸던 일, 그 때문에 모유를 얼마 못 먹인 일 같은 게 마음에 걸렸다. 이 년 뒤 태어난 둘째는 달랐다. 남자아이였지만 딸보다 예쁘장했다. 희를 똑 닮은 눈은 크고 동그랬다. 잘 웃고 잘 울었다. 병치레도 없어 모유를 끝까지 먹일 수 있었다. 둘째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귀여워 어쩔 줄 몰랐다. 손녀의 이름 한번 제대로 부르지 않던 하민의 부모도 손자에겐 달랐다.


    아들을 낳은 뒤에야 희와 하민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시부모에게 결혼식을 치르자는 말을 들은 날, 희는 아직 눈도 잘 못 뜨는 아들의 손을 잡은 채 눈물 흘렸다. 그 옆에 멀뚱히 앉아있는 딸에게 시선이 닿았을 땐 엉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들을 보며 흘린 눈물과 딸을 보며 흘린 눈물의 차이를 하민은 몰랐다. 영문도 모른 채 희를 두 번씩 다독였다.


   희에게 아들이 예쁨의 대상이었다면, 딸은 여러모로 신경이 쓰이는 존재였다. 표정 없던 아기였던 딸은 자라면서 웃음이 많아졌다. 툭하면 목젖이 보일 만큼 크게 웃었다. 아기 때 아프며 손이 많이 간 걸 보상이라도 하듯, 말하고 걷기 시작한 뒤로는 손이 가지 않는 아이로 자랐다. 무언가를 조르는 일이 드물었고 내버려두면 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곤 했다. 책을 통해 세상을 흡수하는 것 같은 딸의 모습을 볼 때마다, 희는 딸이 똑똑하게 생겼다던 사람들의 안목이 맞다고 생각했다. 똑똑한 딸은 거짓말도 잘했다. 딸의 거짓말은 아이들이 흔히 하듯 어른에게 혼날까 봐 뭔가를 숨기는 종류와 조금 달랐다. 이야기를 짓는 행위 자체를 즐거워했고 잘했다. 어느 날은 동생을 웃겨주려 거짓 꿈을 지어내고, 어느 날은 희나 하민을 기쁘게 하려 거짓 이야기를 들고 왔다. 딸의 거짓말은 창의력의 방증일 수 있었으나, 희에게는 걱정거리로 다가왔다. 그 바탕에 상대를 향한 공감이나 배려보단 눈치와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알아챈 건 희의 직감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섬세하고 예민한 희는 딸이 대부분의 상황을 머리로 이해하며 판단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자기가 판단한 상황에 맞춰 행동하려 했다. 그 안에 손익계산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희가 깨달은 건, 아들이 다쳐 놀지 못하게 되었을 때 딸의 얼굴에 지나간 짜증을 본 날이었다.


