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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솔 Oct 25. 2024

희와 하민

    희는 스스로 지은 새 이름에 놀라울 만큼 잘 적응했다. 처음부터 희로 태어났는데 그간 계선이란 이름으로 잘못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성격 덕에 희는 금세 청소년부 아이들을 가르치는 주일학교 교사가 되었다. 이듬해부터는 청년부에 들어와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도 가르치기 시작했다. 스스로 지은 이름을 아는 사람이 본명을 아는 사람보다 많아지고 희의 제자가 몇 기수를 이룰 때쯤 하민을 만났다.


    희가 다니는 성당에는 서울대생들이 많았다. 하민도 그중 하나였다. 주일학교 교사를 지망한 하민의 멘토가 되었을 때, 희는 하민의 부리부리한 인상이 조금 무서웠다. 도수 높은 안경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진한 눈이강렬 했다. 하민은 고등학교에 일찍 들어간 탓에 아직 열여덟이라고 했다. 희와는 열 살 차였다. 희의 막냇동생보다도 다섯 살이 어렸다. 그렇게 생각하니 무서움이 사라졌다. 하민은 학교 기숙사에서 지낸다고 했다. 하민은 희에게 매주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소상히 들려주었다. 주된 이야기는 선배들을 따라 시위를 나간 일, 동아리에 들어가 여러 가지 금서를 공부하던 일, 그 안에서 벌어진 논쟁 같은 것들이었다. 그 이야기 중에는 불과 몇 년 전 군 정부가 광주에서 학살을 일으켰는데 언론을 통제해 타 지역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숨겼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제야 희는 몇 년 전, 광주가 고향이라던 하숙집 학생 한 명이 부모님과 연락이 안 된다며 울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가 빨갛게 붓고 충혈된 눈으로 도망치듯 하숙집에서 나가던 날 밤의 이유도 추측할 수 있었다.


    군사정권, 독재, 민주주의, 사회주의 같은 말은 주일학교 교사 생활을 하며 희 역시 알고 있는 개념이었고, 교사 동료들과도 자주 나누던 소재였다. 그럼에도 희는 하민을 통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새롭게 배운다고 느꼈다. 그리고 하민에게 희는 종교적 세계관을 넓혀주는 사람이었다. 하민은 희가 성경을 해석하는 방식, 희의 종교적 신념과 봉사 정신에 늘 존경을 표했다. 희의 관점이 지금 시대에 필요한 시선이라고도 했다. 더 적극적으로 항쟁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던 하민은 주일학교 활동을 통해 이를 상쇄하곤 했는데, 그 중심엔 언제나 희가 있었다. 서로의 세계를 넓혀주는 과정은 희가 전혀 느껴본 적 없는 충만함을 주었다. 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민과 주일학교 교사 동료들을 따라 시위에 갔을 때, 희는 세상이 뒤집힌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로 세상이 뒤집혔다. 1987년이었다.


    그해 겨울, 하민은 희에게 정식으로 교제를 신청했다. 하민과의 연애는 희에게 너무 자연스러워서 순리처럼 느껴졌다. 함께 하는 해가 늘어나며 싸운 적은 있어도 헤어짐을 생각한 적은 없었다. 둘의 미래에는 당연히 서로가 있었다. 성당의 동료들은 농담처럼 언제 결혼하냐 묻곤 했다. 그래서 누군가 결혼을 반대할 거란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희가 임신했을 때는 서로의 부모에게 교제 사실조차 알리기 전이었다. 그제야 희는 둘의 나이 차나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 없었음을 깨달았고, 두려움에 휩싸였다. 희는 결혼에 큰 뜻이 없었고, 하민은 결혼을 생각하기에 너무 어렸다. 그래도 임신 사실을 전했을 때 하민은 무서움보다 책임감을 먼저 말했다. 이내 희를 꼭 껴안으며 감동 비슷한 것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희는 무섭다고 말하지 못했다. 현실의 무엇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하민의 눈을 보면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차피 가진 건 믿음뿐이었으므로,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 후 희는 무서움이 몰려올 때마다 하민을 바라보거나, 손을 잡거나, 껴안았다. 온기를 느끼면 한결 기분이 나았다.


    희는 입덧이 심했다. 하숙집에 계속 있기 힘들어 월세방을 구했다. 하민도 돈을 보태었다. 과외 아르바이트를 늘렸다고 했다. 4평 남짓한 방은 비공식적인 둘만의 첫 보금자리였지만, 아늑하지도 편안하지도 않았다. 한껏 예민해진 희의 몸은 낡은 방에서 나는 온갖 냄새에 일일이 반응했다. 그래도 임신한 티를 낼 수 없는 회사보다는 나았다. 하민은 학교를 가거나 아르바이트할 때를 제외하곤 희 곁에 머물렀다. 그러나 충분한 보살핌이 되지는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종강한 뒤에는 부모를 만나러 대구에 가겠다고 했다. 더 늦기 전에 결혼 허락을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며칠이면 된다고 했다. 희는 며칠도 혼자 있기 싫었으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같이 가자는 말에는 단박에 고개를 저었다. 대구까지 갈 기력도, 하민의 부모를 만나 인사할 자신도 없었다.