    그날은 가족이 함께 수영장에 간 날이었다. 아직 어린 아들이 혼자 물 밖으로 나오려다 팔에 힘이 빠져 수영장 바닥에 턱을 찧었다. 찢어진 여린 살에서 피가 났다. 희가 놀란 아들의 턱을 살피는 동안, 하민은 아직 물에 있던 딸을 안고 나왔다. 피를 철철 흘리며 우는 동생을 보던 딸은 '병원 가야 해요?' 하고 물었다. 예기치 못하게 끝난 놀이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짜증 섞인 얼굴이 희와 눈이 마주친 순간 놀람과 걱정으로 바뀌었다. 응급실 대기 의자에 앉아 동생이 턱을 꿰매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프겠다.' 하며 찌푸린 얼굴엔 고통을 상상하며 걱정하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을 제외하고 딸의 얼굴에 내내 머물러 있던 건 더 놀지 못한다는 아쉬움과 원인 제공자인 동생을 향한 원망이었다. 턱에 커다란 반창고를 붙인 아들이 대기실로 나왔을 때, 딸은 평소처럼 동생을 웃겨주려 거짓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집에 가는 길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희와 하민이 없었다면 '너 때문에 더 놀지도 못하고 이게 뭐야. 멍청하게 넘어지기나 하고.' 따위의 말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표정이었다.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 이기적인 마음, 어른의 눈치를 보며 이기심을 숨기려는 모습이 아이들에게서 볼 수 없는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이기 때문에 보이는 모습일 수도 있었다. 커가며 자연스레 사회화될 수준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희는 딸의 모습이 걱정스러웠다. 큰 문제가 아니더라도, 여자애가 똑똑한데 차갑고 이기적이면 특히 더 사랑받기 어려웠다. 자신에게서 저런 딸이 태어났다는 사실은 어쩐지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즈음 희는 원인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다. 고되었던 임신 시기가 딸에게 악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 태아일 때 영양분을 충분히 받지 못해서 공감 능력이 자라지 못한 거면 어쩌지? 하민의 어머니와 이모들에게 맞았을 때 뭔가 이상이 생긴 거면? 어쩌면 폐렴에 걸렸을 때 영혼이 같이 상했을지 몰라. 모유를 잘 못 먹은 게 엄마의 사랑을 다 받지 못한 것과 같은 영향일지도. 그래서 애가 차가운 성질을 지니게 된 걸까? 불안 요소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딸의 행동에 신경이 두 배, 세 배 곤두섰다. 이런 아이에게는 윤리의식을 더 강하게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이런 성정이라면 차라리 아주 강한 사람이 되는 게 낫다고도 생각했다. 사람들의 사랑을 갈구하지 않고 혼자 잘 살아가도록 키우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딸에게는 늘 더 엄격했다. 딸이 걷다 넘어지면 절대 일으켜 세워주지 않았다. 손잡아주길 바라며 우는 딸을 등진 채 앞서 걸어가곤 했다. 딸이 쫓아올 때까지 느리게 걸었지만, 걸음을 멈추진 않았다. 넌 이기적이구나. 너는 정이 없고 남에게 공감할 줄 몰라. 아들이 턱을 꿰맨 날과 같은 모습을 딸이 또 보일 때면, 희는 꼭 그걸 짚어 말했다. 부끄러워서라도 바뀌려 노력하겠거니 생각했다.


    딸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처음으로 숙제를 숨기고 거짓말한 날, 희는 매 대신 식칼을 꺼내 들었다. 겁에 질린 딸을 방에 데리고 들어가 문을 잠갔다. 무릎 꿇고 앉아 식칼을 옆에 놓았다. ‘너를 잘못 가르친 내 탓이니 같이 죽자’고 말할 때 희는 차분했다. 할복을 앞둔 사무라이처럼 비장하기도 했다. 아직 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아들이 방문을 두드리며 우는 소리가 들려도 흔들리지 않았다. 딸이 비명처럼 울음을 쏟아도 희는 차분했다.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딸의 뇌리에 충분히 박혔다는 생각이 들 때쯤에야 방문을 열고 나갔다. 딸이 다시 거짓말을 하는 일은 없었다. 동생을 웃겨주려 거짓 꿈을 지어내는 일도, 희나 하민을 기쁘게 하려 지어낸 이야기를 늘어놓는 일도 없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딸은 주기적으로 일상의 잘못을 적어 둔 종이를 희와 하민에게 제출했다. 종이에는 그간의 잘못들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대부분은 읽고도 기억에 남지 않을 만큼 사소한 일들이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고해 의식이었지만, 희와 하민이 그걸 읽고 죄 사함을 공표하면 딸의 얼굴에는 안도가 서렸다. 그 얼굴을 볼 때마다 희는 칼을 든 자신 앞에서 찢어지게 울던 딸의 모습이 떠올랐다. 넘어지면 혼자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로 넘어져도 울지 않으려 이를 악물던 얼굴이 떠올랐다. 넘어지기가 무섭게 일어나 손과 무릎을 툭툭 털던 몸짓도 떠올랐다. 무릎에서 피가 줄줄 흘러도 아프지 않다며 웃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따뜻한 사람으로 자라든가 아주 강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랐던 딸은 엄마의 언행을 하나하나 기억한 채 반응하는 사람으로 자라 가는 듯했다. 그런 과함이 희는 짠했고, 동시에 불편했다. 때로는 자신의 엄격함이나 예민함이 딸을 그렇게 만든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고, 때로는 딸이 지나치게 예민한 성정을 가진 게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가끔은 정을 주기 힘든 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모든 감상과 별개로 희는 딸을 사랑했다. 희가 하민과 함께 만든 가정에 쏟는 정성과 같은 종류의 애정이었다.





커버 이미지 Egon Schiele(1913), Mother and Daughter

이전 04화 희와 하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