    대신, 희는 언니가 사는 대전으로 갔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더니, 사고 한번 크게 치는구나. 언니는 연신 혀를 차면서도 희를 내치진 않았다. 부모에게 말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에도, 대구에 간 하민이 돌아올 때까지만 묵게 해 달라는 말에도, 시큰둥한 말투로 그러마 한 게 다였다. 언니는 자식이 둘이었다. 딸 하나, 아들 하나.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갔다는 언니의 자식들은 낯가림이 없는 편이었다. 희를 제법 잘 따랐다. 딸은 엄마를 따라 희를 보살피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형부는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지만, 언니의 결정을 번복하진 않았다. 어차피 집에 거의 없었으므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언니의 집이 마음 편한 공간이었다고 할 순 없다. 그래도 언니의 보살핌은 확실히 하민보다 나았다. 복작이는 집에 있다 보면 불안도 조금은 희석되었다.


    하민의 연락은 대구에 잘 도착했다는 전화가 마지막이었다. 언니네 집에서 희석되던 불안이 다시 몰아치기 시작한 건 연락이 끊긴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그제야 대구에 있는 하민의 집 주소도, 전화번호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어디에서 사고를 당한 걸까? 닷새까지는 그런 생각에 휩싸였다. 일주일이 넘어갈 때부턴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흔들리는 일 없을 것 같았던 믿음이 너무 쉽게 조각나서, 희는 자신에게 더 놀랐다. 언니에게 이 사실을 말할 순 없었다. 언니는 부모에게 곧바로 말할 터였다. 엄마는 울고, 아빠는 분노에 차 희를 혼낼 테다. 어쩌면 또 피가 터질 때까지 맞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희는 거짓말을 했다. 얘기가 잘 된 것 같으니 이제 서울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겠다, 조만간 엄마아빠에게 알리고 상견례를 하겠다, 그동안 고마웠다, 신세는 꼭 갚겠다. 뱉는 말 마디마다 혼절할 것 같았다. 이대로 기절하고 그 충격으로 유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불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연락이 끊긴 지 열흘과 보름 사이에 있던 어느 밤, 하민이 희의 하숙집 문을 두드렸다. 하민의 모습은 그가 배신하지 않았음을 알려주었지만, 희는 기뻐할 수 없었다. 핼쑥한 얼굴과 갈라져 터진 입술, 손자국대로 피멍이 든 목이 순서대로 눈에 들어왔다. 모두 하민의 아버지가 만든 거란 말을 듣고 마음과 머리가 함께 무너져 내렸다. 하민은 그간 집에 감금되어 있었다고 했다. 차라리 죽으라며 목을 조르던 아버지는 차마 아들을 죽이지 못해 절연을 통보했다고 했다. 차라리 죽으란 말 앞에 하민의 아버지가 했을 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너보다 열 살 많은 여자를 임신시켜서 결혼하겠다니, 차라리 죽어라.


    희가 소식을 전했을 때, 아버지는 화조차 내지 않았다. 짙은 수치심이 늙은 얼굴에 드리웠을 뿐이다. 지나가는 듯 보였던 수치심은 미간에 깊게 파인 주름 사이에 남았다. 습관처럼 담배를 물었다가 밖으로 나가는 얼굴이 시커멨다. 목소리를 높인 건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희의 등짝을 때리다가, 마르고 핼쑥해진 얼굴을 거칠게 쓰다듬다가, 어깨를 잡아 흔들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내내 어머니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열 살이라는 나이 차와 혼전 임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둘의 부모만이 아녔다. 사람들의 눈에 둘은 미래가 탄탄한 엘리트 대학생과 별 볼 일 없는 삼십 대 여성이었다. 둘의 관계에 우호적인 성당 동료들마저 혼전 임신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열 살 어린 남자를 꼬드겨 임신으로 앞길을 막은 여자. 잘났다며 상경하더니 처신도 제대로 못 해 대학생 남자의 애를 밴 딸. 그게 희의 가슴에 가장 깊이 박힌 유리조각이었다. 그래서 직장에 찾아온 하민의 어머니와 이모들이 희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나갈 때에도, 욕설을 뱉으며 두들겨 팰 때도 아픈 줄 몰랐다. 본능적으로 배를 꼭 감싸 쥐고 몸을 한껏 웅크렸을 뿐이다. 해고인지 사직인지 모호한 형태로 직장을 그만두는 순간에도,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둘은 혼인신고를 먼저 했다. 이제 우리가 가족이야. 혼인신고서를 제출하고 나오던 길, 희의 손을 꼭 잡으며 하민이 말했다. 함께 다니던 성당 신부에게 몰래 주례를 부탁한 결혼식에는 하객이 없었다. 평소 성당 활동을 늘 카메라에 담던 동료 하나가 둘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주었다. 카메라를 보며 둘은 조금도 웃지 않았다. 그렇다고 슬픈 얼굴은 아니었다. 비장하다는 말이 잘 맞는 표정이었다. 하나, 둘, 셋, 찰칵. 렌즈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희는 생각했다. 여기서 다시 시작이야. 새 가족이야. 하민이 손을 잡아 왔다. 이제 우리가 가족이야. 혼인신고서를 제출하고 나오던 길에 했던 말이 다시 들려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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